뉴스를 읽으며 한규는 새삼 형을 떠올렸다. 전부 형이 이룬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칭송은 전부 형이 받아야 마땅한 것들이었다.하지만 정작 형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씁쓸했다.술에 취해 실족한것이니 누굴 탓할까?회사가 다른곳에 넘어가버려 산업재해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열 여덟살먹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병원비조차 댈 수 없다.나라에서 얼마간 돈이 나오고는 있지만 형이 이룬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억울했다. 형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울컥하는 것이 치솟았지만 분출할 대상이 없었다
2019-02-19
집에 돌아온 한규는 먼저 청소를 했다. 지난 한달간 아르바이트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 덕에 집안에는 구석구석 먼지가 뽀얬다.청소를 하던 도중 한규는 한 장소에서 멍하게 멈춰섰다. 형과 찍은 사진을 담은 액자였다. 걸레로 조심스럽게 액자의 틀을 닦았다. 그 곳에서 형은 어설프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하여간 사진을 그렇게 못찍으니 선자리 하나 안들어왔던거 아냐.”한규는 먼지를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코끝이 찡했다. 별것도 아닌것에 가슴이 아려온다.자꾸 약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그때, 딩동 하는 초인종소리가 들렸다.“누구십니까?”“나야, 매영이.”“어, 매영이 누나?”한규는 서둘러 문고리를 비틀었다.
2019-02-18
목소리가 다시 부정했다.“아니야. 나, 틀려.”게이머도 아니고 엔피씨도 아니라면…… 아 혹시.떠오르는 것을 물었다.“혹시 너 전신불수 환자야?”“전신불수가 뭐야?”“그러니까 몸이 아파서 꼼짝도 할수 없는 사람.”“아니야. 나, 틀려.”그녀의 대답에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이도저도 아니면 뭐란 말인가?“나, 신. 이 세계, 만들었어. 한상이 말했어. 나, 신.”헷깔려하고 있는 것도 잊을만큼 충격적인 한 마디에 나는 순간 몸이 굳는 듯 했다.“한상? 우리 형 성한상 말이야?”“성한상, 맞아. 한규의 형, 맞아.”“너 우리 형을 알고 있어?!”“응, 알아.”“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나도 모르게 언성이 거칠어졌다. 대답하는 목소리
피부의 질감은 나무 그대로였는데 흡사 살아있는 듯 근육의 움직임마저 느껴졌다.멍청하게 서 있는 나무인형을 때리는 것 보다는 재미있겠지.기수식인 삼체식을 열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나무인형이 두 팔을 뻗어 나를 안아쥐려 한다.두 손을 가슴 앞에 십자로 꼬고, 서로의 탄력을 이용해 뻗는다. 왼쪽 팔로 목각인형의 손을 밀치고 오른 주먹을 인형의 인후에 찔러넣었다. 오행권중 포권(砲拳)이다.빠악―뭔가 단단히 깨지는 소리가 나며 인형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주먹 끝에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든다. 오래간만에 마음껏 주먹을 내지르고 나니 가슴의 답답한게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다리를 45도 왼쪽앞으로 내딛고 뒷발을 당겼다.
“요새는 별로 배우는것도 없어. 석수동에 대형마켓 들어온후로 매출이 팍 떨어졌다고, 매일같이 증권에 빠져지내니까. 그것도 벌었다가 잃었다가 난리도 아닌 모양이던데.”한규가 죽을 입에 밀어넣으며 중얼거린다.“그러다가 사모님한테 이혼당하는거 아닌가 몰라?”“하하, 설마.”“설마가 아니라니까. 하여간 돈버는데는 소질없는 사람이야. 장사부님도, 우리 형처럼…….”한규가 다시 형을 보며 한숨을 쉰다.“아무튼 너네 형, 오늘부터 일반병동으로 옮긴데. 아버지에게 말해서 1인실은 마련해 두었는데…….”“한달에 얼마쯤 드냐?”문기가 고개를 젓는다.“아서라. 돈얘기는 관두자.”“말해 봐.”한규의 말에 문기가 머리를 굴렸다.
“그보다 정말 무슨 꿍꿍이입니까? 도대체 뭘 만드는거에요? 한두해가 아니거든요? 그 서버안의 유령같은 존재.”제동의 물음에 한상은 손가락을 들어 입을 막았다.“쉿, 나중에 말해줄게.”“나한테도 비밀입니까?”“일단은.”“혹시 그녀의 실종과 관계있는 일입니까?”제동의 나즈막한 물음에 한상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어느정도는 있어. 하지만 나쁜일은 아니야. 아무튼 조금만 더 기다려줘.”제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네 살 어린 상관이지만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다리라니 기다릴 수밖에. “자자! 오늘의 회식은 이만하죠. 다들 취했으니 일은 무리고, 일찍일찍 집에들 돌아갑시다!”한상이 자리에 일어나 외
“그럼 오늘도 상점거리를 위해 퀘스트를 해볼까?”검을 들고 경쾌하게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니 웃음이 나왔다.“무슨 나와바리 관리하는 조폭같은 멘트다?”“캭, 그런거 아냐.”“누가 현실에서도 협객의 아들 아니랄까봐.”말을 하며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롬로스 본성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깃발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이다.혜나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건지…….고개를 흔들며 문블레이드와 함께 나는 상점거리 안으로 향했다. 3 “팀장님, 저녁드시러 가셔야죠?”늘어진 티셔츠에 펑퍼짐한 칠부바지.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다른 남자들에게 보여줄 모습은 아니지만, 유채림씨는 천연덕스럽게도 그런 꼴을 하고
“알겠다. 그럼 일단 계도조치로 마감하고, 같이 서류작성좀 하자. 그동한 한규는 문기랑 같이 어디서 놀고있어. 한시간정도면 끝날테니까, 밥사줄게.”“지금 아홉시도 안됐어요. 열시에 점심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외상으로 달아놓을테니까, 얼렁 처리나 해줘요.”한규가 투덜투덜, 성철이는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올리고는 유이와 함께 가림막 뒤쪽의 책상으로 갔다.그사이 호열이 한규에게 말을 건다.“한규 너도 샹그릴라 하고 있어?”“아? 아, 네. 여기 문기도 같이에요. 저는 한큐, 문기는 문블레이드. 형은 이름 뭐에요?”“아? 나는 레샤트. 지금 그로얀 왕국에서 두 번째로 레벨이 높아.”그러고보니 이름을 몇번 들어본적 있는듯도
한규의 등교길은 언제나처럼 한산했다.특히 문기와 만나는 이 골목은 앞 뒤 모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서안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오우 한큐!”“문기냐?”“큭큭, 이제는 현실에서도 문블레이드라고 불리고 싶다.”내일이 방학식이지만, 문기는 여전히 자켓차림이다. 속은 반팔의 하복으로 바꾸어 입었지만.“변태 놈. 여캐가 뭐냐 여캐가.”“아직도 그 소리냐? 말했잖아, 게임속 캐릭터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키우는 아이 같은거라고. 나는 딸이 좋다.”“그나저나 용캐도 하고 있다. 금방 때려칠줄 알았는데.”“뭔소리야? 얘기했잖아, 샹그릴라 세계에서 최고가 될거라고. 게다가 재밌던데, 게임. 왜 애들이 전부
신전의 입구로 나온 나는 문득 늑대를 잡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리 잡을때마다 체력이 이렇게 줄어서야 사냥이 짜증날 듯 싶었다.문득, 샹그릴라가 현실과 상당히 비슷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위력있는 기술들이 이곳에서도 어느정도 위력을 나타내지 않을까?물론 근력이나 나머지 신체 능력은 수치료 표시되어 정해져있다. 하지만 그런 신체기술을 극대화 하는 것이 바로 무술들이다.“야, 문블레이드.”“어? 왜?”“너 나한테 한번 맞아봐라. 어차피 여기 치료약도 있고 하니까.”문블레이드는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뭔 소리야 그게?”“기술 들어가나 보
적어도 사람의 표정과 반응만큼은 제대로 구현해냈다. 엘리제가 기뻐하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아아! 쿠키로 보답하기로 한게 부끄러울 지경이에요. 이렇게나 좋은 상품을 가져다 주시다니…… 하지만 제가 해 드릴수 있는게 그것뿐이니.”“됐어요. 약속대로만 해 주면 돼요.”정말로 미안해 하는 그녀를 향해 내가 답했다. 내가 가져오려던 야생화를 가져와도 그녀가 이렇게 기뻐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블레이드의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두 분이 나간 사이에 쿠키를 구워두었어요. 금새가져다 드릴게요.”엘리제는 이렇게 말하며 가게 안으로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비슷한 숲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숲에 가려있긴 해도 아직 성벽이 눈에 보였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리 무서운 괴물들은 나오지 않을 듯 했다.그래도 게임 초보인 문기에게 말을 해 둘 필요가 있다.“숲 안으로 너무 들어가지 않는게 좋아. 보통 멀리 갈수록 강한 몬스터가 나오니까. 우리 레벨에는 약한 괴물이라도 걸리면 죽기 딱이다.”문득 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죽을 경우 일정량의 패널티가 존재했다. 현실감을 장기로 내세운 샹그릴라에서는 어떨까? 혹시 많이 아프거나 한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오케이. 하지만 뭐, 뭐가 나오든 때려잡으면 될거 아냐. 너랑 내가 같
문블레이드가 손가락마디만한 조약돌을 주워 노인에게 건냈다. 노인은 돌멩이를 두 손 사이에 넣더니 합합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번쩍, 빛이 나며 돌멩이는 투명한 수정덩이 같은 것으로 변했다.“허허, 이걸 받게나.”반짝거리는 돌멩이를 내게 넘겼고, 나는 순순히 그의 손에서 따듯한 돌을 받아쥐었다.돌멩이는 이미 평범한 조약돌이 아니었다. 은근한 힘이 돌멩이에서 느껴졌다. 흡사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손을 잡아끄는 것 처럼, 돌멩이를 쥔 손이 일정한 방향으로 힘을 받는다.“길찾기의 마법이네. 허허, 엘리제를 도와준다니 내 특별히 힘을 쓴 것일세.”뭐야 이 노인네는? 나의 이러한 눈빛에 변명이라도 하듯 노인이 말한다.“이 세
그러는 사이 요정은 나를 롬로스 성의 중앙 분수대 앞으로 데려갔다. 날아오는 동안 무게가 느껴지지 않던 내 몸이 점차 무거워지며 분수대 광장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제 할 일은 이것으로 끝이네요. 페이가 일을 잘 했노라고, 엘모아님께 말씀드려 주세요.”페이라는 요정은 내 몸을 두어번 멤돌더니 하늘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분수대 광장에 발디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한상이 형이 말한데로, 예전에 접속했던 샹그릴라와는 완전히 틀렸다. 겨우 캐릭터를 만들어 첫 마을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리의 풍경에서, 시장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이르기까지 게임에 접속한게 아니라 정말 다른 세계
정찬을 즐기는 도중에도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게임 내용 소개가 계속되었다. 코스식 요리였기에 각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질문, 답변 시간이 충분했다.“그럼 지금 샹그릴라 세계에서는 그로얀 왕국과 케세린 공국이 전쟁중이란 말씀이신데, 공성전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냥 설정만 있는 것입니까?”한 게이머의 질문에 기획팀 직원이 대답을 했다.“당연히 공성전이 존재합니다. 우선 양 국가 사이에는 ‘거인의 허벅지뼈’라는 좁은 땅과 켈드리안 산맥이라는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전쟁은 양국중 어느 한쪽이 수도를 빼앗기면 끝이 나는 형식인데, 거인의 허벅지뼈를 통한다면 간단하게 상대편 수도에 도착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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