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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Chapter 2.
싹트는 우정

하늘이 맑게 갠 아침. 아이딘은 비교적 일찍 눈을 떴다.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가져가 보니 문은 열려 있었다. 어젯밤에도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는 소리가 났으니 오늘 아침 일찍 자물쇠를 풀어 놓은 듯싶다.
이런 죄수 같은 취급이 어떻게 생각해 보면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적어도 총을 겨누지 않으니 그 정도가 어딘가 싶었다. 그저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신세를 지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조건일 거라고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예리엘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작업대 테이블에 와 보니 경비대에 다녀올 테니 냉장고에 있는 샌드위치를 먹으라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정말 예리엘은 여러모로 생활력 강한 여자다.
아이딘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예리엘이 미리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가 보였다.
“예리엘 이 여자는 언제나 통이 크군.”
고작해야 그와 예리엘 이렇게 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샌드위치는 언뜻 봐도 10여 개 정도로 보였다.
아이딘은 맛있게 샌드위치를 먹었다. 정확하게 다섯 개를 먹었다. 더 먹었다가는 혹시나 아침을 먹지 않았을 예리엘의 샌드위치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샌드위치를 씹어 삼키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심심했다. 예리엘이 없다 보니 무료하게 시간만 흘러갔다. 작업장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없었다. 점점 더 심심해졌다. 테이블에 있는 성냥을 가지고 귀를 팠다. 그리고 성냥으로 탑도 쌓았다. 한 층, 두 층…… 이 짓도 성냥 다섯 갑을 쓰고 나니 무료해졌다.
쾅!
그때 갑자기 거칠게 가게 문이 열리면서 이틀 전에 식당에서 혼꾸멍을 내 주었던 호퍼라고 불리었던 덩치를 필두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아이딘의 무료한 오후를 달래 줄 참으로 반가운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인마, 너! 여기 숨어 있으면 못 찾을 줄 알았어?”
아이딘에게 혼쭐이 났던 호퍼라는 덩치 녀석이 기세등등하게 소리친다.
“어. 그간 잘 있었어?”
반갑다는 듯 아이딘이 손까지 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호퍼를 더욱 자극한 것 같다.
“이게 그냥…… 네놈이 언제까지 까불 수 있을 것 같아!”
호퍼가 더욱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아이딘이 호퍼의 뒤에 서 있는 녀석들을 쓰윽 훑었다. 모두 다섯 명의 거한들. 보통 이상의 덩치인 호퍼가 이들 속에서는 평범하게 보일 정도다.
다섯 명 모두 비계 속에 적절히 섞여 있는 근육질 모습에서 힘 좀 쓴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하지만 아이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후 벌어질 일들이 어느 정도 예측되었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묘한 자신감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 혼자서는 무리라는 걸 안 거야?”
호퍼가 정곡을 찔린 듯 살짝 움찔했다. 아무래도 이 빨간 머리 녀석을 혼자 상대하기 힘들어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일러바쳤는데 그 속을 들킨 것만 같아 뜨끔했다.
호퍼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채 자기합리화를 시킨다.
“저, 저 녀석이야. 저래 봬도 만만한 놈은 아니야. 엄청 센 놈이야.”
다섯 사람 중 한 명이 호퍼의 말을 잘랐다.
“호퍼, 호퍼, 호퍼. 저 녀석 정도는 나 혼자로도 가뿐할 것 같은데 이렇게 요란을 떨어?”
빈정대는 투로 호퍼를 핀잔하는 거구의 백인은 잭슨이라고 노만 마을에서 주먹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건달이었다. 아마추어 레슬러 출신인 만큼 적어도 힘 하나만은 노만 마을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잭슨은 마을 건달 무리의 우두머리 같은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딘이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단지 치기 어린 아이들의 병정놀이 같아 보일 뿐이었다.
“니들은 뭐 하는 애들이니?”
아이딘이 마치 동네 꼬마들에게 질문하듯이 녀석들에게 묻는다. 그 비꼬는 듯한 말투에 잭슨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었다.
“네가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잭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이딘은 잭슨의 고함소리를 들은 척 만 척 태연했다.
정작 잭슨의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것은 잭슨의 뒤에 서 있던 호퍼였다. 그 꼴을 보고 아이딘이 키득거렸다.
“맞아. 네 이름이 호퍼였지? 어린애도 아니고 뭐 혼났다고 저 비곗덩어리에게 일러바친 거야?”
잔뜩 성난 잭슨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졌다.
“그 건방진 주둥아리부터 닥치지 못해.”
잭슨의 신호와 함께 잭슨의 동료들이 일제히 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살상용이라기보다는 위협용으로 적당한 스위치 블레이드였다. 호되게 당한 호퍼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 철저히 대비한 모양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잭슨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이 앞장서서 공격을 가해 왔다.
쉬쉭!
어제 아이딘에게 혼쭐이 난 호퍼가 선공을 가했다. 날카로운 스위치 블레이드가 아이딘의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아이딘이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어설프기 그지없는 공격이었다.
아이딘이 빠르게 발을 옮기며 가볍게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호퍼를 지나쳐 앞으로 나갔다. 그의 주먹이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휘둘러졌다.
퍼퍼퍼퍽!
“크악!”
“케엑!”
호퍼의 뒤에 따라붙은 네 명의 덩치들이 턱을 얻어맞고 일제히 쓰러졌다. 주먹 한 방에 한 명씩이었다. 그나마 대비를 하고 잔뜩 움츠렸던 호퍼만이 부들거리며 간신히 서 있을 뿐이다. 참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머지 네 녀석들이 끙끙대며 모두 바닥에 엎어져 턱을 붙잡고 신음한다.
“뭐, 뭐야?”
“뭐긴 뭐야. 모두 한 명에 한 번씩인거지.”
친절하게 대답해 준 아이딘이 호퍼의 명치에 또다시 주먹을 날렸다.
퍽!
호퍼는 나름 대비하고 막는다고 막지만 소용이 없었다.
“꺽……! 나 죽어…….”
호퍼는 머릿속에 있던 말을 미처 다 꺼내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제대로 서 있는 건 잭슨 하나였다. 아이딘이 그를 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날린다. 순식간에 뻗어 버린 동료를 바라보는 잭슨의 이마 위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지, 이런 괴물 같은 놈은?’
생긴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처음 여자같이 곱상한 아이딘을 봤을 때 호퍼의 허풍에 괜히 놀아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눈앞의 놈은 진짜다. 뒷골목에서 어설프게 주먹질하는 싸움패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전투기술을 교육받은 진짜 전사! 그런데 저런 녀석이 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넌 누구냐?”
잭슨이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딘이 마치 아이와 같은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건 나도 잘 몰라.”
“뭐?”
“모른다고.”
빠드득…….
잭슨이 이가 부서져라 깨물었다. 그는 아무래도 아이딘이 자신을 놀리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아예 대놓고 자신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딘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잭슨은 더욱 화가 났다. 이 건방진 녀석을 오기로라도 반드시 때려눕히고 싶었다.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 이래도 내가 레슬링으로 올림픽까지 나간 몸이야. 너 같은 것 내 조르기 한 방에 끝이 날 거야. 일단 잡히기만 해 봐.”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대지만 역시나 아이딘은 들은 척 만 척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무반응에 더욱 화가 난 잭슨이 드디어 아이딘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와 달리 무척 빠른 동작이었다. 덩치 큰 사자 한 마리가 어린 영양에게 달려드는 듯했다.
그렇지만 마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잭슨이라고 해도 아이딘의 실력에는 어림없었다. 아이딘은 자연스럽게 잭슨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자신의 멱살을 잡으려던 잭슨의 손등을 재빠르게 후려쳤다.
타악!
“윽!”
순간 잭슨은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짜릿함이 느껴지며 손등이 시큰했다. 그가 다시 오른손으로 아이딘의 머리를 향해 찹?레슬링의 손날로 공격하는 기술-을 날리지만 어림도 없다. 아이딘은 사뿐히 몸을 날려 피한다.
비껴가는 아이딘을 향해 이번에는 잭슨이 팔꿈치로 엘보 공격을 한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빠른 연계 공격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이딘은 가볍게 피해 버린다.
퍽!
잭슨이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린다.
“커헉!”
가슴으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이 온몸을 찌릿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또 한 번의 주먹이 날아온다. 잭슨은 아이딘의 팔을 낚아채려 한다. 낚아채기만 하면 바로 이 녀석은 끝장이다. 그러나 아이딘은 잭슨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또 한 번 속절없이 명치에 주먹을 맞았다.
“허억!”
숨이 막혀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잭슨은 비틀거리며 몸을 추스른다. 아이딘은 그런 잭슨이 안되어 보였는지 한 걸음 물러선다.
“계속 할 거야?”
대답하려 했지만 숨이 막혀 잭슨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간다.”
아이딘이 다가선다. 잭슨은 또다시 아이딘의 팔을 잡으려 한다. 아이딘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분명 달랐다. 결국 잭슨이 아이딘의 손을 낚아챘다. 이제 이 팔을 꺾기만 하면 되는데…… 잭슨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아이딘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수없이 많은 상대를 만나 봤지만 아이딘은 그들과 차원이 달랐다.
잠깐의 대치 속에 묘한 싸늘함마저 느껴졌다. 잭슨은 더 이상 힘을 줄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기다릴 뿐이다.
휘이익…… 퍽!
“……!”
왼쪽 턱을 강하게 얻어맞은 잭슨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서 바닥에 그대로 축 늘어졌다.

잭슨은 짧은 꿈을 꾸었다. 아마 오래전 기억의 단편인 듯싶기도 하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환호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강력한 라이벌. 치열한 경기. 금메달을 앞에 두고 마지막 힘을 쏟아붓는 두 선수의 모습. 그러나 모든 것이 대재앙과 함께 사라져 간다. 과거의 기억들이 부질없이 붉은 불길에 휩싸여 오른다.
“헉.”
“이제 정신이 든 거냐?”
“여기가 어디지?”
잭슨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자신의 옆에 호퍼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얌전히 무릎 꿇고 앉은 채 잭슨을 바라보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호퍼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이 울먹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시선은 자연히 의자에 걸터앉은 아이딘에게로 향한다.
“뭐, 그냥 싸우다 네가 기절했다. 이제 깬 거지?”
잭슨은 주변을 돌아본다. 호퍼와 아이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어떻게 된 거야? 나머지들은 모두?”
“다들 갔어.”
“어딜 가?”
“그냥 갔지 뭐.”
호퍼가 울먹거리며 대답한다.
나쁜 녀석들. 뻔히 알면서도 묘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놈들을 마치 친형제처럼 대해 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살길만 찾아 내빼다니!
그나마 옆에 있는 호퍼 덕에 위안이 되었다.
“호퍼 저 녀석이 너랑 같이 간다고 버티고 있더라.”
말을 마친 아이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잭슨에게 다가선다. 잭슨은 순간 몸서리가 쳐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수많은 생각이 엇갈렸다. 눈 딱 감고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다시 한 번 공격이라도 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런 그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이 아이딘이 씨익 미소까지 지으며 엎어져 있는 잭슨에게로 서서히 다가온다. 잭슨이 아이딘으로부터 풍겨지는 말 못할 위압감에 침을 꿀꺽 삼킨다.
외모는 여려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녀석이었다. 애당초 자신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이다. 아마 저 녀석이 조금만 더 힘을 주었다면 호퍼와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온몸이 오싹하고 떨릴 정도였다.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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