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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역사위원회] 5화

행성역사위원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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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5화
행복한 남자(2)

이슬휘가 이렇게 바뀐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 때문이었다.
예전의 그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었다. 그저 버그가 발생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앞뒤 가리고 잴 것 없이 버그만 제거하고 오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난 후부터는 버그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사건까지 미리 다 훑어본 후에야 그 시점으로 들어갔다.
뭐랄까, 인간에게 관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건 찻집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던 기분과는 다른 것이었다.
찻집에 앉아 구경할 때는 그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현재의 현상을 관찰한 것이라면, 지금은 그 사람의 일생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었다.
소현 세자도 그녀만큼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었다. 역사책과 아카식레코드를 통해 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인생이 안타까워졌다.
큰 뜻과 의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에는 실패하는 영웅.
이슬휘는 책을 덮고 지하로 내려가 타임머신에 앉았다.
이슬휘가 가서 할 일은 세자를 아담 샬 신부와 만나게 해 주는 일이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세자의 운명을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신부를 만남으로 해서 세자가 가지게 될 희망과 열정을 생각하니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것이 자기의 임무인 것이다.
버그를 제거하는…….
이슬휘는 심호흡을 하고 타임머신의 도착 시간을 1644년 9월, 장소는 베이징으로 입력했다.

***

이슬휘는 베이징의 한 객점에 앉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자는 도르곤과의 만남 이후 혼자 밤길을 걷다가 괴한을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물론 세자 혼자의 힘으로 괴한의 칼을 피해 도망가지만 슬휘가 슬쩍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버그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자가 외부 접촉을 피하면서 아담 샬 신부를 만날 기회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계기만 만들어 주고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자가 닫힌 마음을 열고 직접 나서서 아담 샬 신부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역사 속의 지구인과 접촉하지 말라. 지구인의 역사에 개입하지 말라.
이슬휘가 교육받을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슬휘는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기가 그녀를 만나고 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역사에 있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의 존재라는 것이 역사의 물줄기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놓을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녀도 그렇고 세자도 결국에는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실패하는 역사이니, 설령 자기의 존재가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과 같이 소멸해 버리면 끝인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이슬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세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이슬휘가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세자는 이미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웬 놈들이냐?”
세자가 괴한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괴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칼을 꺼냈다.
스르릉.
칼집에서 칼이 빠지는 소리가 골목에 퍼지자 세자의 얼굴이 공포로 뒤덮였다.
숨어 있던 이슬휘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어허, 무기도 없는 사람을 둘러싸고 이게 뭐하는 짓들이오?”
이슬휘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두목인 듯한 자가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못 본 척하고 가던 길이나 가거라!”
슬휘는 그들과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섰다.
“이미 본 것을 어떻게 못 본 척할 수가 있겠나? 안 그런가?”
“오냐, 정 소원이라면 이놈과 저승길 길동무나 하려무나!”
두목이 이슬휘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이슬휘도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두목의 칼이 매섭게 이슬휘를 향해 쏘아져 왔다. 이슬휘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두목의 칼을 피하면서 두목의 옆구리를 향해 칼을 뻗었다.
두목도 만만한 자는 아니었다. 어느새 이슬휘의 칼을 피하더니 다시 역습을 해 왔다.
두목의 칼이 사선을 그리며 이슬휘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이슬휘는 얼른 칼을 들어 그 칼날을 막았다.
챙.
쨍그랑.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숨 가쁘게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쯤인데…….’
이슬휘는 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해 봤다.
그때였다. 골목 입구에서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평복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군졸들이 나타났다.
“저놈들을 잡아라!”
평복 중 하나가 소리치자 군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두목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애들아, 일단 이곳을 뜨자!”
그 말과 함께 괴한들은 골목길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군졸들은 괴한들을 뒤쫓는 대신 이슬휘를 에워쌌다.
그때 세자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제지했다.
“아니오, 그러지 마시오. 이분은 나를 도와준 것이오.”
그때 평복이 나서며 세자에게 깊숙이 인사를 했다.
“세자 저하, 어디 다치신 곳은 없사옵니까?”
“나는 괜찮소. 절체절명의 순간에 저분이 나타나 나를 구해 주었다오.”
“천만다행이옵니다. 예친왕 전하께서 저희들을 보내 세자 저하를 댁까지 모시라고 했사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다니……. 제대로 모시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

세자는 인사를 하고 싶다며 이슬휘를 붙잡았고 이슬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세자와 동행했다. 세자는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거처에 도착했다.
도르곤이 보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자 세자는 슬휘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여보시오, 빈궁. 이분이 오늘 내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이오.”
빈궁이 가볍게 인사를 했다.
세자가 빈궁에게 말했다.
“내 목숨의 은인과 술 한잔할 터이니 술상을 좀 봐주시오.”

***

조촐한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세자와 이슬휘가 마주 앉았다. 세자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
“내 목숨을 구해 주신 분인데 서로 통성명이나 합시다.”
이슬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세자 저하이신 줄 몰라 뵙고 결례나 저지르지 않았나 염려되옵니다.”
“아니,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 그런 거 없소이다.”
“저는 이슬휘라고 하옵니다. 푸른 구슬 슬 자에 빛날 휘 자를 쓰옵니다.”
이슬휘는 자기 이름을 말할 때마다 묘한 자부심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 이슬휘 공. 그대는 혹시 조선 사람이시오?”
“네? 아, 저는…….”
난데없는 질문에 슬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물어보던 것이 생각났다.
“역시 그렇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소. 나라가 힘이 없어 제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니 이렇듯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겠소…….”
‘아니, 뭐라는 거야?’
그래도 어쨌든 곤란한 질문은 넘겼으니 다행이었다.
그때 봉림대군이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형님! 괴한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셨다고요? 다치신 덴 없습니까?”
“어허, 손님도 계신데 웬 호들갑이냐? 난 괜찮으니 진정하거라.”
봉림대군은 그 말에 힐끗 이슬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인사를 했다.
“세자 저하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인사를 마친 후 다시 세자를 향해 물었다.
“근데 그 괴한들이 누군지는 모르십니까?”
“그걸 어떻게 알겠냐? 다만 짐작할 뿐이다.”
“짐작이라뇨?”
“내 생각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세 가지라고요?”
“첫째는 명의 잔재들이 아닐까 한다. 내가 도르곤과 친하니 표적이 된 것일 수 있고.”
세자는 술로 입을 축인 후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아직 북경의 치안이 완전하지 못하니 그 틈을 노린 단순 불한당일 수도 있지.”
“세 번째는요?”
“세 번째 가능성은……. 됐다. 난 이분과 술이나 한잔할 터이니 넌 그만 나가 보아라.”
‘세 번째 가능성은 세자를 반대하는 조선의 일부 세력일 수도 있겠지요.’
이슬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세자의 말을 짐작해 보았다.
봉림대군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세자는 말없이 술잔을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한참 만에 세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두렵구나…….”
이슬휘는 세자의 심정을 모르는 척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꺼냈다.
“제가 마침 북경에서 이삼 일 정도 머무를 시간이 있사오니 그동안 제가 세자 저하를 모시겠사옵니다. 그 후에는 예친왕께 호위를 부탁하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그래, 그대가 그렇게 해 준다니 내 마음이 놓이는구려. 고맙소, 이슬휘 공.”

***

“세자 저하, 예친왕께서 서찰을 보내셨사옵니다.”
세자는 예친왕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아마 지난밤의 말다툼 때문이리라. 세자는 서찰을 받아 읽더니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사옵니까?”
이슬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세자는 그를 보고 활짝 웃으며 답했다.
“첫째, 어제 일을 사과한다고 했소.”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사옵니까?”
“아니, 그대가 그것까진 알 필요가 없소…….”
세자는 잠시 표정을 찡그렸다가 다시 펴며 말을 이었다.
“둘째, 어제 내가 위험했던 일을 보고받고 바로 호위병을 붙이라 지시했다는구려.”
“참 잘되었군요. 세자 저하께서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북경에서 황제의 즉위식이 끝나면 우리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는구려.”
“감축드리옵니다. 드디어 그리던 조선으로 돌아가실 수가 있게 되었군요.”
세자는 강빈과 봉림 대군 등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이 잠시 후 환호성을 터뜨렸다.
옆 사람과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사람 등 반응은 제각기였지만 그 마음은 모두 하나임에 틀림없었다.
“올해 내로는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모두들 그리 알고 준비하도록 하시오.”
세자의 분부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

“이보시오, 이슬휘 공. 나는 조선에 돌아갈 때까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청과 명의 흥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오.”
“참 좋으신 생각이옵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사옵니다.”
슬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슬휘는 잠시 세자를 한 번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세자 저하, 이곳에 아담 샬이라는 아주 훌륭한 색목인이 있다 하는데 한 번 만나 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누구라고요?”
아차, 이 시대에 이렇게 영어 이름으로 말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지.
‘아, 뭐더라……. 아담 샬의 한자 이름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담 샬로 기억을 하다 보니 그가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
탐지기를 통해 확인하면 금방이겠지만 세자 앞에서 탐지기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그……. 탕……. 탕…….”
그래, 맞아. 탕약.
“탕약. 탕약, 뭐라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세자가 무릎을 쳤다.
“옳거니. 탕약망(湯若望)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네, 맞습니다. 탕약망!”
슬휘는 진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도 탕약망을 아시오? 그렇잖아도 도르곤이 그를 한 번 만나 보라고 추천을 해 주었소만…….”
“네, 저하. 그 색목인의 나라는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들과 다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없는 문물들이 많이 있다 하니,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저하께서 생각하시는 조선의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좋소. 그리하도록 합시다.”
세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아담 샬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여봐라, 이 서찰을 탕약망에게 전달하고 면담 일시를 받아오도록 하여라.”
세자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대가 가득했다. 이슬휘는 착잡한 심정으로 세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제 자기의 임무는 거의 완수한 것과 다름없었지만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세자는 나라를 위해 하나라도 더 듣고 배우려 했지만 끝내 그것들을 써먹지 못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나비의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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