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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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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황금의 어스듐
[데일리게임] 라디는 두 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쳐졌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라디에게 티노는 씩 웃으며 태연히 말했다.

“그런 인사는 고쳐졌는지 확인한 뒤에 해야지.”

“……후후, 알았어.”

라디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더니 냉큼 원석 세척실로 달려갔다. 그 뒤를 티노가 느긋하게 따랐다.

티노가 원석 세척실 앞에 도착했을 때 열린 문 안쪽에서 라디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녀는 벌써 공구의 연결단자에 회로를 연결하여 원석을 잘라 보고 있었다. 그리곤 감동과 감격으로 일렁거리는 눈으로 티노를 돌아보았다.

“쓸 만해?”

“쓸 만한 것 이상이야!”

“그래? 그럼 이제 인사해도 괜찮아.”

티노는 문에 기대어 서서 일부러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크게 기대는 안 했었는지 라디는 좀 전과는 달리 잔뜩 흥분해서 공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외쳤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천만에.”

어깨를 으쓱이며 응답한 뒤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출발해야 하지 않아? 아슬아슬한 거 같은데?”

“앗! 늦었어!”

라디도 얼른 시간을 확인하고 허둥지둥 필기도구를 비롯해서 공구 등을 챙겼다.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쩜 좋아! 시문 님 아침식사를 준비 못 했어!”

“지금 그게 문제냐?”

티노는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기야 승급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도 시문의 식사만은 챙기러 나온 라디가 아니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얼른 가.”

“하지만 네 식단은 너무 무성의하단 말이야!”

지금 그걸 걸고넘어질 상황이냐, 라는 진심을 삼키고 티노는 곧 시험 보러 가야 할 라디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제대로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어. 잘은 하지 못해도 사람이 먹을 수 있게는 만드니까 걱정 마.”

그리곤 메뉴까지 정해 줄 태세인 라디의 주의를 돌려 버렸다.

“이러다 식사시간에 맞춰 만들지 못하겠다. 어서 가. 뱅커 타고 갈 거지?”

“뱅커는 공방의 것이라…….”

라디가 우물쭈물하자 티노는 나서서 뱅커 열쇠를 꺼내어 건넸다.

“수습 기술자의 승급시험은 공방의 일이기도 해. 그러니까 상관없어.”

“……고마워.”

승용물을 타고 가지 않으면 시험 시간에 늦을지도 모르기에 라디는 자신의 등을 떠밀어 준 티노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워하며 열쇠를 받았다. 시험에 필요한 것들을 챙긴 가방을 메고 공방 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티노를 돌아봤다.

“……?”

티노는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라디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래?”

“티노.”

“응?”

라디는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도로 티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말 테이슨 경 안 만나는 거지?”

“그렇다니까. 같은 걸 왜 자꾸 물어?”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으로 티노를 뚫어지게 보던 라디는 이내 기세가 한 풀 꺾인 얼굴로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됐어. 갔다 올게.”

“……?”

티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친위대가 시문의 작업실을 수색했다 해도 테이슨은 전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인데 왜 그만 걸고넘어지는 걸까? 친위대에서 그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 테이슨뿐이라 해도 라디의 거듭된 질문은 과한 면이 있었다. 어지간하면 테이슨과 관련된 화제는 피하고 싶은 티노였지만 이 상황에선 안 묻는 것이 더 이상할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입을 열었다.

“왜 테이슨 경만 들먹이는 거야?”

“…….”

열린 문 밖으로 한 발 내딛었던 라디는 그 상태로 굳은 듯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곤 푹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친위대가 공방을 수색하러 온 날, 나랑 웨이 선배는 세척실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러다 가지고 온 원석을 다 써 버려서 가지러 나갔다가 소란한 소리가 들려서 돌아와 보니까 친위대가 공방을 들쑤시고 있더라고.”

“그들 중에 테이슨 경이 있었어? 테이슨 경이 진두지휘라도 한 거야?”

“아니. 그랬으면 차라리 나았어.”

라디는 딱딱한 얼굴로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원석을 가지러 나갔을 때 정말 우연히 봤어. 테이슨 경이 공방 뒤쪽으로 몰래 가고 있는 거.”

“……?”

정문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후방을 선점하는 건 이상할 게 없지 않나? 티노의 당연한 의문을 읽은 라디는 한층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다 공방 쪽이 소란해지니까 순식간에 몸을 감췄지. 마치 그들을 피하려는 것처럼.”

당초 예정대로 팬케이크를 두툼하게 구워서 허니버터와 소시지, 샐러드, 구운 감자를 곁들여 아침을 차렸다. 먼저 시문에게 갖다 줄 것을 접시에 담아서 쟁반에 올렸다. 이런저런 소동 때문에 평소보다 늦어 버렸지만 굳이 급하게 움직이진 않았다. 시문이 식사에 무심하고 시간 개념이 느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업실 앞에 도착해서 두꺼운 철제문 옆의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얼마 뒤 문이 열리며 시문이 나왔다. 그는 티노와 티노의 손에 들린 아침식사를 번갈아 보고 물었다.

“라디 양은요?”

“오늘 승급시험이 있는 날이잖아요.”

“아…….”

명색이 공방 주인에 장인이면서 승급시험일도 몰랐던 겁니까?! ……라고 새삼 어이없어하기엔 시문의 지나친 털털함을 잘 알았던 티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곤 쟁반을 앞으로 내밀었다.

“잘 먹을게요.”

시문은 오늘 아침식사의 출처를 궁금해하는 일 없이, 평소보다 늦게 왔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쟁반을 받아들었다.

“공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승급시험에 도전하다니, 웨이 군이 긴장하겠군요.”

“지나치게 긴장해서 문제였죠.”

수습이라곤 하나 명색이 기술자가 남의 소중한 공구를 부술 정도로 말이다.

티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리 없을 텐데도 시문은 캐묻기는커녕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티노 군은 아직 식전인 겁니까?”

“예. 이제 가서 먹어야지요.”

“그럼 가져와서 같이 먹지요. 오늘은 라디 양도 웨이 군도 없지 않습니까?”

“……예. 그러죠, 뭐.”

티노는 혼자 밥 먹는 것을 꺼리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권하는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 같이 먹으면 내일도 (라디가 만든 것을)같이 먹게 될지 모른다는 계산속이 살짝 있기도 했다.

며칠을 치워도 표가 안 나는 작업실에서 둘이 무엇을 먹기란 참으로 힘들었기에 처음으로 시문의 침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작업실과는 달리 침실은 깨끗했다. 아니,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물건이 없었다. 침대, 조명기와 작은 액자 하나가 놓인 낮은 협탁, 탁자와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티노는 저도 모르게 협탁 위에 있는 액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침실에서 유일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한 아가씨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말랐고, 안색도 창백하고, 입술은 시퍼레서 예쁘지는 않은 아가씨였지만 보는 사람이 행복해질 정도로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무심코 빤히 바라보던 사진에서 의식적으로 눈을 떼었다. 티노를 아무렇지 않게 방 안에 들이며 사진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숨기고 싶은 비밀은 아닐 테지만, 저것이 시문의 지극히 사적인 물건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시문은 탁자에 쟁반을 놓은 뒤 침대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곤 침대에 앉아서 티노에게 턱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은 티노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쟁반 두 개를 놓자 탁자가 꽉 찼다.

언제나 식사를 순식간에 해치웠던 시문이 오늘은 웬일로 천천히 먹었다. 티노와 속도를 맞춰 주려는 것 같았다.

“환기가 잘된다 해도 햇빛이 들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으세요?”

“별로요.”

전에는 이 안에 비밀통로가 있어서 남몰래 외출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근래 같이 작업해 보니 시문은 정말 지하 작업실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다. 티노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작업이 막바지에 달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명색이 귀족이신데 집안일 같은 건 없으세요?”

“테이슨 경한테 듣지 못했나요? 전 몇 년 전에 집안과 연을 끊었습니다.”

그야 듣긴 했지만, 지금은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하지만 어스듐은 제공받고 계시잖아요.”

시문은 잠시 소리 없이 웃었다.

“티노 군이라면 충분히 알아차리고도 남을 텐데 아무래도 귀족이 아니다 보니 귀족의 사고방식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군요. 바로 그 집안일에 불려 나가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대외적으로 연을 끊은 겁니다. 말했잖습니까? 포화상태에서 계속 씨드를 주입하면 폭발한다고.”

“아……!”

거기까지 말해 주자 그 이면에 깔린 저들의 계산속을 읽을 수 있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눈을 뗄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이라 시문은 작업하는 동안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하지만 귀족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생활하려면 마냥 작업에만 매진할 수 없을 테니 의심받지 않고 두문불출할 수 있도록 대외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낸 거다.

“그러면 이번 작업이 끝나면 다시 집안과 화해하시겠네요?”

“글쎄요…….”

“……?”

시문의 얼굴은 분명 평소처럼 색깔 없는 미소를 그려 내고 있었지만 음성은 마른 나뭇잎처럼 버석거렸다.

“그들이 절 내버려 둔다면 그래 줄 수도 있겠죠.”

“예?”

시문은 대답 없이 싱긋 웃고는 팬케이크에 허니버터를 듬뿍 발라 입에 넣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다.

지하 작업실은 이제 조명등을 켜지 않아도 운신이 어렵지 않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어스듐의 광채가 대형 조명등에 버금가게 환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노는 며칠 전부터 사다리에서 내려오자마자 곧장 어스듐이 있는 곳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 보면 시문이 조명을 켜서 구석구석까지 밝아졌다. 이번에도 곧장 어스듐 쪽으로 가는데 시문이 그를 불렀다.

“티노 군.”

“예?”

“알려 줄 게 있어요.”

그러면서 사다리 아래서 손을 까딱였다. 티노는 토 달지 않고 그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시문은 옆의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이 스위치 보이죠?”

“조명등 스위치잖아요.”

벽면에는 시문의 손바닥만 한 네모난 철판에 두 개의 스위치가 세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시문은 네모난 철판의 아래 부분을 손끝으로 눌렀다. 그러자 달칵하는 소리가 나더니 철판의 하단이 앞으로 조금 튀어나왔다. 그것을 들어 올리자 두 개의 스위치 사이로 또 하나의 스위치가 보였다.

“위의 비밀문을 여는 스위치입니다. 이걸 누르면 비밀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위의 작업실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여는 것이기 때문에 비상시에만 사용해야 하는 겁니다.”

“헤에……!”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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