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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5화

액티브 스킬은 구급법과 마나 호흡법이다.

평소 활은 애용하지 않지만, 보너스 스텟을 위해 일단은 스킬 획득만 해 두었다.

아머 마스터리는 희망하는 종류의 갑옷을 걸친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습득할 수 있어, 그 난이도가 쉬운 편이다.

지금은 가죽 갑옷밖에는 없지만, 나중에 여유가 되면 천이라던가 철제 갑옷 등의 마스터리도 따로 얻어 둘 예정이었다.

‘유능한 조장이라.’

힘과 민첩, 체력과 감각. 무려 네 가지 능력치를 각각 5씩 상승시켜 주는 칭호를 얻었다.

초반용으로는 꽤 괜찮은 타이틀이다.

지금껏 꽤 많은 하울링을 처리하면서 상당한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거주했던 행성들을 모두 통틀어 봐도 손에 꼽을 만큼 빠른 성장 속도였다.

‘아직 부족해.’

그럼에도 그는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특수 스킬을 겸비한다면 3등급 하울링 하나쯤 우습게 제거할 수 있다. 좀 전의 러너처럼 말이다.

하지만 3등급 하울링이 한 놈이 아니라면?

전쟁은 늘 변수가 많다.

3등급 하울링이 한 놈씩 순서대로 그에게 덤벼든다는 법은 없었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그로서도 힘든 전투가 될 터.

‘노닥거릴 시간도 없겠군.’

어느덧 깊은 밤이 몰려왔다.

불침번을 제외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다들 오늘 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탁.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던 재희는 안정적인 자세로 바닥에 착지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는 조용히 이제 막 부대로 복귀한 참이었다.

야간 정찰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직 협곡에 남아 있을지 모를 하울링들을 찾아서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확히 다섯 마리의 노멀을 더 찾아낼 수 있었고, 모두 깔끔히 제거했다.

‘피곤하군.’

그는 곧바로 잠을 청하는 대신, 상체를 꼿꼿이 편 정자세로 앉았다.

피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스킬 한 가지가 떠올랐다.

언젠가 우연히 깊은 산골짜기에 있던 작은 사원에 몇 달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에게 명상법을 전수해 준 이는 사원의 늙은 수도승이었다.

명상을 끝낸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명상법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명상 시, 피로도 10% 추가 감소.]

[보너스 : 체력 +10]

피로에 쌓여있던 육체가 한결 회복되었다. 전신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때 산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런 유용한 스킬을 전수받지 못했을 테지.’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그였다.

이제는 수도승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할 만큼 아득히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 전수받았던 명상법은 지금까지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

‘음?’

잠을 청하기 위해 막 누우려던 찰나, 맞은편의 빈자리가 보였다.

잠든 병사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그는 곧 빈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브록?’

다른 병사였다면 소변을 보러 갔겠거니 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브록은 16조의 조원이다.

조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다름 아닌 조원을 챙기는 것이고.

‘기왕 조장이 된 거, 확실히 해야겠지.’

차라리 잘되었다.

원래 녀석과는 천천히 시간을 가져 볼 요량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브록과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분명 이렇게 해서, 이렇게…….”

진채를 세워둔 동굴 외곽의 공터에서 거한 하나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이었다.

부대 내에서 저렇게 큰 덩치를 지닌 사내는 그리 많지 않다.

클로버 보병대 소속이라면 검게 드리워진 저 커다란 그림자만 봐도, 단박에 그가 브록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동작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 보인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더듬거리는 모양새는 누가 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게 아닌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브록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동굴에서 하울링들과의 전투를 치른 이후, 줄곧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3등급 하울링을 간단하게 처리했던 그 녀석.

귀신같이 재빨랐던 재희의 동작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재생되는 중이었다.

칼잡이라면 누구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광경이었다. 26년을 살아오면서 그런 강자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칼 한 자루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장대한 포부를 가진 브록으로선 그저 재희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저 딴에는 재희가 선보였던 동작들을 따라해 보려고 하는데,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맘 같아선 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최악이었다. 시비를 건 것도 다름 아닌 브록 자신이었고.

‘때려 죽여도 그런 부탁은 못할 거야.’

브록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 본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다시 해 볼까?”

머리를 긁적이던 브록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재희의 동작을 재현했다.

“거기선 좀 더 과감하게 움직여야 할 텐데.”

“힉!”

예고 없이 불쑥 들어온 낯익은 음성에, 브록이 몸을 움찔했다.

“너! 아니, 조장님! 언제부터!”

“음. 이상한 춤을 추는 건 확실히 봤는데. 걱정 마. 조원들에겐 확실히 비밀로…….”

“추, 춤이 아닙니다!”

“아니었나?”

재희는 전혀 몰랐다는 듯 능청을 떨었다.

“하지만 춤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될 만큼 해괴망측한 동작이었는데.”

“그, 그, 그건!”

브록은 발끈했지만,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사실대로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푸흡.”

재희의 입술을 비집고 웃음 한 조각이 튀어나왔다.

“웃지 마……십시오.”

재희가 자신의 상관인 조장으로 막 임명된 터라, 별수 없이 존대를 하면서도 브록은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구나. 브록.”

생긴 건 영락없는 무뢰배인데, 의외로 촌사람 같은 순박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재희가 표정을 달리 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은 사라졌다.

“날 따라하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은데.”

“제, 제가 언제 조장님을 따라했다고……!”

“브록. 난 바보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딱히 트집을 잡을 생각은 아니었어. 날 따라하는 건 네 자유야. 저작권 운운할 생각은 없다고. 다만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지.”

“비효율적이라고요?”

“생각을 해 봐.”

재희가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말했다.

“너같이 덩치가 다부진 사람은 적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어. 한 마디로 표적대상이 되기 쉽다는 뜻이지.

“그러니 더 잘 피해 다녀야하는 것 아닙니까?”

브록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잘 보라고. 네 몸집은 나보다 두 배 이상은 크지. 달리 말하면 공격을 받을 면적도 그만큼 넓다는 의미고. 굉장히 비효율적이야.”

“그, 그렇군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야. 네가 날 모방하는 건 네 장점을 버리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답은 간단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 되는 거다.”

“……끙.”

브록의 표정은 어째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런 말은 나라도 할 수 있겠다,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브록이 흠칫했다.

“트,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재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픽 웃고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브록, 너의 장점은 그 우람한 덩치에서 나오는 근력이야. 반면 단점은 민첩함이 떨어진다는 거고.”

그런 말을 남기고는 재희는 인근에 있던 보급 막사로 들어갔다.

브록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멀뚱멀뚱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재희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각각 철퇴와 타워실드가 들린 채였다.

그는 브록에게 그것들을 건네주었다.

“네 장점인 파괴력을 잘 살릴 수 있는 무기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검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그리고 타워실드는 네 단점을 보완하기에 아주 적합한 방어 수단이지.”

타워실드는 덩치가 큰 브록의 몸조차도 전부 가려 줄 만큼 커다란 금속 방패다.

본래 타워실드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막으며 전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패다.

방어 면적이 넓은 대신 굉장히 무거워서, 원래는 타워실드 한 개당 병사 둘, 많게는 셋이 달라붙어야 들어 올릴 수 있는 방패다. 하지만 브록의 괴력이라면 일반 방패 대용으로 충분히 사용이 가능할 터.

“흐음.”

브록은 시범삼아 철퇴를 몇 번인가 휘둘러보았다. 의외로 손맛이 느껴지는 무기다.

“나쁘진 않군요.”

“철퇴를 휘두를 때 느껴지는 무게감에 익숙해지도록 해. 무게중심을 이용하여 적절히 힘을 더한다면 바위도 박살 낼 수 있지.”

“푸핫! 철퇴로 바위를 부순다고요? 농담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보여 줄까?”

“…….”

한없이 진지한 재희의 표정을 보며, 브록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저 인간이라면 정말 철퇴 하나로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브록.”

“예?”

브록은 추천받은 철퇴와 타워실드를 다루는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내가 봤을 때 넌 제법 소질이 있어. 체계적인 훈련만 받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실력자로 거듭날 수 있겠지.”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브록, 너만 괜찮다면…….”

재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브록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척이나 상기된 얼굴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고마워할 것까진 없는데. 내 교육은 무척이나 혹독하거든. 곧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는 끝내줍니다. 놀라시게 될 걸요?”

“그래?”

자신감 넘치는 브록을 보며, 재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혹독한 훈련에 곧 두 손, 두 발 다 들며 항복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이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참. 조장님.”

“응?”

브록이 망설이더니 곧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엔 죄송했습니다.”

“지난번이라니?”

지난번의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재희는 짐짓 시치미를 뗐다.

“네? 그게 그러니까…….”

브록은 말을 더듬거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녀석, 반응이 의외로 재미있단 말이지.’

그는 쿡쿡 웃었다.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난 벌써 잊어버렸는데.”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이제 너도 그만 잊어.”

그제야 브록의 얼굴도 한결 환해졌다.

재희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래야 녀석도 마을을 편히 내려놓을 것 같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훈련은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괜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오늘은 일찍 쉬지 그래? 이래저래 피곤할 텐데.”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법이 있지 않습니까?

뜨거운 콧김을 훅훅 뿜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브록이었다.

“그래?”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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