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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9화

‘그렇다면 오러를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인데. 그런데 이 녀석이 귀족이라면 어째서 병사들 틈에 섞여 있는 거지?’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뭐,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브록을 평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희가 가장 주목하는 항목은 다름 아닌 렌의 잠재력이었다.

‘A등급이라니.’

당연히 B등급인 브록보다 높은 등급이다.

렌은 지금까지 이 행성에서 봤던 사람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잠재력을 보유한 자였다.

A등급을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굳이 헤아려 본다면 스무 명쯤 되었을까? 그만큼 대단한 재능이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지?”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정신을 차리고 상태 창에서 눈을 떼자, 자신을 응시하는 렌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던 모양이군.’

정확히는 각막에 비친 렌의 상태 창을 관찰한 것이지만, 렌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쳐다봤다고 여겼으리라.

“자, 어쨌든. 이렇게 모든 조원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오늘은 내가 사지.”

주급을 받았으니 그 정도 여유는 있었다.

“캬! 역시 제이 조장이 최고다!”

병사들은 취기 어린 얼굴로 재희를 찬양하기 바빴다.

“참. 조장님도 한잔하시죠.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순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 따로 무언가를 주문하지 않은 재희를 보며, 브록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았다.

‘이 녀석들.’

재희는 피식 웃었다.

서로 은밀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녀석들을 보아하니, 이참에 자신에게 술을 진탕 먹여 볼 계획인 것 같다.

하긴. 겉보기로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음 직한 나이였으니, 주량만큼은 저들을 이기지 못하리라 판단했던 모양이었다.

몸을 쓰는 거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대개 주량이 강하다. 고된 하루를 마친 그들을 위로해 주는 건 술뿐이었으니까.

특히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은 술의 의존도가 한결 더했다.

‘어림도 없다, 이 녀석들아.’

재희는 그들의 의중을 모른 체하며 여급을 불러 세워 술 한 잔을 주문했다.

그 모습을 본 조원들은 순조롭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저들끼리 키득거리기 바빴다.

‘단순히 세월로만 따져 봐도 너희가 날 당해 낼 순 없을걸.’

살면서 마셔 본 술보다 마셔 보지 못한 술을 세는 게 더 빠를 만큼, 그간 다양한 주류를 접해 왔던 그였다.

물론 눈앞에 놓인 벌꿀술도 이미 마셔본 경험이 있다.

재희는 벌꿀술로 입술을 적셨다.

벌꿀향이 물씬 풍기는 달달한 맛이 일품이지만, 달다고 벌컥벌컥 마셨다간 큰 코 다친다.

‘이런 술이 오히려 더 무서운 거지.’

대놓고 독한 고량주나 위스키는 알아서 몸을 사리게 되지만, 이런 달콤한 술은 방심한 애주가를 은근히 취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에이. 조장님. 언제까지 그렇게 간만 보실 겁니까? 한 번에 시원하게 쫙 드시죠?”

“맞아요. 벌꿀술은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셔야 제 맛이라고요.”

“설마 조장님, 술을 못 드시는 건 아니겠죠?”

“후후.”

은근한 도발까지 섞인 병사들의 재촉에, 재희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도전, 받아 주지.’

뎅뎅.

어느덧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모처럼 시끌벅적했던 번화가의 열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사그라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취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흠.”

테이블을 응시했다.

빈 술잔들이 테이블에 한가득하였다. 커다란 단체 테이블은 이제 작은 접시 하나 놓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다.

여기저기 나자빠진 병사들을 바라보던 재희는 픽 웃으며 남은 술잔을 비웠다.

그를 제외하면 제 온전히 제정신을 유지한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인사불성.

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술을 즐기지 않은 덕분에, 정말로 딱 한 잔만 마시고 자리를 비운 그가 16조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나마 어렵게나마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는 녀석은 브록 한 명뿐이었다.

녀석도 꽤 말술인지라 벌꿀술을 무려 서른 잔씩이나 비워 내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조차도 결국 재희를 이기진 못했다.

“브록. 한 잔 더 할까?”

“져, 졌습니다!”

브록도 올라오는 취기에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었으나 한 잔 더, 라는 말에 사색이 되어서는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조장님은 취하지도 않으십니까?”

꼬부라진 혀로 중얼거리는 브록은 어쩐지 억울한 말투였다.

가장 자신 있던 음주 분야에서조차도 재희를 이기지 못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긴. 나도 많이 마시긴 했지.’

중간마다 체내에 들어간 알코올을 마법으로 증발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진 못했을 거다.

그 비밀을 알 턱이 없는 브록으로선 재희가 괴물로 보일 수밖에.

“취하다니.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힉…….”

아직 절반 이상 남은 자신의 술잔까지 깔끔하게 대신 비워 내는 재희를 보며 브록은 사색이 되었다.

“맙소사.”

그것이 그날 브록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튿날 아침, 대장장이 무어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정확히 아침 6시에 자신이 운영하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어르신!”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 무섭게,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던 사내들이 그에게 일제히 인사했다.

아직 밤공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대장간 내부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도제들은 한창 주문받은 물품 제조에 몰두 중이었다.

무어가 운영하는 강철망치 대장간은 대장장이들의 도시인 린데일에서도 가장 유명했다.

바로 강철망치 대장간의 주인, 무어라는 장인의 존재 덕분이다. 육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의 육체는 단단한 근육으로 다부졌다.

특히나 망치질로 단련된 우락부락한 팔뚝은 그의 손에서 탄생한 명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게끔 했다.

“자. 다들 집합!”

무어의 외침에 사내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그의 앞에 우르르 몰려왔다.

그 숫자가 족히 오십은 넘었다.

명성이 자자한 무어의 밑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워 가고자 하는 도제들이었다.

무어가 손가락을 까닥하자, 곁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무어의 수석 도제였다.

“어디 보자. 7군단 흑마 기병대에서 플레이트 아머 20개를 새로이 제작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테일론 가문의 백작님께서는 본인이 사용하실 검을 원하시는군.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어.”

장부를 뒤적거리던 무어는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잣말처럼 들리지만, 도제들은 그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 혼잣말이 곧 오늘 자신들이 완수해야 하는 의뢰였기 때문이었다.

“테일론 백작님의 검은 어르신께서 직접 제작하실 생각이시지요?”

수석 도제가 은근히 물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백작 가에서 들어온 특수의뢰인 만큼 무어 본인의 손으로 제작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래. 나는 백작님의 검을 만들 터이니, 자네가 아이들을 잘 지도해서 오늘의 의뢰를 바로 완수할 수 있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수석 도제는 고개를 숙이고는 나머지 도제들을 한데 모아 바쁘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나도 모처럼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그런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무어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테일론 가문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래를 터왔던 가문 중 하나이니,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어는 한동안 말없이 자신의 손에 완성된 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걸작이다.

의뢰를 부탁했던 테일론 가문에서도 분명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약조했던 의뢰금에 추가로 보너스를 획득할 수도 있을 터.

“…….”

무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래전부터 그의 실력은 정체된 상태였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이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높은 장벽이 안개에 휩싸이기라도 한 듯 어렴풋이 보인다. 그 벽을 뛰어넘으면 스스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게 되리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일평생을 걸어왔던 길이다.

그만큼 애착이 있었고, 자긍심도 꽤 높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자신을 능가하는 자가 없다.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그는 현재 수준에서 만족하고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지금만 해도 모두가 최고라고 인정해 주는 실력이니까.

이젠 조금 지쳤다.

시간은 화살만큼이나 빨라서, 어느덧 자신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젊었을 적만큼의 열정도 사그라진 지 오래다.

벌써 10년이 넘도록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상태였으니 불타는 의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 법도 했다.

“실례합니다.”

“음?”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어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막 스물을 넘겼을까 싶은 젊은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대의 문장을 보아하니 어제 도착했다던 클로버 보병대로 짐작되었다. 나이도 그렇고 차림새도 보아하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같진 않았다.

“아. 어서 오시게.”

“좋은 아침입니다. 혹시 여기가 강철망치 대장간이 맞습니까?”

“그러네. 보아하니 클로버 보병대 소속인가 보군.”

“예. 클로버 보병대 소속 16조장 제이라고 합니다.”

‘조장이라고?’

무어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이제 막 훈련소 과정을 마친 신입 병사 정도라고 생각했던 애송이가 스스로를 조장이라고 소개하니 놀랄 수밖에.

‘꽤 유능한 군인인 모양이군.’

그가 알기로 조장은 산전수전 다 겪어 온 노련한 병사에게 주어지는 직급이었다.

군인이었던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군대와 주로 거래를 트다보니 무어도 그런 사실 정도는 대강 알고 있었다.

“그렇소만. 무기나 방어구라면 이미 저 바깥쪽에 따로 진열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한 번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도제들에게 알려 주시구랴.”

조장이라는 말에, 무어의 말투가 아까보다 조금은 신중해졌다.

“아. 실은 제가 직접 뭘 좀 만들어 볼까 하는데, 괜찮으시다면 제작에 필요한 장비들을 잠시 대여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합당한 대여비는 지불할 생각입니다.”

그 말에 무어의 눈썹이 올라갔다.

평범한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조금 관심이 일었다.

“아니, 대장간에 왔으면 전문가들에게 제작을 맡기거나 할 것이지, 어째서 본인이 직접 망치를 두들기려고 한단 말이오?”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무어는 그의 몸을 살폈다.

수십 년간 대장장이 일을 해 왔던 그가 동종업계 사람을 몰라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척 봐도 자신과 같은 냄새를 풍기니까.

그런데 이 청년은 대장장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꽤 균형 있게 자리 잡힌 근육들이 언뜻언뜻 보이긴 했지만, 근육에도 종류가 있다.

“……흠.”

무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암만 봐도 저 육체는 싸움을 통해 단련된 근육이다. 대장장이 노릇을 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근육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내 장비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나름의 고집 같은 게 있어서요.”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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