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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rGraphy] '저그의 개척자' 홍진호(1)

[GamerGraphy] '저그의 개척자' 홍진호(1)
홍진호를 떠올리면 2인자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공식 대회에서 홍진호가 우승을 차지한 기억은 기자에게도, 팬에게도 없다. 기록을 이 잡듯 뒤져봐도 홍진호에게는 공식 개인리그 준우승 5회라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태 스타크래프트계에서 활동했던,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준우승 횟수를 갖고 있는 선수가 바로 홍진호다. 이러한 기록 때문에 어떤 선수가 준우승을 하면 ‘홍라인(강한 발음으로 콩라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분명히 수치다. 프로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선수에게 치욕일 수 있다. 영원한 2인자, 그림자라는 수식어는 아름답지 못하다.

그렇지만 홍진호가 스타크래프트계에 남긴 자취가 2등이라는 수식어에 묻어 버릴 수 있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까. 게이머그래피 2탄에서 임요환 이후 소위 ‘본좌 라인’이라 불리는 ’이최마(이윤열, 최연성, 마재윤)’를 택하지 않고 홍진호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바로 저그의 개척자였고 지금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에서 터질 뻔한 빅뱅
아마추어 시절 배틀넷에서 ‘[NC]…YellOw’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던 홍진호가 세상에 알려진 건 iTV 경인 방송에서 만든 프로그램인 ‘고수를 이겨라’였다. 딱히 소속팀이 없던 홍진호는 당시 저그 고수로 알려진 강도경과 경기를 하게 됐고 패했다.

배틀넷에서 홍진호가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강도경은 이재균 감독에게 테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한빛 스타즈를 창단하기 전 시절이었던 이재균 감독은 ‘깐깐하게’ 홍진호를 지켜봤고 4승5패를 거두자 과감히(?) 홍진호 카드를 버린다. 이 감독은 “테란전을 잘하는 저그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진호가 9드론 스피드 업그레이드 저글링 러시만 하더라”라는 말로 홍진호를 평가했다.

홍진호의 진가를 발견한 사람은 송호창 감독이었다.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던 홍진호를 서울로 불러 올린 송 감독은 ‘닉스’라는 이름의 프로게임단을 만들었고 홍진호와 이윤열 등을 주력 선수로 삼아 활동을 시작했다.



홍진호와 이윤열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당시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송 감독은 임요환을 갖고 있던 김양중 감독과 김성제 등과 팀을 꾸리고 있던 조정웅 감독이 속한 IS(Ideal Space)라는 팀에 합류한다. IS 시절 홍진호는 임요환과 한솥밥을 먹으면서 서서히 호랑이의 씨앗임을 보여준다. IS라는 이름으로 한빛 스타즈의 독주를 막아내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

이재균 감독은 “홍진호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내가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나’라는 후회를 처음할 정도로 홍진호는 대단한 재목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폭풍의 기원
홍진호는 한빛소프트 스타리그를 통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임요환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던 이 대회에서 홍진호는 16강을 3전 전승으로 통과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8강전에서 기욤 패트리와 박용욱 등 프로토스전에서 연패하면서 탈락했다. 프로토스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홍진호가 프로토스에게 덜미를 잡혀 패했다는 사실이 지금 보면 충격적이기도 하다.

다음 대회에서 홍진호는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코카콜라 스타리그에서 홍진호는 저그가 테란을 상대하기에 최악의 맵이라는 ‘라그나로크’에서 ‘우주 방어 테란의 원조’ 김정민을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8강에 올랐다. ‘라크나로크’에서 테란을 상대로 승리한 저그는 홍진호가 유일하다.

홍진호는 이 대회 결승전에서 평생의 라이벌 임요환을 만난다. 저그를 상대하는 최고의 테란이라 불리는 임요환과 최종전까지 갔지만 아쉽게 패하면서 2인자로 남았다. 이후 홍진호는 이벤트 대회가 아니면 우승하지 못한다는 평생 안을 짐을 등에 얹게 된다.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홍진호는 저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저그의 전략가로 이름을 알린다. ‘방어의 종족’으로 알려진 테란을, 그 중에서도 “방어하는 재미로 테란을 선택했다”는 임요환을 상대로 성큰 콜로니 러시를 시도한 것. 저그가 테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평했던 ‘라그나로크’에서 홍진호는 성큰 러시를 통해 임요환의 입구를 뚫을 ‘뻔’했다. 만약 이 전략이 통했다면 홍진호에게 ‘2인자’라는 타이틀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폭풍의 파괴력
홍진호에게 아쉬움이 남는 대회가 있다. 온게임넷이 주최한 왕중왕전이 바로 그것. 코카콜라 스타리그 이후에 치러진 스카이 스타리그가 끝나고 온게임넷은 왕중왕전을 개최한다. 스타리그에서 상위 입상한 선수들을 모아 놓고 개최한 그 대회에서 홍진호는 우승컵을 안았다. 그렇지만 스타리그의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벤트전으로 강등되면서 홍진호는 우승자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홍진호의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스카이 스타리그 2001에서 4위를 차지한 홍진호는 네이트 스타리그에서 1승2패로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스카이 스타리그 2002에서 3위를 차지하고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다시 3위,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준우승하면서 최고의 저그 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린다.

홍진호는 MBC게임이 주최하는 스타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2년 KPGA 1차리그 결승전에서 임요환과 결승전에서 만났고 바로 다음 대회에서는 이윤열과 결승전을 치르기도 했다.

동시대에 인기를 얻었던 장진남, 박경락 등과의 경쟁을 벌였지만 가장 많은 결승전 진출에 성공하면서 저그의 대명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홍진호의 이적사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홍진호는 사실 송호창 감독이 키운 선수나 다름 없다. 그렇지만 홍진호의 전성기 시절 송호창 감독의 모습보다는 정수영 감독의 모습이 더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2002년 IS 프로게임단이 해체되고 김양중 감독이 야인으로 물러나면서 임요환은 주훈 감독과 손을 잡았고 조정웅 감독은 IS라는 이름을 계승하면서 팀을 운영했다. 송호창 감독도 휘하에 데리고 있던 선수들로 새 팀을 꾸릴 계획을 세웠다.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송 감독은 홍진호와 이윤열을 KTF 매직엔스(현 KT 롤스터)로 보낸다. 완전한 이적은 아니었고 1년 계약을 맺은 뒤 임대 형식을 택한 것.



홍진호는 KTF에서 정수영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KTF의 핵심 인자로 성장한다. 각종 개인리그에서 상위에 랭크되며 인지도를 높였고 프로리그에서도 KTF의 중추로 활약하면서 초창기 프로리그에서 팀이 상위권을 유지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던 차에 홍진호는 2004년 4월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서 송호창 감독이 이끄는 투나SG(현 위메이드 폭스의 전신)로 원대복귀한다. 이윤열과 함께 투나SG로 돌아간 홍진호에게 닥친 무대는 네오위즈 피망 프로리그 결승전. 7전4선승제로 진행된 결승전에서 슈마GO(현 CJ 엔투스)를 만난 홍진호는 1, 2세트에 연속해서 출전, 모두 패하면서 투나SG의 패배 원흉이라 불리면서 혹독한 비난을 받는다. 함께 복귀했던 이윤열이 3세트를 승리했기에 홍진호는 팬들로부터 더 많은 원망을 들어야 했다.

홍진호는 임대 계약이 완료됐지만 KTF를 선택했다. 임대 선수가 아닌 완벽한 이적을 택한 것. 투나SG측도 홍진호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이후 홍진호는 ‘KTF 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편에 계속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KT 제공,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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