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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 송병구와 이영호는 왜 세리머니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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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 시절부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온 송병구(오른쪽)와 이영호.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을 묶어 4대천왕이라고 불렀습니다. 타고난 경기력과 성실성에 외모와 언변 등 스타성까지 보유하고 있던 이 선수들은 스타1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기틀을 닦았습니다.

이 선수들이 건물의 근간을 만들었다면 '택뱅리쌍'은 외부와 인테리어를 담당했지요. 김택용, 송병구, 이영호, 이제동은 스타1 리그의 막바지에 놀라운 활약을 펼치면서 화룡점정을 했습니다. 김택용은 은퇴를 했고 이제동은 해외 팀인 EG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에서 열리는 리그에는 '뱅리'만 남았습니다.

송병구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는 적지 않은 나이인 27세입니다. 한국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이영호 또한 23세로 송병구보다는 어리지만 KT 롤스터 안에서 최고참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들이 프로리그 무대에서 열심히 세리머니를 하고 있습니다. 송병구가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프로리그 2014 2라운드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장비'를 갖추고 50센티미터 자에 휴지로 조준경까지 달아 이영호를 저격했습니다. 한 라운드 뒤에는 이영호가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3라운드에서 송병구를 꺾은 뒤 이영호는 동료인 김성대에게 공룡 옷을 입혔고 자로 총을 쏘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쳤죠.

두 선수의 세리머니는 스타2 팬들에게는 새로움을, 스타1 팬들에게는 센세이션을 선사했습니다. 송병구나 이영호 모두 스타1 시절에는 거의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무게를 잡는 입장이었거든요.

이 선수들은 왜 세리머니를 했을까요. 데일리e스포츠가 직접 만나 들었습니다.


Q 송병구와 이영호가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팬들의 엄청난 반응이 뒤따랐습니다. 왜 했습니까.
A 송병구(이하 뱅)=헬멧을 쓰고 등에 가방을 메고 자로 만든 총을 들고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자나이퍼'라는 별명이 붙었더군요. 이영호의 주력 병기인 50cm 자를 개조해서 만들었습니다. 연습한 시간보다 자를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군요(웃음). 제가 왜 이런 세리머니를 했냐고요? 절실함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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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리그 2라운드에서 이영호를 제압한 뒤 세리머니를 펼친 송병구(사진=스포TV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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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이퍼'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있는 송병구(왼쪽)와 이영호.


요즘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게임 연습만 하고 팬 서비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1라운드를 보면 SK텔레콤 원이삭만 죽어라 세리머니를 하는데 팬들로부터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세리머니를 하면 같이 즐기고 웃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원이삭만 하니까 '원래 저런 선수였지'라며 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고요.

2014 시즌에 들어오면서 한국e스포츠협회도 프로리그 활성화, 스타2의 인기 제고를 위해 세리머니상을 신설하고 선수들에게도 동참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제가 총대를 메기로 했죠. 제가 원래 협회 안티거든요. 시스템이나 규정이 잘못되면 앞장 서서 스나이핑을 해왔는데 이번 시도는 제가 봐도 의도나 기획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하게 됐죠.

Q 이영호에게는 송병구의 '자나이퍼' 세리머니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마음 속에서 복수심이 들지는 않았나요.
A 이영호(이하 리)=경기에서 지면서 충격에 빠져 있었는데 세리머니까지 하니까 두 배 이상의 패닉에 빠졌지요. 그래도 (송)병구형이니까 오히려 괜찮았어요. 만약에 다른 선수가 저를 이기고 세리머니를 했다면 정말 부글부글 끓었을 거에요. 병구형의 세리머니 시도 자체가 신선했고 재미있었기에 웃어 넘겼지요. 그리고 병구형이 인터뷰에서 "다음에 (이)영호를 만나게 되면 영호가 신선한 세리머니를 해주면 좋겠다"고 언급했죠.

신기하게도 병구형과 3라운드에서 또 다시 맞대결이 잡힌 거에요. 마치 짠 것처럼요. 이번에는 저도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정말 열심히 '연습만' 했어요. 경기 하루 전날 강도경 감독님께서 조용히 물어보시더라고요. "세리머니 따로 준비한 것이 있냐"고요. 저는 없다고 했죠. 감독님이 "오케이, 우리가 알아서 준비하마"라고 말씀하신 거에요.

경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세리머니 이야기가 나왔어요. 감독님과 사무국, 매니저님이 다 준비됐다고. 누가 공룡 복장을 입을 건지만 정하면 된다고요. (김)성대나 (전)태양을 추천했고 그 중에 성대가 옷을 입기로 했어요. '굴드' 이미지에서 벗어나자고 말한 것이 통한 것 같아요. 그리고 경기를 치렀고 제가 이겼죠. 세리머니를 했어요. 공룡을 밟고 자를 총처럼 들고 쏘는 세리머니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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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운드 프로리그에서 이영호(왼쪽)가 송병구를 꺾은 뒤 공룡을 잡았다는 뉘앙스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Q 송병구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한데요.
A 뱅=솔직히 경기장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요. 팬들이 탄성을 지르길래 '뭔가 했나보다'라고만 생각했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후배들이 휴대 전화를 보면서 수근거리는 거에요. 그래서 보여 달라고 했더니 영호의 공룡 제압 세리머니 VOD가 벌써 올라왔더라고요. 차 안에서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이렇게 빨리 포털에서 VOD 작업을 처리할 줄 몰라 깜짝 놀랐고 또 영호가 저런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보면서 배꼽 빠지도록 웃었어요. 아이디어가 정말 빛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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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사냥 세리머니를 재현하고 있는 이영호(위). 송병구(아래)가 친히 공룡이 되어 누워줬다.

A 리=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제 연기력이 정말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죠. 개괄적인 설명만 듣다 보니까 연습 한 번 해보지 못했거든요. 프로게이머를 은퇴하더라도 연기자는 못 될 것 같아요(웃음).

Q 스타1 시절에는 이런 세리머니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스타1 시절로 돌아보면 거의 이성은급 세리머니인데 이 정도 수준의 세리머니를 송병구와 이영호로부터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A 뱅=제가 '자나이퍼' 세리머니를 할 것이라고는 저조차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불과 2~3년 전만하더라도 저는 무게중심을 잡는 편이었고 팀에서도 그러기를 원했어요. 협회의 행정이나 프로리그 시스템 같은 것에 불만을 제기하는 '프로게이머 노동조합의 대표' 격이었기에 가볍게 움직이지 못했죠.

요즘 들어서는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누군가가 나서지 않으면 침체되어 있는 스타2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 못할 것 같았어요. 한국 선수들 중에 최고참이지만 제가 무게만 잡고 있으면 팬 서비스를 누가 해요. 저라도 앞장 서서 뭔가 보여주고 팬들이 경기장에 찾도록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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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롤스터 이영호.

A 리=신인 시절에는 쑥스러워서 세리머니를 못했고 우승, 준우승 등을 할 자리에 오르다 보니 할 기회가 없어졌어요. 이건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쉬운 점이고요. 스타2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가 열리고는 있지만 방송사가 다르다 보니 연결 지점이 없어요. 예전에 온게임넷과 MBC게임에서 개인리그와 프로리그가 모두 열렸을 때에는 자사 개인리그에서 있었던 스토리를 프로리그에서 재생시키려는 노력이라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프로리그는 프로리그, 개인리그는 개인리그라는 느낌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선수들끼리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요. 병구형이나 저는 이미 스타1에서 만들어진 '택뱅리쌍'이라는 이야기거리가 있으니까 지금도 통하는 거죠.

Q 소재의 부족이 세리머니의 부재로 이어진다는 뜻이지요?
A 뱅=그렇죠. 후배들도 정말 열심히 게임하고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이야기로 승화되지 않아요. 전에는 선수들마다 별명이 있고 누구와의 상대 전적에서 강하고 누구에겐 약해서 물고 물리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인간 상성'이라는 단어 말고는 새로운 것이 없잖아요.

A 리=저는 자연스레 무너진 테란 라인의 뒤를 잇는 후계자였어요. 그리고 신인 때 김동수 선배가 같은 팀에 있었는데 '최종병기'라는 단어를 만들어줬고 지금까지도 제 수식어가 되어 있잖아요. 스타2 업계 전체에 띄워주는 분위기가 부족해요. 그러다 보니 팬들도 자연스레 관심이 떨어지죠. 병구형이나 제가 세리머니를 한 것도 팬들의 시선이 더 떨어져 나가면 우리가 설 자리도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죠.

Q 스타1 때처럼 정말 성적을 잘 내야만 스타가 될 수 있을까요.
A 뱅=인기가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은 성적이랑은 큰 관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팬들의 관심을 얻었던 것은 이영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스타리그 결승에서 소년 가장 이영호와 만났고 이영호에게 지면서 뭔가 묘한 관계가 형성됐거든요. 묘한 관계는 곧 스토리로 만들어졌어요. 저희 둘이 만날 때마다 매체나 방송사에서 계속 그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팬들이 저희 경기에 많이 찾아주셨고 저희는 멋진 경기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면서 더 연습했죠.

A 리=성적이 좋으면 높은 단계에서 만나겠죠. 그러면 스토리가 만들어지겠죠. 그렇지만 세리머니만으로도 스타가 된 선수가 있어요. 스타1 시절 MBC게임 히어로의 장민철 선수를 생각하면 팬 서비스는 용기에요.

이번에 세리머니를 하면서 정말 느낀 점은 (이)성은이형의 위대함이에요.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광안리 결승 무대에서 수영복만 입고 바다에 뛰어든 점이나 전에 모 선수를 이기고 환호하면서 경기장을 몇 바퀴 도는 세리머니를 한 것을 보면 '난 사람'이에요. 성은이형이 세리머니를 처음 했을 때에는 '예의가 없다', '스포츠맨십이 부족하다', '짜증난다'고 팬들이 욕을 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성은이형이 경기력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능가하니까 그런 이야기가 사라지잖아요. 팬들의 반응이 욕설에서 호감으로 변한 사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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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 칸 송병구(왼쪽).

A 뱅=세리머니가 우선이냐, 실력이 우선이냐 는 중요하지 않아요. 세리머니를 통해 팬들에게 얼굴을 먼저 알리고 실력을 끌어 올리는 것도 좋고,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파격적인 세리머니를 하면서 인기를 끌어 오는 것도 좋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뛰고 있는 이 무대에 대한 소중함을 선수들이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A 리=병구형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팬이 없으면 저희도 없어요. 신도림 경기장에서 프로리그 경기를 할 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내가 과연 프로게이머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할까'라는 고민이었죠. 경기장에 오는 팬들이 거의 없는 거에요. 앉을 자리도 부족하고 관전 환경도 좋지 않다 보니 저도 팬들께 제 경기 보러 오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Q 이성은이 감독이 되어 팀을 이끌고 있는 빅파일 미라클이라는 팀도 파격적인 챔피언스 데뷔전을 치러 화제를 모았어요. 세리머니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성은의 머리 속에는 가훈처럼 들어있는 것 같아요.
A 뱅=그런 점이 성은이형이 갖고 있는 스타성이라고 생각해요. 팬들은 게임 스타일로 스타성을 논하기도 하지만 팬 서비스를 통해서 스타를 인정하기도 해요.

A 리=스타성은 자기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상대에게 도발하고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팬들의 동의를 받기 어렵지요. 그래서 과거 스타1 때 조지명식을 연 거에요. 팬들은 알지 못하는 선수들 사이의 라이벌 관계를 밝히고 왜 이 선수를 뽑아야 하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 선수들 스스로 밝힐 기회를 준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 조지명식마저 사라졌죠. 팬들은 이제 선수들의 스토리를 알 기회가 없어졌어요.

Q 김택용이 은퇴를 하고 이제동이 해외팀으로 떠난 것도 무척이나 아쉽겠어요.
A 뱅=도발의 상대가 사라져서라기 보다는 제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슬퍼요. 삼성에서 (신)노열이가 제 바로 밑인데 무려 세 살이나 차이가 나요. 동기들이 많던 시절이 그리워지죠.

A 리=(김)택용이형, (이)제동이형을 못 본지 정말 오래됐어요. 그리워요. 전에는 솔직히 제동이형이랑 세 번 연속 결승전을 하는데 경기하기가 싫은 적도 있었어요. '또 제동이형이야?'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 은퇴한 택용이형이 돌아오기는 어렵겠지만 제동이형은 한국에 와서 대회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둘이 결승전에서 만나면 정말 옛날 스타1 팬들도 다 오실 것 같아요. 그러면 결승전도 야외 무대에서 많은 관중 앞에서 할 수 있겠죠. 요즘 들어 팬이 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스타2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A 뱅=선수들이 과감하게 세리머니를 하고 팬들을 경기장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책임감을 갖고 경기를 펼치고 자신의 라이벌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판이 살아야 자기가 산다는 생각이 정말 중요합니다.

글=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데일리e스포츠 박운성 기자 photo@dailyesports.com

*송병구와 이영호의 심도 있는 대화는 2편에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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