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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솥뚜껑에도 예민한 블리자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착용이 금지된 퓨전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위)과 결승전에 선수들이 입은 티셔츠.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착용이 금지된 퓨전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위)과 결승전에 선수들이 입은 티셔츠.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최근 블리자드가 오버워치 e스포츠를 통해 보여준 행보에 가장 알맞은 속담이 아닐까 싶다.

지난 13일 진행된 2018 오버워치 컨텐더스 북미 결승전에서 필라델피아 퓨전의 아카데미 팀인 퓨전 유니버시티는 준비된 유니폼을 착용하지 못하고 경기에 나섰다. 퓨전 유니버시티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토론토 e스포츠를 꺾고 우승했지만 검정색 무지 티셔츠를 입고 있어 팀 홍보효과는 전혀 누리지 못했다.

이들의 유니폼 착용이 금지된 이유는 유니폼에 큼지막하게 박힌 'FU'가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 바로 아래 'Fusion University'가 적혀있었지만 블리자드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이 황당한 소식이 전해진 뒤 해외 관계자들은 오버워치 영웅인 맥크리의 벨트에도 욕설을 의미하는 'BAMF'가 적혀있다면서 블리자드의 모순된 태도를 지적했다.

앞서 오버워치 리그는 선수 및 관계자들에게 욕설과 인종차별 발언 등을 금지시켰고, 시즌 도중에는 공격적인 밈(meme)이라며 SNS 활동 시 개구리 '페페' 그림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관리 대상에는 팬들도 포함됐다. 오버워치 리그를 중계하는 트위치TV 채널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lmao', 'monkaS'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비속어들마저 금지어로 등록됐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climax'라는 단어 역시 금지어가 되기도. 해외의 한 팬은 "한국에 'climax'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제 그를 어떻게 불러야하나"라며 블리자드의 대응을 비꼬기도 했다.

맥크리 벨트에 쓰여진 'BAMF' 역시 영어 욕설의 약자다.
맥크리 벨트에 쓰여진 'BAMF' 역시 영어 욕설의 약자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블리자드의 채팅방 관리 정책은 한국에서도 일관됐다. 지난 4월 오버워치 리그의 한국어 중계 채널에서는 채팅 관리자가 명확한 기준도 없이 개인적인 감정을 실어 관리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방송 딜레이와 화질 저하 문제로 인해 그간 영어 중계를 봐왔던 기자는 한국어 중계 채널의 채팅 관리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며칠간 지켜봤고, 오래 걸리지 않아 셀 수 없이 많은 채팅들이 삭제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중엔 분명히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큼 왜 삭제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특정 단어에 대해서는 블리자드코리아 직원조차 "그게 왜 삭제가 되죠?"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이후 트위터를 통해 오버워치 팬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중계 채널 채팅 관리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항목은 '문제없다. 관리를 잘 하고 있다'와 '불합리하다. 감정적으로 관리한다' 두 가지로 나눴고, 약 730명 이상이 참여해 이중 과반이 넘는 54%가 '불합리하다' 쪽을 선택했다. 압도적이진 않지만 적지 않은 수가 문제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투표 결과였다.

한 팬은 "'선수가 메모리핵처럼 잘 한다'는 말이 왜 금지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또 다른 팬은 '밴을 조심해라'라는 발언이 삭제되는 과정을 스크린샷으로 남겨 제보하기도 했다. 제보에 따르면 오버워치 리그 팀 중 하나인 '플로리다 메이헴' 역시 삭제된 사례가 있다. 삭제 이유는 알 수 없다.

기자 역시 한국어 중계 채널에서 '대리'나 'OGE'라는 단어가 삭제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오버워치 리그가 그토록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대리인데, 채팅 관리자는 그런 회사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민감한 반응이었다. 취재 결과 한국어 중계 채널의 채팅 관리는 블리자드코리아 직원이 직접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팬이 제보한 당시 채팅 관리 상황. '밴 조심해라'라는 말도 삭제 처리됐다.
한 팬이 제보한 당시 채팅 관리 상황. '밴 조심해라'라는 말도 삭제 처리됐다.

기자는 여러 제보와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오버워치 리그 중계 채널에서의 채팅 규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지적한대로 '개인적 감정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관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상에서 여러 이슈들이 끊이질 않고 있고, 이를 이용해 경기 내용과는 크게 관련 없는 발언으로 분란을 유도하려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들은 규제 단어를 교묘히 피해가기 위해 의미가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이를 풀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마구잡이로 관리하다보면 애꿎은 피해자나 부작용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공적 영역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관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오버워치 리그 중계 채널에서는 관리자의 감정이 격해졌는지 채팅 규제 기준에 대해 문의하는 이들에게 조차 재갈을 물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리자가 궁예의 '관심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표면적으로 봤을 때 문제되지 않는 단어가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솥뚜껑 뒤에 혹시 모를 불편한 요소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솥뚜껑은 솥뚜껑 그 자체로 봐야한다. 솥뚜껑에 빈대가 붙었다고 해서 무리하게 태워 죽이려다간 초가삼간이 타버릴 수도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채팅을 규제하면 할수록 언제나 그랬듯 그들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과 끝없는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솎아내려 규제의 폭을 확장하다보면 애먼 이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티끌 좀 묻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넘어가야 모두가 편히 즐길 수 있는 오버워치 리그가 될 것이다.

블리자드가 '올바른 것'을 지향한다면 그 과정도 올바르게 가야 한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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