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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25화

제7장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제7장 병도 주고 약도 주고
[데일리게임]

지하를 내려서자 굳게 닫힌 좁은 철문들이 쭉 늘어져 있는 복도가 나왔다. 그 철문들에는 각기 위아래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좁은 구멍과 식사를 넣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다른 때라면 상관없었겠지만 저 안 어딘가에서 그의 친구가 고문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탓인지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일일이 문을 열어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언제 씨드가 돌아올지 모른다.

“……!”

초조한 마음에 아르카의 이름을 부를 뻔했던 티노는 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경솔하게 굴었다간 아르카도 못 구할 뿐더러 약속도 못 지킨다.

티노는 급히 감방 안을 볼 수 있는 좁은 구멍의 뚜껑을 열어 가며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쯤 갔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카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르카뿐이니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든 아르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목소리는 복도의 코너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치이익!

그것은 사실 굉장히 작은 소리였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귓가에 크게 울렸다. 무언가가 타는 소리……. 아르카가 고문당하는 소리다!

“끌끌. 시끄러운 계집이 사라지니 좋군. 안 그래?”

“…….”

“입 다물고 있어도 상관없어. 난 그 편이 더 좋으니까 말이야. 부디 오래 버텨 달라고.”

음산한 악의로 번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티노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발을 억지로 떼어서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누구냐!”

“……!”

티노의 목에 검이 대어졌다. 살기가 충만한 그 검을 멍하니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검의 주인을 보았다. 그는 완전무장한 간수였다. 그것도 그 혼자가 아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

흉흉한 간수의 질문에도 티노는 맥이 빠져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자만했다. 너무 자만했다. 테이슨은 친위대원 한 명이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간수는 친위대원 한 명뿐이라 착각했다. 친위대원 한 명의 지휘 하에 간수들이 지키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티노에게 그 말을 한 사람은 친위대원인 테이슨이고, 그는 애초에 간수들을 전력에 넣지도 않았던 것이다. 테이슨의 성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는 어쩔 수 없는 귀족 출신의 친위대원이었다. 티노는 테이슨과 자신의 기준이 많이 다르다는 것까지 염두에 뒀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성능 좋은 야간경 덕에 저들과 맞닥뜨려서야 저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저들은 비상용 어스듐 라인 외에도 휴대용 조명등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는 티노의 눈에 그것은 대낮에 켠 촛불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리석었다. 충분히 주의했으면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달리 수를 짜낼 수 있었을 텐데. 항상 긴장을 놓지 말라고 불과 며칠 전에 아르카가 말했건만!

“마지막으로 묻겠다! 누구냐? 말하지 않으면 벤다!”

“전 테이슨 경과 아는…….”

치이익!

어떻게든 입을 떼어 보려는데 아르카의 살을 태우는 소리가 좀 전보다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것에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 말문이 막혔다. 그때였다.

챙! 챙! 챙!

두꺼운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잘 벼려져 있는 검과 같았던 간수들의 기세가 흐트러졌다.

“누구냐?!”

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듦과 거의 동시에 백팩의 밸브를 열어 무기의 성능을 높였다. 그리고 신경을 바싹 곤두세우며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눈빛과는 달리 그 시선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티노에겐 성능이 너무 좋은 야간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는 벽에 걸려 있던 휴대용 조명등이 모두 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 이곳에 다시 어둠이 내려앉은 것이다.

그것을 티노가 인지한 순간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티노의 옆을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티노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분명 저자가 티노를 기절시키기 위해 급소를 때린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한가하게 기절 따위를 할 수는 없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며 눈을 부릅뜨는데 티노의 목을 겨누고 있던 검을 쥔 손이 팔뚝째 잘려 나가 허공에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한 박자 늦게 잘린 팔뚝에서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 손의 주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목이 반 정도 잘려서 쓰러졌다. 여전히 굳게 검을 쥐고 있는 손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갑작스러운 유혈사태에 놀랄 틈도 없이 일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치 화살이 쏘아지듯이 앞으로 달려 나간 침입자의 손에 들린 단검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간수 한 명의 미간에 깊이 박혔다. 그 기척을 느낀 다른 간수가 그쪽으로 총을 쐈으나 침입자는 자신이 막 죽인 간수를 방패로 삼았다. 그리곤 시체의 복부에 한쪽 발을 대어 힘껏 걷어찼다. 자연히 시체에 박혀 있던 검이 뽑히면서, 시체는 총을 쏘는 간수를 덮쳤다. 축축한 것이 자신을 덮치자 간수는 신속하게 몸을 틀었으나 침입자는 그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피로 번들거리는 단검이 세 번째 희생자의 목을 꿰뚫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티노는 침입자가 어찌 생겼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휘감고 있었다. 옷뿐만이 아니라 복면에서 장갑, 신발까지 몽땅 검은색이었다. 드러난 신체부위라고는 눈 부분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자세히 볼 틈이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다.

‘플로레스라? 아르카의 동료인 건가?’

티노야 야간경을 썼다지만 상대는 그런 장비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학살을 벌이는 날랜 몸놀림, 마치 짜인 각본을 재현하듯이 매끄럽고 정밀하며 군더더기 없는 살인, 한 명을 베고 바로 다른 한 명을 향해 뛰어오르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다. 운동신경이나 속도는 몰라도 어둠 속에서 저토록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동체시력을 가진 자는 플로레스라뿐일 것이다.

아르카와 함께 움직이는 자라면 그 역시도 노블리언의 어스듐 라인 시스템을 알고 있을 리 없으니 왕성까지 씨드를 끊기게 만든 것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기회를 엿보다가 적당한 어둠이 깔리고 친위대원이 자리를 뜨자 나선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남은 간수까지 모조리 죽인 침입자가 감방 문을 걷어차서 벌컥 여는 것이 보였다.

“누, 누구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그렇게나 소름끼치던 목소리가 이토록 유쾌하게 들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퍽!

“커억!”

보지 않아도 고문관이 벽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그려졌다. 꼴좋다. 이어서 철컹 하고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도 들렸다. 티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의식을 차리기 위해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쓰던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침입자의 잔인한, 그리고 냉정한 칼부림을 보고 혹시 입막음을 하러 온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동안 신세 졌다.”

맥이 빠질 정도, 그래서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풋 웃어 버릴 정도로 평소와 똑같은 아르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입이 틀어 막힌 상태로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이어지더니…….

치이익!

“음음음!”

“시간이 없으니 이 정도로 끝내 주지.”

아무튼 이 와중에도 성질머리하고는…….

“죽이지 마. 이놈은 조만간 날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지내야 할 거다.”

“…….”

퍽!

좀 전과 똑같이 고문관이 벽에 처박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아르카를 구하러 온 동료가 최후의 화풀이를 한 모양이다.

잘했다. 티노 역시 적어도 한 대는 더 걷어차 줘야 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들이 감방 안에서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한계다, 라고 생각한 순간 눈앞이 어두워졌다.

침대와 작은 협탁, 의자가 전부인 작고 낯선 방. 며칠 전 신세진 병원과 기본적인 구조는 같지만 가구의 질이나 방의 청결도의 수준은 높은 곳에서 티노는 눈을 떴다.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방에는 그 혼자였고 주변은 마냥 조용하기만 했다. 문 밖에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생전에 이렇게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티노는 조금 결리는 뒷목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위험한 몬스터가 서성거리는 안전지대 밖을 돌아다닐 때도, 황폐한 자연이 위험하게 자리한 듀오 루나를 뻔질나게 오갈 때도 겪지 못했던 일을 수도에 와서만 벌써 두 번 겪고 있었다.

몸을 내려다보니 옷은 갈아입혀져 있었다. 피로 온통 뒤덮여 있었을 테니 당연하겠지. 잔인했던 어제의 장면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살아 있었다면 아르카가 위험했을 것이다. 티노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간수들보다 친구인 아르카 쪽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도 목걸이는 내버려 뒀네.”

티노는 목걸이의 펜던트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옷 안에 넣어 둔 덕에 피가 튀지 않아 깨끗했다.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가 기지개를 쭉 펴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옷을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협탁 위엔 고글과 무기와 허리띠 등의 소지품이, 의자 위에는 백팩이 있었으나 굳이 지금 착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 외에 티노의 소지품은 방 안 어디에도 없었다. 세탁을 위해 가져간 것일까?

타의적으로 의식을 잃었다 이제 깨어난 것이지만 마지막에 보고 들은 것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아르카가 탈출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와 그의 조력자의 실력이라면 어둠이 깔린 노블리언의 수도에서 몸을 감추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 분명했다.

덜컥.

노크 없이 문이 열리며 테이슨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티노의 옷이 들려 있었다.

“깼니?”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닌 테이슨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 딱딱했다.

“테이슨 경?”

늘 온화한 빛이 감돌던 테이슨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 있었다. 어찌 보면 화가 난 것도 같다. 그런데 그가 티노에게 화낼 만한 일이 있던가? ……그야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많긴 하지만, 그건 들켰을 때 일이고.

“안색이 안 좋으세요. 역시 왕성에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티노는 태연하게 하지만 걱정하는 기색을 확연히 드러내며 물었다. 그 와중에 조금 혼란해하는 모습을 섞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몰래 한 짓의 하나라도 들켰다면 지금쯤 아르카가 갇혀 있던 특급감옥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테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테이슨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가와 티노의 옷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까지 기억하지?”

“씨드가 끊긴 뒤 감옥으로 돌아갔는데 간수 분들과 부딪쳤던 것까지요. 누구냐고 물어보셔서 답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안 나요. 무슨 일이 생긴 거죠?”

“……플로레스라가 탈옥했다. 조력자가 있었어. 덕분에 친위대의 위상이 떨어졌지.”

“그럼 씨드가 끊긴 건 그 조력자의 짓인 건가요?”

감옥이면 몰라도 왕성의 씨드까지 끊기게 한 자가 누구인지는 궁금했던 터라 티노는 호기심을 가득 담아 물었다. 테이슨은 고개를 저었다.

“조사 중이나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이번 사태에 한 발 얹은 티노도 누구 짓인지 무슨 목적인지 짐작이 안 갔다. 아르카의 조력자 짓이라고 생각하기엔 티노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어스듐 라인의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것이 걸리고, 원조 씨드 도둑의 짓이라 생각하기엔 비상용 어스듐까지 끊어진 것이 걸리기 때문이다.

“왜 감옥으로 돌아간 거지?”

테이슨은 여전히 딱딱하게 물었다. 의심을 받고 있는 건가 싶어 티노는 신중하게 답을 골랐다.

“테이슨 경도 엘리 경도 왕성으로 가 버리셨으니 누구든 감옥 앞을 지키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네가 무슨 힘으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고작 기초 군사 훈련을 막 마쳤을 뿐인 네가!”

테이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가 분명 공방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감옥은 간수가 지켜! 일개 일반인인 네가 나설 일이 아니었던 말이다!”

“간수가 있는 줄 몰랐어요! 친위대원 한 명이 지키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입구도 열려 있는 채로 멈춰 있었으니까…….”

“내가……!”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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