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터를 살펴보면 징크스와 아펠리오스의 차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총 3번의 LCK 팀과 LPL 팀 간 대전(T1 대 JDG, 젠지 대 BLG, T1 대 BLG)에서 LCK는 단 한 번도 아펠리오스로 징크스를 이기지 못했다. 아펠리오스 대 징크스 구도는 총 6번 등장했고, 징크스가 유일하게 패배했던 경기는 '구마유시' 이민형이 징크스를 잡고 패했던 T1과 JDG의 4세트 경기였다. LCK 팀은 LPL 팀과 경기한 12세트 중 5세트를 아펠리오스를 잡고 징크스를 상대로 패했다.
징크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중국 팀과 그렇지 못했던 한국 팀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12개의 세트 중 한국 팀은 단 한 번도 징크스를 밴한 적이 없다. 징크스를 가져와서 플레이한 세트도 단 2개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 팀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징크스를 우선순위에 올려놨고, 본인들이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에는 밴카드로 사용했다.
원거리 딜러를 키워서 캐리시키는 게임으로 요약될 수 있었던 MSI의 메타에서, 캐리 역할을 맡는 원거리 딜러 픽은 단순히 픽 하나가 아니라 팀의 콘셉트를 결정하는 요소였다. 그것이 바텀의 티어 정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던 원인이다. 징크스를 상대로 아펠리오스를 고른 팀은 결국 후반 딜 포텐셜이 밀리는 상태로 게임에 진입해야 했고, 소위 말하는 폭탄 목걸이를 달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가 물론 더욱 중요한 요소지만, 심리적으로 몰리는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밴픽 역시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 팀들의 유연성이다. 특히 빠르게 밴픽 방향을 수정하고 한국 팀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BLG가 주목할 만하다. BLG의 '엘크' 자오자하오는 대회 중반까지 아펠리오스를 즐겨 사용했다. 실제로 JDG-G2 대결에선 5번 연속으로 아펠리오스를 플레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간 어떤 시점에서 티어 정리를 마쳤다는 듯이, '엘크'는 한국 팀과의 경기가 진행된 19일과 20일엔 단 한 차례도 아펠리오스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MSI 무대에서 잊혀가고 있던 제리를 다시 들고와서 한국 팀을 상대로 활용했다. 그 결과 '엘크'의 제리는 한국 팀을 상대로 3승 1패의 호성적을 올렸다. 특히 T1전에선 바텀에서 연이어 다이브를 성공시키면서 구도를 망가트리기도 했다.
물론 티어정리에 실패한 것만이 이번 MSI에서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다양한 플레이에서의 실수가 모인 결과에 더 가깝다. 또 밴픽의 실패가 단순히 감독 이하 코치진의 잘못으로 지목되고 그로 인해 그들이 과도하게 비판 받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패자 인터뷰에서 매번 티어 정리라는 단어가 등장한 만큼, 이 부분을 빼고 MSI의 결과를 해석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음 국제무대에선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OP 챔피언을 발빠르개 캐치해 티어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밴픽에 나서는 LCK 팀이 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허탁 수습기자 (taylor@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