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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이계정복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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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데일리게임]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 앞까지 온 츠부야는 벌어진 틈 사이로 살짝 그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왁센 외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대체 왁센은 누구와 대화하는 거지?’

“서둘러라. 이제 곧 내가 세상에 재림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한 달을 줄 테니 그 안에 지시한 모든 것을 완료하여라.”

“넵, 위대하신 헬로스 마왕님의 재림만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절대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것이니 염려놓으십시오.”

‘커헉! 헤…… 헤…… 헬로스 마왕이라니.’

츠부야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마왕 헬로스는 마계의 십마왕 중 일곱 번째 마왕으로서 오로지 파괴와 죽음만을 추구하는 절대마왕이기에 네크로맨서들이나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계약을 맺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는 마족인 것이다. 특히 네크로맨서들은 비록 시체를 이용하는 사악한 주문을 사용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만큼 악랄한 부족은 아니다. 츠부야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눈부신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헉……헉……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해. 마왕 헬로스가 출현하면 세상에는 종말이 올 거야.”

지칠 대로 지쳤지만 츠부야는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네크로맨서들의 족장에게 우선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그것은 이 일이 그동안 동족들에게서 따돌림 당하고 무시당했던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속셈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이 남아 있어야 자신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러한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직 모르는 달천 일행과 그 주변 사람들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잊고 모두 모여서 식사 후 차를 한 잔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럼 아스마엘 님은 시인이십니까?”

왕자를 수행하는 이스턴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직 떠돌이 시인일 뿐입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때그때 한 편씩 쓰는 것뿐이지요.”

모두 모여서 여러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에 시는 꼭 사랑해야 한다고 침까지 튀겨가며 역설하던 아스마엘의 말에 이스턴이 질문했고, 아스마엘은 자신이 시인인 것을 은근히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아름다운 시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모두들 이스턴 경의 제안에 눈을 빛내며 아스마엘을 바라보았다.

“흠, 그러고는 싶은데 지금까지 다니면서 시상이 떠오른 게 없습니다. 다음에 시상이 떠오르면 그때 적어두었다가 들려드리도록 하지요.”

순간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모두의 생각이 일치했다.

‘죽일 놈.’

차마 왕자의 형님 되시는 분 동생이니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이빨만 갈고 있는 것이었다.

“자, 이제 식사도 끝났으니 다른 분들은 좀 더 편안하게 쉬시고 왕자님께서는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으니 제 서재로 가시지요.”

공작의 말에 왕자는 일어섰다.

“형님, 조금 있다가 다시 뵙지요. 별도로 드릴 말씀도 있으니…….”

“그러게나. 나는 그동안 바람이나 쐬고 있을 테니 나중에 부르시게.”

“알겠습니다.”

왕자와 공작이 나가고 나서 그동안 조용했던 모르자크가 말했다.

“달튼 님,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

갑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하자 달천은 모르자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편안하게 물어보게. 긴장하지 말고.”

“아까 저하고 검을 맞대었을 때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때 이후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제 검을 분질렀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천생 검사 체질이라서 그런지 이 순간까지도 검만 생각하는 모르자크를 보며 중인들은 어째서 그가 소드 마스터 초급 단계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듯했다.

“그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네. 다만 한 가지만 말한다면 검술은 손으로만 시전하는 게 아닐세. 발동작도 중요하다는 말이지.”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듯한 그 말에 모르자크는 전율이 이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인가 와 닿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자네의 열의를 봐서 내가 조만간 자네에게 검술에 필요한 발동작을 가르쳐주지.”

모르자크는 감격했다. 타인에게 검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아무에게나 검술을 가르쳐주면 그가 자신의 적이 되었을 경우 어찌 되겠는가. 한마디로 목숨을 맡기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절대 검술을 전수해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은총을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찌 보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인데 저런 호의를 보이다니, 모르자크는 진심으로 달천이 존경스러웠다.

이런 모르자크도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달천에게 검술을 배운다는 것은 평생 다시 오기 힘든 커다란 기회라는 사실이었다.

제6장 마왕의 첫 번째 카드, 그리고 시작되는 전설

1

“아, 그럼 바로 가서 몽땅 때려잡으면 되겠네요.”

달천의 간단명료한 대꾸에 공작과 왕자는 순간 멍해졌다. 세 사람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듯 피곤해 보였다. 그들 중 달천은 피곤하다 못해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만 앉아 있으면 좀이 쑤시는 그가 여자에 관련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로 보아 지루하고 심각한 대화만 해온 것 같으니 지칠 만도했다.

“달튼 형님, 이건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카라얀 왕자는 혹시 자신이 달천을 형으로 삼은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쉽고 어렵고 간에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자고. 여기 앉아서 백날 머리 굴려봐야 해결될 게 있겠어?”

말투는 경박스러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달튼 님께선 이번 일들을 어디서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겠는지 고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지요.”

카운티 경은 달천의 가벼운 태도에 뭔가 보여달라는 일종의 압박을 가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국 슬리버 왕국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선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조사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달천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물었다.

“가까운 곳이라면?”

“그야 당연히 이곳 카운티 영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최근 발생한 일들을 자세히 조사해보고 얼른 흉수를 찾아내서 족쳐보면 배후를 알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윤곽이 나올 것 아닙니까.”

얼핏 보기엔 매우 단순한 내용 같지만 가장 옳은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영지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달튼 님이 나서서 전모를 밝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공작은 달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저도 알고 보면 무척 바쁜 사람입니다.”

누가 들으면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줄 알겠지만 사실 그가 바쁜 일이라고 해봐야 아가씨들 꼬이려는 일 말고 뭐가 있겠는가.

“형님, 이번 카운티 영지 내 사건은 현재 오리무중이라 합니다. 형님같이 뛰어나신 분이 아니면 어찌 쉽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카라얀 왕자의 아부성 발언에 약간 마음이 움직이려는 달천이었다.

“달튼 님, 제 아들놈과 딸의 친구시라 들었습니다. 설마 친구의 집안에 일이 생겼는데 나 몰라라 하시진 않으리라 봅니다만.”

결정적인 한마디에 머리가 아파오는 달천이었다.

‘으이구, 그리고 보니 제퍼슨도 그렇고 특히 첼리는 얼마나 실망할까.’

자신을 처음 볼 때부터 친절했던 첼리를 떠올리자 결코 자신이 이번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오고야 말았다.

“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제가 해결해보지요. 단, 이번 일 한 번뿐입니다.”

“참으로 옳은 결정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이번 일만 해결해주셔도 저희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그렇게 하시지요.”

“형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반가운 안색을 보며 왠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달천이었다. 무엇인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당한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

이와는 반대로 두 사람은 모든 실력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소드 마스터를 간단히 제압했던 달천의 능력을 생각하며 단순한 달천을 두고두고 써먹어야겠다는 겁 없는 음모를 그리고 있었다.

“그럼 전 사건을 해결하러 나가보겠습니다.”

성질 급한 달천이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자넨 그냥 편안히 여기에 남아 있게. 같이 가봐야 나만 피곤해지니.”

“그건 달튼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게다가 왕자님 신상에 혹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보다 큰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르자크와 기사단을 딸려 보낼 터이니 왕자님께서는 성에 남으셔서 사태를 우선 관망하시지요.”

두 사람의 만류에 카라얀 왕자는 실망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순순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저는 이스턴 경이라도 같이 보내겠습니다.”

아직 계절은 봄이었는데 강렬한 태양빛에 대지는 온통 헐떡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 달구어진 듯 관도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중무장을 하고 있는 기사들에겐 몇 만의 대군과 싸우는 것보다도 힘들게 느껴졌다.

“이번 결정에 첼리 아가씨도 무척 고맙게 생각하겠어요.”

달천의 성격을 잘 알게 된 아이미는 온갖 인상을 쓰며 말을 몰고 있는 달천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거야 첼리가 아니었으면 이번 일은 맡지도 않았을 텐데, 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참한 아가씨를 만나 장가가는 것인데 이런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지.”

여전히 장가타령을 하는 달천을 보며 이번엔 아스마엘이 말했다.

“그나저나 형님, 저는 이번 일에 큰 도움은 못 드립니다. 아시다

시피 저희는 인간들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니까요.”

“그럼 자넨 옆에서 구경이나 하려고 따라가는가?”

달천이 노려보자 찔끔한 아스마엘은 급히 변명했다.

“구경을 하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비록 큰 참견은 못하겠지만 열심히 응원은 하겠습니다.”

따악!

“매를 벌어요, 벌어. 넌 뭘 해도 좋으니 입이나 다물고 있어.”

본전도 못 찾은 아스마엘은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다 왔습니다, 달튼 님. 이곳이 최근에 당한 마을입니다.”

모르자크의 말에 일행은 잠시 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마을은 외견상 그저 평화롭고 조용해 보이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마을이 가까워오자 어디선가 심한 악취가 풍겨온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에 바로 지시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참혹한 시신들을 모아서 불태웠고 주변도 나름대로 정리했습니다만 그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악취는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자크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마을 안은 깨끗하긴 했지만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썰렁했다.

“어째 으스스한 분위기네요.”

아이미의 말에 달천이 대꾸했다.

“냄새만 아니면 살기 좋은 동네구만, 뭘. 그런데 이 냄새는 대체 무슨 냄새지?”

한대 얻어맞고 의기소침해 있던 아스마엘이 말했다.

“이건 오랜 경험에 따른 제 생각인데요. 이 냄새는 네크로맨서들이 데리고 다니는 좀비나 구울 등이 부서져서 땅으로 되돌아갈 때 나는 냄새 같습니다.”

“네크로맨서?”

달천은 잠시 플래너에게 배운 지식 중 네크로맨서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알고 있기론 네크로맨서들이 사악하긴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들 사는 마을을 습격하진 않을 텐데?”

달천의 의문에 아스마엘이 다시 답했다.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냄새는 틀림없이 언데드 계열 몬스터가 땅으로 되돌아가서 썩는 냄새입니다.”

이제 확신이 들은 듯 단정하는 아스마엘이었다.

“모르자크.”

“네, 달튼 님.”

공손하게 모르자크가 대답했다.

“병사들에게 이 주변 흙에 최근에 변화가 일어난 것 같은 흔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주변을 파보라고 하게.”

“네, 알겠습니다. 모두들 달튼 님 말씀 들었겠지? 기사들은 대기하고 있고 나머지 모든 병사들은 지금 즉시 주변의 땅들을 조사하고 파헤쳐보아라.”

모르자크의 명령에 모든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장님, 여기 이상한 뼈들이 보입니다.”

한 병사의 외침에 모두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엔 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뼈들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뭉쳐 있었다.

“이건 스켈레톤의 뼈가 분명합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을 습격할 때 몇몇 주민들에 의해 부서진 스켈레톤을 급하게 철수하느라 이곳에 그대로 묻어놓고 간 것 같습니다.”

아스마엘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그때였다.

“쉿! 모두 조용히.”

갑자기 달천이 모두에게 조용하라고 지시했다.

“누구냐!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그가 어느 한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자,

“으흐흐, 혹시나 해서 지나는 길에 들렀더니 스켈레톤의 흔적을 찾아내는 놈들이 있었구나.”

음침한 목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2

보통은 많은 군중이 모일 때 크고 작은 소음이 나기 마련이다. 또한 그 수가 1만을 넘어선다면 숨소리만으로도 소음이 될 수 있다.

1만이라는 숫자가 단순히 생각하면 아주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 움직이는 생명체일 경우 엄청난 규모로 다가온다.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안 들고 맨손으로 서 있는 1백 명만 모아놓아도 웬만한 공간에서는 갑갑함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손에 각종 무기류까지 들고 각각이 움직일 수 있는 사이까지 벌어져 있다면 1만이라는 수는 한눈에는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들은 조용했다.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소리까지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1만이 넘는 언데드들이 손에 흉측한 무기까지 들고 오는 것을 보면 아무리 간이 큰 기사들이라 하더라도 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허억!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들이지?”

불안한 음성으로 이스턴이 말했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가에 잔 떨림은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 전투 대형으로!”

모르자크의 명령에 기사단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투태세에 임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결코 평상시 같지 않았는데, 이는 누구 하나 겁에 질리지 않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선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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