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단할 순 없어. 운이 나쁘면 아케니아의 전사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어.”그 말에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무슨 소리야. 네 실력이면…….”“실력과는 무관한 문제야. 과거 아케니아의 전사들은 얼음 거인에게 굴복한 동족들을 무수히 살육한 전력이 있다. 문서에도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 게다가 지금 아케니아 혈족을 다스리는 제사장들은 과거 얼음 거인의 앞잡이로 무수히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라는 존재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어.”카르고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 사실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제사장 파야곤이 알려 준 것이었다. 때문에 카르고가 순탄하게 아케니아의 전사로
2019-07-15
외마디 일성과 함께 카르고가 두 자루의 도끼를 거침없이 파이시스의 머리통에 쑤셔 박았다.퍼어억.수박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파이시스의 머리통이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파이시스가 제아무리 생명력이 끈질긴 곤충형 몬스터라도 머리를 잃고도 살 순 없는 노릇이다.쿠우웅.묵직한 소리와 함께 머리 잃은 파이시스의 몸뚱이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죽은 보스 몬스터의 몸으로부터 순도 높은 신력이 쭉 뿜어져 나왔다.가볍게 사냥에 성공한 카르고의 파티원은 눈을 살짝 감은 채 몸속으로 파고드는 신력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것은 일행의 뒤에서 주뼛거리던 네이만과 비오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순수한 신력
입을 연 자는 금발에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전사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착용한 장비가 범상치 않았다. 그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두 아만족을 쳐다보았다.“이런 우연이 있나? 그런데 카르고를 찾아온 사람이 왜 이곳에서 서성이고 있지?”비오넬의 입술을 비집고 가냘픈 음성이 흘러나왔다.“카, 카르고를 아시오?”“왜 모르겠어? 우리 파티의 리더인데 말이야. 참, 얼굴빛을 보니 중독이 무척 심각한 것 같군. 우선 해독부터 해야 할 것 같아. 포르나 부탁해.”흰 로브를 걸친 사제가 앞으로 쓱 나오더니 두말 않고 해독 주문을 외웠다. 새하얀 백광이 몸에 서리더니 그녀의 손을 통해 쭉 뿜어져 나왔다.파파파팟.비오넬의 건장한 몸이 금
땀으로 인해 얼굴의 털이 흠뻑 젖은 두카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엘린 아가씨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마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어 아로나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의 땀을 닦아 주자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고, 고마워, 아로나.”“고맙긴. 날 지켜 준다고 그토록 고생했는데 이 정도야 뭘. 활 쏘느라 힘들었지?”그 말을 듣자 두카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사모했던 엘린 아가씨의 관심은 엑스터시보다 더한 희열을 안겨 주었다. 늪 히드라로부터 시작된 사냥은 목표로 잡았던 네임드 몬스터 라돈을 사냥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라돈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아로나는 충분
파티에서 거듭 쫓겨나자 아로나의 결심은 서서히 약해졌다. 의욕과 열정은 있었지만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아로나는 모험가의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그래, 돌아가자. 이곳은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안 돼.’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관을 나서던 아로나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포포리족 하나가 모험가로 보이는 동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여관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낯익은 포포리 모험가의 얼굴을 보며 아로나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그들이 여관 위층으로 올라가자 숨을 죽이고 있던 모험가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햐! 카르고의 팀이
“요는 큰 것 한 방이지. 자잘한 것 몇 방 날려 봐야 답답하기만 할 뿐이라고.”동료 하이엘프들과 몬스터 사냥을 나설 때에도 그녀는 오로지 큰 것 한 방만을 고집했다.사실 그것은 마법사에게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전방의 전사가 마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법 공격을 가하는 것은 마법사에겐 상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을 가하면 몬스터의 역공을 받아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리카는 큰 것 한 방을 선호했다. 캐스팅을 오래 하는 한이 있어도 강력한 화계 마법을 만들어서 날려 보냈다.엄청난 데미지를 입은 몬스터가 분노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몬스터는 맞붙어 싸우던
세 번째 목표로 정해진 심안의 제라이스트 역시 사냥당하는 수모를 면할 수 없었다. 망자의 토굴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심안의 제라이스트는 카르고 파티의 척척 들어맞는 호흡과 절묘한 연수합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다음으로 내정된 사냥감은 현상 수배된 악당들이었다. 탐욕의 미궁에 도사리고 있던 날라트호크와 카브 크라막투스, 쿠르바트 이 세 명의 수배자들에겐 천문학적인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잡으면 짭짤하겠는걸.”현상금에 관심을 가진 카르고는 동료들을 이끌고 탐욕의 미궁으로 쳐들어갔다. 악명 높았던 세 명의 현상수배범들은 결국 카르고의 파티에 명성을 더해 주는 제물로 덧없이 스러져 갔다.쟁쟁한 네임드
* * * “세, 세상에…….”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모두 합쳐 오십 명의 인원으로 레나르의 관문 바깥쪽을 철통같이 경계하는 관문경비병 중 하나인 벤은 관문의 가장 외곽에 배치되어 있었다.조금 전 관도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나는 것을 발견한 벤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사냥 나간 모험가 파티가 돌아오나 보군. 응? 흙먼지를 보니 인원이 꽤나 많은데?”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벤은 흙먼지가 피어나는 모양만 봐도 구체적인 인원구성을 추측할 수 있었다.“저 정도라면 수레 두 대에 말이 최소한 서른 필은 되는군. 수레에 묶인 말까지 합쳐서 말이야.”그가 계산을 하는 사이 흙먼지를 일으키는 범인들이
그러나 조잡한 목궁의 시위는 부쩍 불어난 두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아얏.”시위에 맞아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며 두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라면 예전에는 감히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강력한 활도 충분히 쏠 수 있을 것 같았다.사정은 포르나와 세실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세실리아는 마나량과 마나에 대한 통제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순수한 마나량만 따지면 족히 3클래스의 마법사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포르나 역시 치유 능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모두가 카누바라크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력 덕분이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귓전으로 굵직한 음성이 파고들었다.“자
레어로 들어간 카르고는 즉각 카누바라크가 있는 중심부를 향해 이동했다. 과거 동료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퀘르바임 사냥을 해 보았기 때문에 레어의 구조에 대해서는 훤했다.경험에 따르면 레어의 초입 부근에서 카누바라크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통로가 워낙 좁아 제대로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싸우려면 통로가 다소 넓고 공동이 이리저리 뚫려 있는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지금껏 카누바라크 사냥에 나선 파티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레어로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좁은 통로에서 카누바라크를 만나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렸다. 그러나 카르고는 들어가자마자 망설임 없이 좁은 통로를 내달렸
“나 역시 마찬가지야. 몬스터를 사냥해서 신력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상관없어. 전리품을 하나도 안 나눠 줘도 된다고.”세실리아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은 카르고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료가 된 이상 잡은 몬스터로부터 얻은 소득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모든 전리품은 머릿수에 맞게 공평하게 분배한다. 누가 힘을 더 쓰고 덜 쓰고는 중요하지 않아. 모두가 힘을 합쳐 잡았다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철칙이다. 그게 바로 아만족의 방식이지.”두카와 포르나의 눈이 커졌다.“그, 그게 정말인가요?”“물론이다.”세실리아가 부연설명을 했다.“우선은 카르고 님의 몸을 보호해 줄
캐스팅이 끝남과 동시에 새하얀 섬광이 카르고의 몸을 뒤덮었다. 출혈이 멈추며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포르나는 깜짝 놀랐다. 아만족의 몸에서 전해지는 반응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이미 그녀는 동일한 치유 주문을 세아트에게 펼쳐 본 적이 있다. 그때에는 겨우 출혈을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주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만족의 육신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출혈이 멎는 것은 물론이고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놀라워. 아만족의 몸에 치유 주문이 저렇게 잘 먹혀들다니…….”그러나 포르나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후미에서 대기하던 오칸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회심의 미소를 지은 세아트는 즉각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 했다. 계속해서 열 명 안팎의 오칸 무리를 골라 처리하여 수를 줄여 나가면 곧바로 근거지를 들이칠 수 있다.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오칸 무리를 토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바로 그때 그들을 향해 백여 마리가 넘는 오칸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정보길드를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곳의 오칸 무리는 백이십여 마리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칸의 뛰어난 번식력을 간과했다. 태어난 지 사오 년만 되면 충분히 전사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종족이 오칸이었다.오칸 무리는 그사이 백오십 마리 가깝게 불어 있었다. 새끼와 암컷들을 소굴에 감춰 두고 소굴을 지킬 전사들을 배치하고
때문에 세실리아는 지금껏 사냥에 거의 가담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카르고는 달랐다. 먼저 제안을 한 뒤 세실리아가 동의하자 바로 행동에 나섰다.숲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장이 3미터나 되는 트린트가 모습을 드러내어 그들을 공격해 왔다. 비교적 움직임이 느리지만 여러 개의 가지를 휘둘러 공격하는 트린트는 괴력을 지녔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몬스터이다. 그러나 마음에 딱 드는 무기 칼리아스를 얻은 카르고는 느긋하게 공격을 피해 내며 트린트의 공격 수단인 가지를 순차적으로 잘라 냈다.그렇게 튀어나온 부분을 모두 잘라 낸 뒤에는 트린트의 몸통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해 내며 세실리아의 캐스팅이 끝날 때까지
세실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만약 저 경비병이 자신들의 목적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숲과 평원을 가로질러 가서 아펜디아 분지의 네임드 몬스터 카누바라크를 사냥할 계획이다. 만약 경비병이 사실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기절초풍을 할 것이다.경비병이 문을 열어 주자 둘은 조용히 통로를 걸어 나갔다. 몬스터의 난입에 대비해서 여러 겹의 바리게이트가 지그재그 형식으로 쳐져 있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고 세실리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어머, 세실리아! 사냥 나가는 거니?”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세실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열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파티가 막 도시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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