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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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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파티에서 거듭 쫓겨나자 아로나의 결심은 서서히 약해졌다. 의욕과 열정은 있었지만 환경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아로나는 모험가의 길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돌아가자. 이곳은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안 돼.’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관을 나서던 아로나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포포리족 하나가 모험가로 보이는 동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여관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낯익은 포포리 모험가의 얼굴을 보며 아로나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그들이 여관 위층으로 올라가자 숨을 죽이고 있던 모험가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햐! 카르고의 팀이 이번에도 사냥을 성공시켰군. 정말 놀라워.”

“악명 높은 네임드 몬스터들을 마치 밀 이삭을 수확하듯 사냥해 오는군. 도대체 능력이 얼마나 되는 거야?”

“저 파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군.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전설과 같은 존재잖아.”

“꿈도 꾸지 말게. 저들은 오로지 자격이 되는 자가 아니면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말일세. 자네 모르나? 석양의 무법자란 별칭을 가진 검사 스탤런이 이곳을 찾아와 무려 한 달 동안 애걸했지만 결국 동료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실을 말이야.”

“햐! 석양의 무법자 스탤런이라면 뛰어난 전사로 소문이 자자한 모험가잖아? 그런 노련한 전사도 퇴짜 맞았단 말이야?”

“물론이지. 원래 있던 멤버들은 말해 봐야 입만 아플 테고 최근에 가세한 폭염의 마녀 셀리카만 해도 우리로선 감히 우러러보기도 힘든 명성을 가지고 있잖아. 던필드, 라프라스 등등 최고로 인정받는 강자들이 모두 모여 있으니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지.”

“그렇긴 하지.”

모험가들의 대화를 듣던 아로나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한 가지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린 모험가의 눈빛이 야릇해졌다. 귀엽고 깜찍한 아로나의 외모에 흑심을 품은 모양이었다.

“그래, 뭐가 알고 싶지, 예쁜이?”

그러나 지금껏 수도 없이 받아 본 눈빛이라 아로나는 동요하지 않고 용건을 털어놓았다.

“조금 전 올라간 파티에 포포리족이 하나 있더군요. 그가 누군지 아시나요?”

모험가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는 뇌격의 사수라 불리는 궁사 두카야. 소문에 의하면 열 개의 화살을 동시에 표적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실력자라고 해. 그가 들고 다니는 카르나크의 각궁은 그 가치가 이런 여관 열 개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그는 화살에다 네임드 몬스터 카누바라크의 독액을 바르고 다닌다더군. 캬! 어지간한 몬스터는 화살 한 방에 끝내 버릴 테지. 설명이 충분히 되었나?”

아로나는 깜짝 놀랐다. 두카라는 이름을 듣자 비로소 그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구애공세를 펼쳤던 고향 마을의 포포리족 중 하나가 두카였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서 오래 전에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 두카가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강력한 파티의 구성원 중 하나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큰 눈동자에 경악의 빛을 떠올리고 있을 때 설명을 해 준 모험가가 음침하게 웃으며 아로나의 팔을 낚아챘다.

“흐흐흐. 설명을 해 줬으면 당연히 이야기 값을 치러야지. 술을 한 잔 살 테냐 아니면 몸으로 때울 테냐?”

아로나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이러세요?”

“대답을 해 주느라 목이 타는군. 술을 살 돈이 없다면 옆에 앉아서 한 잔 따르도록 해. 술시중을 들어 주면 이야기 값으로 쳐주도록 하지.”

음충맞게 웃은 모험가가 아로나의 허리를 팔뚝으로 휘감아 옆자리에 앉혔다. 그녀가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렸지만 근육으로 뒤덮인 모험가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엘린이 예쁘다는 말을 들었지만 직접 보니 상상 이상이로군.”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한걸.”

빠져나오려고 애쓰던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여관 안의 모험가들은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애초부터 질 나쁜 모험가들에게 접근한 것이 화근이었다.

바로 그때 낯익은 음성이 귓전을 파고 들어왔다.

“아로나……? 아로나 맞지?”

고개를 돌리자 바로 조금 전 2층으로 올라갔던 포포리족 궁수의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구애공세를 펼쳤던 두카가 틀림없었다. 아로나의 얼굴에 반색의 빛이 떠올랐다.

“두, 두카!”

“맞구나. 긴가민가해서 내려와 봤는데 내 눈이 정확했어. 그런데 고향마을에 있어야 할 네가 여긴 어인 일이야?”

활짝 빛나던 두카의 눈빛이 별안간 사나워졌다. 아로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고 있는 모험가의 팔뚝을 본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 모험가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설마 초라한 몰골의 엘린 소녀가 소문이 자자한 카르고의 파티원과 안면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카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등에 멘 활을 꺼내어 화살을 걸었다.

“이것들이 감히 죽고 싶은가 보군. 그 팔 당장 떼지 못해?”

모험가들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펄쩍 뛰며 아로나를 풀어 주었다. 그들을 향해 겨누어진 화살촉의 끝이 유난히 번들거리고 있었다.

“바닥에 대가릴 박을 테냐, 아니면 카누바라크의 독이 달린 화살에 맞아 볼 테냐. 양자택일하도록.”

그 상황에서 모험가의 선택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로나를 희롱했던 모험가가 즉각 바닥에 머리통을 박았다. 낑낑거리며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꽤나 볼만했다. 두카의 시선이 모험가와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 두 명에게 향했다.

“너희들도 박아.”

“하, 하지만 저희들은…….”

“만류하지 않았으니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뭐 싫다면 화살 맛을 보여 줄 수밖에 없고…….”

시위를 만지작거리는 두카의 모습에 그들이 기겁을 해서 동료의 옆에 나란히 머리를 박았다. 세 명의 체구가 우람한 모험가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낑낑거리는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내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나도 장담 못 해. 도망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어. 귀찮게 추격하거나 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대신 한 오백 골드 정도 현상금을 걸어서 공고판에 내걸겠어. 흠씬 두들겨 팬 뒤 발가벗겨서 끌고 오라고 말이야. 물론 그 조건은 지금부터 유효해.”

그 말에 머리를 박고 있던 모험가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오백 골드라면 눈에 불을 켜고 자신들을 잡으러 다닐 녀석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당장 부근에서 술을 마시던 모험가들의 눈빛부터 변해 있었다. 하나같이 머리를 박고 있는 모험가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다.

두카가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어 허공에 던졌다가 받았다.

“정확히 오백 골드로군. 저놈들이 도망칠 경우 붙잡아 오는 사람들에게 주겠어. 명심해. 녀석들을 실컷 두들겨 팬 뒤 발가벗겨서 끌고 와야 해. 내 방은 3층의 6호다. 이만.”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돌린 두카가 아로나의 손을 붙잡고 3층으로 올라갔다. 물론 마룻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모험가들은 감히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십 쌍의 눈이 그들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었다.

두카가 묵고 있던 방에 들어간 아로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며칠 동안 2층의 객실에서 묵었는데도 여관비를 지불하느라 주머니를 톡톡 털어야 했다. 그러나 3층의 특실은 2층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했다. 족히 세 배는 넓었으며 개인 욕실까지 딸려 있었고 각종 가구와 집기들도 최고급이었다.

“와! 방 좋네.”

“도시 안쪽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대충 잡은 거야. 시설이 구려서 이 여관은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이야.”

아로나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풋내기 모험가와 명성이 자자한 일급 모험가와의 차이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네 활약상을 들었어. 놀라운 파티에 소속되어 있다며?”

“응.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파티라고 자부하지. 이래봬도 내가 카르고 팀의 원년멤버거든.”

“정말 부럽다.”

아로나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어깨를 으쓱한 두카가 근황을 물어 왔다.

“그런데 넌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거야?”

아로나가 조용히 지난 일들을 털어놓았다. 모험가의 길을 걷기 위해 고향마을을 떠나온 일과 이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남김없이 말해 주었다.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모두 다 들은 두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고생했구나. 하긴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그땐 정말 고생 많이 했었지. 카르고와 만난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어.”

“그래도 기본 실력이 있으니까 동료로 인정받은 거겠지? 어쨌거나 나도 이젠 지쳤어. 돈도 다 떨어졌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럼 모험가의 길을 완전히 포기한 거야?”

“그렇진 않아. 하지만 버티기가 너무 힘든걸. 모험가로 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두카가 정색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파티에 들도록 해. 동료들과 함께 사냥을 다닌다면 실력을 금방 키울 수 있을 거야.”

“하, 하지만 네 동료들은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한 강자들이라며? 난 아직까지 실력이 형편없이 부족해.”

“모자란 실력은 내가 채워 주겠어. 네 몫까지 해 주겠다는 뜻이지. 이래봬도 나에겐 애칭까지 붙어 있다고.”

“들었어. 뇌격의 사수라며? 정말 대단해. 예전에는 짐작도 하지 못했어. 네가 이렇게 멋지게 성장할 줄 말이야.”

그 말에 입을 헤벌쭉 벌린 두카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 최악의 경우 카르고와 결투를 하는 한이 있어도 너를 우리 파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겠어. 날 믿어.”

“저, 정말이지?”

두 손을 감싸며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아로나를 보며 두카는 다짐했다. 반드시 카르고를 설득해 아로나를 파티의 동료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두카의 호언장담은 결국 이루어졌다. 물론 그것은 결투가 아니라 집요함으로 인해 성사되었다.

두카의 청을 들은 카르고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 자는 동료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거절한 것이었지만 두카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카르고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졸라 댔다. 심지어 화장실과 침실까지 따라다닐 정도였다. 그 끈기에 카르고도 결국 백기를 내걸 수밖에 없었다.

“후……. 너도 어지간하군. 알겠다. 네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대신 그녀의 몫까지 하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마워, 카르고! 역시 넌 내 진정한 친구야.”

바로 그것이 아로나가 카르고 파티의 여덟 번째 멤버로 받아들여진 과정이었다.

지금껏 아로나는 파티 사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상대하는 몬스터가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르고의 파티원이 되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령사인 아로나의 특기는 몬스터에게 저주를 거는 것이다. 상대하는 몬스터가 강할수록 저주의 효력이 강해졌다. 몬스터의 능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주로 깎아 먹을 수 있는 수치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녀가 거는 저주는 몬스터가 가진 능력을 일정 부분 감퇴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카르고의 파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몬스터만을 상대했다. 그런 강력한 몬스터에게는 아로나가 거는 저주의 위력이 극대화되었다.

캬아아악!

몬스터의 동체가 돌연 보라색으로 변했다. 아로나의 저주가 활성화된 것이다.

카르고의 파티는 사냥터로 가다가 우연히 늪 히드라와 조우했고 곧바로 사냥에 들어갔다. 늪 히드라는 몸길이가 15미터에 달하는 강력한 몬스터이다. 막강한 힘과 스피드, 그리고 탁월한 재생력 때문에 잡으려면 한참 동안 치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로나의 저주가 걸리자 늪 히드라의 능력치가 현저히 감퇴되었다. 힘도 줄었고 속도도 느려졌다. 상처를 입는 즉시 회복되는 특유의 재생력 역시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물론 늪 히드라 자체가 워낙 강력한 몬스터라서 저주가 쉽게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해서 걸자 저주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었다.

아로나가 저주를 걸어 깎을 수 있는 능력치는 대략 5에서 10퍼센트 정도, 그러나 늪 히드라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깎여 나가는 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의 저주 덕분에 늪 히드라를 사냥하는 시간이 월등히 줄어들었다. 시체가 된 늪 히드라에게서 시선을 거둔 카르고가 놀란 눈빛으로 아로나를 쳐다보았다.

“저주의 위력이 놀랍군. 사냥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아로나 역시 놀라고 있었다. 저주가 이토록 강력하게 작용할 줄은 아로나 자신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두카의 활약상에 홀딱 빠져 있었다. 사냥이 시작되자 두카는 방어 수단이 별로 없는 아로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만약의 경우가 생길 경우 그녀를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자리를 잡은 다음 두카는 늪 히드라를 향해 끊임없이 시위를 당겼다.

쐐액 쐐애액.

분당 수십 발씩 날아간 화살은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늪 히드라의 급소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히드라가 통증을 느낄 수 있는 부위라면 예외 없이 독이 발라진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아로나의 몫까지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그 모습에 아로나가 입을 딱 벌렸다.

“정말 놀라워. 날아가는 화살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너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화살을 날리는 궁수는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어.”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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