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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위너스 결승 MVP 이승석 "외유내강의 승리"

손목 인대 부상 딛고 SK텔레콤 PS 진출 견인
위너스 결승서 '라이벌' KT 상대로 3킬 MVP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해도 의미있는 하루가 존재한다. 생일, 결혼 기념일 등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뜻 깊은 하루다. 승부의 세계에 종사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게도 이런 날이 있다. 2007년 3월3일이 SK텔레콤 김택용에게는 잊지 못한 날인 것처럼-데뷔 첫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 마재윤을 3대0으로 완파한 날이다-이승석에게 2011년 4월9일은 무덤까지 가져갈 기념일이다. 무명이나 다름 없던 이승석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모두 인정하는 MVP로 선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인고의 5년
2011년 4월9일 이전까지 이승석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기자나 게임단, 방송사 등 e스포츠 업계 관계자 또는 SK텔레콤의 팬이거나 스타크래프트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도 좋다. 저그가 약하다고 평가되는 SK텔레콤 T1에서 2인자 저그였고 개인리그 16강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2006년 연습생 신분으로 SK텔레콤 T1에 입단한 이승석은 2007년 상반기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었다. 주훈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시절 팀플레이를 담당하며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성과가 묻혀 버렸다. 사실 성과랄 것도 없었다. 팀플레이에서 이승석은 고작 1승을 거뒀을 뿐이지 주전급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연습생 때부터 이승석에게 믿음을 주던 코칭 스태프가 모두 경질된 점은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도 있었다.

2008 시즌에도 팀플레이를 담당한 이승석은 박태민과 윤종민 등 주전 저그들이 군입대와 은퇴를 선언하면서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08-09 시즌 이승석은 박재혁과 함께 T1 저그의 투톱으로 기용됐다. 주전의 공백을 메워야 했지만 그의 경험은 일천했다. 이전까지 프로리그에서 개인전을 단 두 차례 뛴 것이 전부였다. 성적은 참담했다. 1라운드 5전 전패. 그를 포함한 SK텔레콤 저그 선수들은 13연패를 당했다. 한 팀의 한 종족이 이렇게 무너진 것은 역대 처음이었다.

"'T1 저그'라는 수식어가 생기기 시작했죠. 다들 잘해보자, 이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경기에 나서면 꼬인 매듭이 풀리지 않았어요. 연패가 쌓이니까 더 위축됐죠."

13연패를 끊은 주역이 바로 이승석이었다. 2라운드에서 STX 박성준을 만난 이승석이 이기면서 SK텔레콤 저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던 분위기에서 한숨을 돌렸다.

◆큰 경기 치르며 성장
참혹했던 08-09 시즌을 넘긴 이승석은 09-10 시즌 저그전 전담 선수로 변신을 꾀했다. 08-09 시즌성적은 3승8패. 이 가운데 저그를 만난 적이 무려 8번이나 된다. 저그전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은 이승석은 들입다 파기 시작했다.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09-10 시즌 정규 시즌에서 저그를 네 번 상대한 이승석은 모두 승리하면서 업그레이드됐음을 증명했다. 프로토스나 테란 등 다른 종족전에서 기복이 심했지만 그래도 저그전만큼은 SK텔레콤 안에서 가장 성적이 좋다고 인정받았다.

이승석이 업그레이드될 계기는 또 있었다. 바로 포스트 시즌이다. 09-10 시즌 정규 시즌에서 3위를 차지한 SK텔레콤은 6강 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게다가 결승전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들은 7전4선승제에서 두 번 먼저 이기는 쪽이 승자로 정해지는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이승석은 8번 출전해 3승5패의 성적을 냈다. CJ 김정우, 변형태, 폭스 이영한, STX 조일장, KT 박재영 등 주전들과 경쟁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번 위너스리그 결승전에서 떨지 않고 경기할 수 있었던 이유도 09-10 시즌 포스트 시즌을 치르면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경기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승보다 패가 더 많았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손목 부상
10-11 시즌 초반 이승석은 저그전 연승을 이어가면서 상승세를 탔다. 후배 어윤수와 함께 SK텔레콤 저그가 약하지 않다는 이미지로 전환을 꾀하는데 앞장섰고 팀은 1라운드에 배정된 9개의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T1 저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려는 찰나에 부상이 찾아왔다.

"2라운드 막판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무거운 것을 들면 손이 저리는 현상이 있긴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날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손목에 통증이 느껴졌어요. 병원을 찾아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인대가 손상됐다고 하더라고요."

한달 가량 오른손을 쓰지 말라는 진단을 받은 이승석은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울분이 쌓였다. 1라운드에서 잘 나가던 SK텔레콤이 2라운드에서 주춤하기 시작했고 위너스리그에 들어와서는 저그들의 동반 부진으로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택용이 3회 연속 올킬을 통해 팀을 이끌었지만 어윤수와 박재혁은 나서는 경기마다 패하면서 또 다시 'T1 저그'라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경기에 나가고 싶은데 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 때문에 꼼짝도 못했어요. 일상 생활에서도 오른손을 쓰지 말라며 깁스와 비슷한 두께의 보호대를 줄 정도였어요. 물리치료를 받고 3주 정도 지나니까 연습을 시작해도 된다고 했고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이승석이 없었다면?
연습해도 좋다는 사인을 받아낸 뒤 이승석은 결정적인 순간에 팀을 구하는 소방수 역할을 해냈다. 위너스리그에서 KT와 화승이 1, 2위를 확정지은 상황에서 3, 4위 자리를 놓고 싸운 팀은 4개였다. SK텔레콤을 비롯해 하이트, 삼성전자, 웅진까지 1승을 놓고 피 터지는 싸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승석의 복귀전은 4라운드 중반 웅진 스타즈와의 경기였다. 김택용이 패하고 난 뒤 바통을 이어받은 이승석은 윤용태와 김명운을 연파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하이트 엔투스전에서 진영화를 꺾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패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에서 이승석은 결정적인 승리를 따낸다.

9승8패로 마지막 경기를 남겨 놓은 3월20일 SK텔레콤은 정명훈의 3킬을 앞세워 화승을 가볍게 제치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제동이 정명훈과 김택용, 박재혁을 연파하면서 올킬을 당할 위기로 상황이 반전됐다. 이승석은 최종 주자로 출전해 저그전 스페셜리스트다운 플레이로 이제동을 꺾었다.

"이제동 선수의 전략이 저보다 좋았고 초반 운영도 나았다고 생각해요. 뮤탈리스크와 스컬지 컨트롤로 역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전투하러 나가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첫 공격을 제가 먼저 날린 뒤에는 손이 풀렸고 뜻대로 풀어갔어요."

이승석이 이제동을 꺾는 순간 SK텔레콤은 위너스리그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 최호선, 정명훈, 김택용 등과 함께 이승석은 당당히 주전으로서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운명의 4월9일이 찾아왔다. 이틀전 박용운 감독으로부터 선봉 출전을 통보받은 이승석은 2승을 해낸다면 팀이 우승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1, 2세트를 준비했다. 결승 당일 경기석에 들어가자 세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40분이나 대기하며 재경기를 해야 했지만 1, 2세트에서 김성대와 임정현 등 저그 선수들을 꺾은 이승석은 3세트에서 KT의 복병 김대엽마저 제압하면서 '미친 남자'로 떠올랐다. 비록 이영호에게 졌지만 KT를 궁지로 몰아 넣었고 김택용에게 바통을 넘기면서 우승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2승 정도면 내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3킬까지 해버렸어요. 그리고 MVP까지 탔죠.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5년 동안 무명의 시간을 보내던 이승석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SK텔레콤도 처음으로 위너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외유내강
이승석의 성격은 유순하다. 5년 이상 지켜본 동료들은 화내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기 주장이 강하지도 않다. 목소리를 키우기 보다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스타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 잘 듣는 아이라고 불렸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좋아서 집에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보라고 꿈을 심어줬어요. 그런데 공부가 아니라 게임 쪽에서 승부욕이 생기더라고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이승석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시작하기를 원했다. 사회인으로서 갖춰야하는 기본적인 자질을 배운 뒤에 프로로 활동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승석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길을 가기로 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달 넘도록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이처럼 승부욕을 갖고 덤빈 일이 없었기에 부모님도 놀라시더라고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강하게 주장했어요."

SK텔레콤에서 이승석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떠올랐했다. 위너스리그를 통해 당당히 주전으로 자리잡은 그는 5,6라운드에서 승부욕을 불태우겠다고 했다. 작년에 KT에게 내준 우승컵을 되찾아오면서 또 다시 MVP 자리를 따내겠다는 욕심도 밝혔다.

"위너스리그 MVP를 탄 뒤에 많은 분들이 달리 보기 시작했어요. 적극적, 긍정적, 진취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일단 자신감을 얻었기에 끝이 어디인지 달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프로리그 20승, 결승전 우승을 목표로 세웠지만 프로게이머로서 최고의 자리에 이승석이라는 이름을 걸겠습니다."

부드러운 외모와 목소리 속에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말겠다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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