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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킬]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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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킬 표지
[데일리게임]
제 14화

“그냥 잡자.”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요!”

처음으로 은호가 하현을 향해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지금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나와 하현에겐 없었다. 몬스터 떼거리가 우르르 우리들 앞까지 왔기 때문이다.

지척까지 다가온 몬스터 떼에 질려 평소 잘 돌아가던 잔머리마저 굳어 버린 듯했다.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며 켈켈 웃어대는 녀석들을 보자니 슬쩍 겁이 났다.

아아, 이렇게 쪽수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건가.

아니지, 작전상 후퇴다. 나는 은호를 흘끗 바라보았다. 은호는 이미 도주할 길을 모색하고 있었고 하현은 씌 웃으며(도대체 왜 웃느냐 말이닷!) 검을 빼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일단―!”

큰 소리로 하현과 은호를 불렀다.

나는 단호히 주먹을 쥐고 검지를 펴며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은호가 바라보았다. 하현 역시 슬쩍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기대의 눈빛으로 언뜻 비췄다.

미안하다. 애들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말이야, 큭.

“일다 튀엇!”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잽싸게 장비를 챙겨 은호가 봐 둔 뒤쪽으로 냅다 뛰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하현은 한숨을 내쉬다 내 뒤를 쫓아왔다. 은호 역시 곤란한 표정을 짓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내 쪽으로 달렸다.

“크에엑!(저것들 튄다, 잡아!)”

왠지 우리들을 향해 소리 지르는 듯한 오거의 말소리에 우리들은 좀 더 속력을 내 도주했다.

우리들의 몸은 보통 인간들보다 기본 능력이 좋아서인지 인간과 비슷한 스피드의 고블린들을 손쉽게 따돌릴 수가 있었다.

정신적으론 아직 어수룩해서 금방 피로감을 느낀다는 게 문제이지만.

“헥헥! 하현, 뭐 좋은 수 없어?”

삼십 분을 넘게 뛴 것 같았다. 발은 무거워지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이렇게 계속 뛰기만 해 봤자 해결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하고 뒤따라오는 하현에게 물어보았다.

“그냥 잡아.”

여전히 그냥 잡아 없애자는 하현의 말에 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한탄을 했다.

“어이구! 저 많은 수를 어떻게 잡아!”

“헉, 헉! 그런데 계속 이렇게…… 뛰기만 해요?”

나와 하현의 말싸움 사이에 끼어들며 은호가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다. 은호의 말에 뒤의 상황이 어떤지 슬쩍 돌아보았다. 고블린과 오거 떼는 질리지도 않는지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저놈들은 안 지치는 거야? 설마 저놈들도 마스테마의 손을 거쳐 간 것들 아니야? 제엔장!”

턱까지 숨이 차오르자 짜증이 솟아올랐다. 짜증을 내며 내가 방심한 순간 하현이 검을 빼 들었다.

“그냥 싸워.”

툭 한마디 내뱉은 하현은 재빨리 숨을 고른 뒤 고블린 사이로 뛰어들었다.

“야!”

나의 목소리는 고블린들의 괴성에 묻혀 버렸다.

하현은 자신을 향하는 도끼와 몽둥이들을 가볍게 흘러 넘기고는 재빠르게 팔을 휘둘러 몬스터들을 하나 둘씩 베어 나갔다.

일 미터가 훨씬 넘는 기다란 검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고블린도 하나씩 베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막힘없이 베어 나가는 하현의 공격적인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주춤거렸다.

검이 닿지 않는 정도의 간격으로 하현을 중앙에 두고 슬금슬금 고블린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마 협공으로 한 번에 공격하려는 의도이리라. 고블린들의 의도를 읽은 하현의 표정이 슬쩍 굳어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은호를 종용했다.

“은호, 네 쪽으로 달려드는 놈들만 겨냥해서 쏴! 조심하고!”

“아, 네!”

적당한 거리에 서서 석궁을 장전하고 은호를 확인하며 나는 재빨리 하현이 있는 쪽으로 무기를 쥐고 뛰어들었다.

“하앗―!”

챙―!

제일 수가 적은 쪽으로 날카로운 두 개의 도를 휘둘러 고블린을 쓰러뜨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 들어가 하현 쪽으로 붙었다.

하현의 등에 맞대어 뒤쪽으로 자리를 잡은 나는 우리의 무기를 보며 두려운 듯한 표정을 보이는 고블린을 보고 살짝 딴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현의 등을 맞대고 멋들어지게 한마디를 내뱉어 주었다.

“늦었지?”

악의 무리에게 둘러싸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악의 무리 속으로 뛰어드는 주인공. 그리고 친구에게 건네는 낯부끄러운 대사. 쿡! 이거 진짜 감독만 있으면 완전히 영웅물의 영화인데 말이야.

잔뜩 멋을 낸 나의 대사를 들은 하현이 슬쩍 웃음을 지으며 처음으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늦었군.”

“크르르!”

어느새 도착했는지 뒤처졌던 오거가 하나 둘 우리 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 좀 더 주인공의 기분 좀 내려 했지만 두 눈을 부라리며 죽일 듯한 기운을 뿌리며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나는 도후 주연의 액션 영화 제목에 관한 생각을 접고 눈앞의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아직 말투는 정신을 못 차린 듯) 하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위험하면 소리쳐.”

“너나 조심해.”

“크르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각자의 무기를 고쳐 잡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디 한번 미친 듯이 싸워 보자구, 친구.

“흠, 그럼.”

“좋아.”

간격을 좁혀 오는 고블린의 행동을 본 나는 선방을 먼저 날리기 위해 빠른 보폭으로 눈앞에 잡아 둔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얍!”

양손을 교차하며 눈앞의 고블린의 가슴을 베어 넘기자 놈이 쓰러지며 뒤쪽에 있던 한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놈의 행동은 단순했다. 나는 재빠르게 방향을 전환해 허리를 숙여 뒤에서 나를 베려는 오거의 도끼를 피했다.

어찔한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는 도끼를 침착하게 머리 위로 흘려보낸 뒤, 재빨리 도를 다른 손으로 바꿔 쥐었다. 그리고 내 위쪽에 휘둘린 손을 회수하려는 오거의 한쪽 팔을 일직선으로 그어 올렸다.

촤악―!

털썩하고 내 발 앞으로 오거의 한쪽 팔이 떨어져 회전을 하며 나뒹굴었다.

“크아악―!”

베어진 자신의 팔에서 피가 뿜어 나오자 이제야 고통을 느낀 듯 오거가 베인 팔을 쥐며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질러 댔다.

“시끄럽군.”

어느새 비명을 지르는 오거의 등 뒤로 다가갔는지 하현이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더니 가차 없이 오거의 목을 베어 버렸다.

놈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확인하다 옆쪽에서 날아오는 도끼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 눈에는 느리다 싶을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기에 반걸음 빠져나와 눈앞으로 흘려보냈다.

“크륵?!”

자신은 기습이라 생각하며 내가 베이길 기대했는지 고블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슬쩍 웃어 주곤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으랏차차차!”

퍼억―!

멍청한 녀석에겐 매가 약이다. 기습이 실패했으면 재빨리 다음 공격을 하지. 그리 멀뚱한 표정을 짓다니. 넌 그냥 한 대 맞아라.

말이 통하지 않는 게 유감인지라 나는 그저 머릿속으로만 내뱉고는 과감하게 발을 들어 놈의 얼굴을 밀어 찼다.

온 힘을 다해 찬 덕에 나의 발바닥에 안면을 가격당한 고블린은 몸이 허공에 부웅 뜨더니 이윽고 바닥에 쓰러졌다. 두 마리의 고브린을 보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선뜩 다가오지 못하는 두 녀석을 보며 나는 앞의 두 녀석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놀지 말고 빨리 안 해?”

내 모습이 노는 걸로 보였는지 뒤쪽에서 싸우던 하현이 타박하며 투덜거렸다. 입을 놀리며 베는 모습이 익숙해진 듯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떼로 밀고 오는 수는 벅찬 듯싶었다.

“안 놀아!”

어느새 나를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의 배를 뒤차기로 걷어차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아 내가 어디가 노는 것처럼 보이느냐굿!

투덜거리는 순간 내 귓가에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후―!”

하현이 부르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점점 더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소리에 나는 눈을 슬쩍 치켜떴다.

“……!”

어느새 나타났는지 내 앞으로 고블린 하나가 뛰어 내려오며 나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치려 했다.

피할 틈이 없어 실패를 외치려던 찰나였다.

피잉―!

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바람소리 사이로 또 다른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하고 감았던 눈을 뜨자 내 머리를 치려는 고블린의 이마 한가운데에 화살이 박힌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고블린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쪽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는 은호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석궁을 장전하고 있었다.

“고마워―!”

“조심해요!”

은호를 향해 인사를 건넨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적들을 처리하기 위해 몬스터들이 뭉쳐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고블린 두 마리가 달려가는 나를 막아섰다. 휘두르는 도끼와 몽둥이를 동시에 도로 막아 세운 뒤 재빨리 허리를 틀어 두 고블린 사이의 틈으로 들어가며 허리를 베어 넘겼다.

쓰러지는 소리를 확인한 뒤 눈앞에 서 있는 오거를 바라보았다.

내 키의 두세 배가 될 정도의 녀석을 보자 이마에서 살짝 땀이 흘렀다.

“쳇! 우라지게 크네.”

내가 먼저 움직였다. 큰 체구라 급소를 노리기 힘들어 재빨리 오거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발등으로 오거의 턱을 날렸다.

“크어어―!”

오거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착지한 내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나는 잽싸게 그 움직임에 맞춰 두 도의 날을 교차해 오거를 베어 냈다.

“휴 내 몫은 다 한 건가?”

막상 부딪쳐 보니 처음에 수만 보고 너무 겁을 집어먹었던 거 같다.

마저 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하현에게 다가가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없어. 다음 단계, 바로 이어서 하자.”

“엑?!”

“빨리!”

자신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를 가차 없이 베어 내며 하현이 다음 단계도 이어서 하자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나의 불만은 역시 먹히지 않는지 하현은 오히려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하현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해 그날 하루 동안 우리 셋은 두 개의 단계를 더 뛰어넘는 쾌거를 이뤄 냈다. 밥도 굶고 말이다. 크응!

8단계, 9단계 역시 배경은 평원이었다. 나와 하현을 선두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렸으며, 은호는 열심히 석궁을 쏘며 하나하나 맞혀 나갔다.

확실히 우리는 계속 성장해 갔다.

은호의 정령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

그 뒤로 시간은 정말 더디게 지나갔다.

이유인즉, 10단계부터는 보스 급의 몬스터가 하나씩 출현을 해서 마법까지 난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보스 급 몬스터는 일반 무뇌 몬스터들과 달라 치고 빠지는 방법을 알고 부하들을 부리기까지 하며 교묘하게 우리를 맞서 싸웠다. 우리 역시 계속된 전투 경험으로 불리하지 않게 맞서 싸워 갔다.

하지만 몇 번씩이나 이길 수 있었던 순간에 나나 하현, 은호가 한 번씩 작은 실수를 하게 되어 실패를 외치고 그때마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며칠 밤 철야를 하며 1단계부터 시작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배고픔으로 뱃가죽이 달라붙은 배를 움켜쥐며 눈앞의 몬스터들을 먹이인 양 회를 뜨듯 베어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15단계를 깨고야 말았다.

반년 안에 15단계쯤은 거뜬히 깰 수 있으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던전에서 무려 일 년 가까이를 허비해야만 했다. 바로 그 작은 실수들로 인해서.

특히 마지막의 15단계는 정말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힘들었다.

10단계 차례차례 등장한 보스 급 몬스터들이었던 좀비, 스켈레톤, 트롤, 리저드맨, 가고일 다섯 마리가 함께 나왔고 그 이상의 보스 급으로 와이번 두 마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1단계부터 지금까지의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보조하며 달려들기까지! 이것들을 불러낸 마스테마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참 궁금할 뿐이었다.

크윽―!

처음 그것들을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그저 실패를 부르짖은 것뿐이었다.

온갖 연구 끝에 안간힘을 써서 겨우 15단계를 끝냈을 때 등장한 마스테마를 보며, 나와 하현은 그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정말로 애썼다. 정말이지 그땐 명령이고 뭐고 입을 열기 전에 확실하게 마스테마의 목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15단계 미션 완수 기념으로 많은 돈과 보석, 그리고 장비를 새로이 맞춰 주어서 화는 풀렸다. 사실, 우리가 화낼 줄 알았는지 마스테마가 상당히 저자세로 자신의 몸에 실드까지 치며 등장해서 시도를 못한 것뿐이지만.

마스테마는 우리가 가야 할 세계에 대해 설명을 한 후 바로 떠났다. 우리도 첫 번째 임무인 마스테마나 마족을 소환해 줄 계약자를 찾는 데에 주력하기로 하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제 5장 이상한 여자 치르윈

던전을 빠져나온 곳은 외딴 섬이었다.

이곳에 과연 마을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작은 섬이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이었다. 다행히 전에 마스테마가 건네준 만물사전으로 이곳에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 시간대에 뭍으로 가는 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서둘러 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배를 탈 수가 있었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포르네이야 국의 뤼튼 항구였다.

항구도시라서 인지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종족들로 가득한 모습에 드디어 내가 이 세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지자 우리는 짐을 풀기 위해 가까운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청소 중이었는지 걸레를 들고 장식품들을 닦고 있던 젊은 여자가 활짝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도 살짝 웃어 주며 빈 방이 있는지 확인했다.

“삼 인실 방 하나 있나요?”

“에엣? 삼 인실이요?”

던전에서 늘 함께 생활한 게 익숙해진 나는 이곳에서도 따로 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들끼리인데 뭣 하러 돈 아깝게(물론 돈은 많지만) 방을 따로 잡나 싶었고, 내 말에 반대가 없는지 하현과 은호도 그냥 가만히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류현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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