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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의 카트 리포팅] 문호준 그리고 또 문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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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4일 개막. 2020년 5월 23일 결승전. 무려 141일동안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선수들이 모인 넥슨 아레나에는 무거운 적막감이 흘렀습니다. 가장 익숙한 경기장이지만 가장 필요한 팬들의 응원과 함성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개인전 결승전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의 표정에 왠지모를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문호준의 모습은 당당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리허설에서도 베테랑답게 여유가 넘쳤습니다. 이번 시즌 문호준은 오프라인 예선부터 32강, 16강, 승자전을 거치면서 단 한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이 날 문호준은 개인전과 팀전에서 통산 12, 13회 우승, 개인전에서만 10번째 우승에 도전합니다.

역대급 멤버가 출전한 개인전답게 초반부터 경기는 치열했습니다. 매 트랙 1위의 주인공이 바뀌었고, 매 코너마다 대형사고가 속출했지만, 선수들의 놀라운 집중력과 사고회복능력으로 2라운드 1:1 경기에 누가 진출할 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의 접전이 펼쳐졌습니다.

승부의 윤곽은 15트랙 '쥐라기 공룡섬 대모험'부터 드러납니다. 14트랙까지 박인수 74포인트, 문호준 65포인트, 유창현이 64포인트를 쌓아 놓은 상황. 박인수가 2위 안으로 들어오면 80포인트를 넘어 1라운드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트랙부터는 모든 선수들이 1위만을 노리고 싸워야 합니다. 유창현이 경기 내내 선두권을 유지했습니다. 중위권 다툼이 치열한 상황에서 후반부에 박인수와 문호준이 1위를 노리며 거칠게 라인을 압박합니다. 마지막 순간, 유창현과 문호준은 살아 남았지만 박인수가 이재혁과 충돌하면서 4위로 들어옵니다. 박인수 78, 유창현 74, 문호준 72. 이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선수는 무려 세 명입니다.

이어진 16트랙에서 다시는 보기 어려운 동률 상황이 완성됐습니다. 중위권을 잘 유지하던 박인수가 큰 사고에 휘말리고 이재혁이 철벽 블로킹으로 문호준과 유창현을 막아내면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합니다. 79대 79대 79의 삼자동률. 80포인트까지 단 1포인트만을 남겨놓은 채 문호준, 유창현, 박인수가 또 한 번 카트라이더 결승전의 역대급 승부를 만들어 냅니다.

세명 모두가 리타이어하지 않는 한 무조건 17트랙에서 경기는 끝나는 상황이 됐습니다. 6, 7, 8위를 하더라도 6위가 1포인트로 80점을 완성하니까요. 결승전에 출전한 8명의 선수 모두에게, 이제부터는 매 코너가 마지막 승부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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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7트랙 '공동묘지 해골성 대탐험'. 2랩 후반까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초접전이 펼쳐집니다. 대형 사고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선수들의 사고회복능력이 빛났고, 마지막 순간까지 1위부터 8위가 똘똘 뭉쳐가는 치열함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결승전 최고의 명장면, 문호준의 '문스핀턴'이 트랙 위를 수놓았습니다. 박인수, 유영혁, 전대웅, 문호준, 이재혁 순으로 대형 사고가 펼쳐졌지만 문호준은 360도를 돌아 기적적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마치 사고를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러운 사고회복에 모두가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피니쉬 라인을 1등으로 통과한 주인공은 문호준이었습니다.

문호준 89, 유창현 82, 박인수 80.

80포인트 선취 방식에서 80포인트를 찍고도 2라운드에 가지 못하는 대이변이 연출됩니다. 최후의 2라운드 진출자는 문호준과 유창현으로 결정됐습니다.

유창현은 강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1:1 방식의 대결이지만 침착하게 빌드를 완성하고 거친 몸싸움을 버텨가면서, 문호준과 종이 한장 차이의 접전을 펼칩니다. 4라운드가 종료될때까지 스코어는 2:2. 결국 마지막 5트랙만이 남았습니다. 4라운드에서 패배한 문호준이 고개를 들어 중계석을 바라봅니다. 무관중으로 치뤄진 결승전에서 관계자들과 중계진만이 유일한 관중이었기 때문일까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씨익 웃습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오는 상황에서도 문호준의 머리 속에 '패배'라는 단어는 없어 보입니다.

최후의 5트랙 '어비스 숨겨진 바닷길'. 4개의 트랙을 달리며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유창현의 카트바디가 위험구간에서 휘청이며 떨어집니다. 그리고 문호준은 승리를 확신하며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2006년 9살의 나이에 처음 출전한 카트라이더 리그. 14년의 세월이 지난 2020년에도, 문호준은 개인전 10번째로, 팀전 합산 12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개인전 우승의 기쁨도 잠시, 이제 10분도 남지 않은 팀전 결승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개인전 우승을 축하하는 동생들에게 팀전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주문하면서 자리를 옮겨 팀전 세팅을 시작합니다. 팀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넥슨아레나에 돌아온 이은택이 초조한 모습으로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문호준에게는 무려 10년 넘게 이어온 징크스가 있습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장담하면 안된다'라는 것이죠. 아무리 컨디션이 좋은 날도 방심하는 순간 경기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담아둔 철칙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날 문호준의 인터뷰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우승을 확신하고 누구보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승리를 장담했습니다. 오랜 징크스를 과감하게 깨 버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결승전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을 동생들을 위한 메시지였죠.

"나만 믿고 따라와라. 그러면 우승할 수 있다."

시즌 내내 급성장을 이뤄낸 배성빈과 박도현이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기복이 심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이 종종 있었습니다. 철벽 블로킹을 자랑하는 최영훈도 유독 결승전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았죠. 문호준의 상대에 대한 강한 도발과 무모할 정도의 자신감은 사실 결승전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동생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스스로의 자신감을 증명하듯, 1세트 스피드전에서 문호준은 괴물같은 주행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박도현과 배성빈이 사고에 휘말려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외로운 선두권 싸움을 이어나갔고, 팀이 위기에 처할 때는 과감한 공격으로 락스 선수들을 흔들었습니다. 스피드전 결과는 4:2로 한화생명의 승리. 지금껏 아이템전에서 한 번도 락스에게 패배한 적이 없기에, 승부는 한화생명 쪽으로 기울어버린 듯 했습니다.

하지만 락스의 사상훈과 한승철은 간절했습니다. 플레이오프 승리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에이스 이재혁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던 두 선수. 그 때의 눈물은 아이템전에 패배하면서 에이스결정전의 무거운 짐을 이재혁에게 맡겼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이재혁을 에이스결정전까지 보내줘야만 합니다.

두 선수의 간절함이 통했습니다. 락스는 이미 아이템전에서 최강팀으로 성장했고, 철저한 브리핑과 완벽한 팀웍에 한화생명은 힘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아이템전 스코어 4:0 락스 승리. 이제 팀원들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문호준과 이재혁이 에이스결정전 한 트랙으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아이템전 0:4 패배 후 문호준이 에이스결정전을 준비하는 동안 최영훈, 박도현, 배성빈이 부스 밖으로 걸어나옵니다. 세 선수의 표정에 복잡한 감정들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아이템전 패배에 대한 아쉬움, 문호준에 대한 믿음, 그리고 미안함. 에이스결정전이 진행되는 동안 혹시나 자신들의 모습이 문호준에게 방해가 될까 마음을 졸이며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한 구석에서 결과를 기다립니다.

에이스결정전 트랙은 '에결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악명높은 '광산 아슬아슬 궤도 전차'. 이재혁과 문호준은 누구보다 이 트랙의 위험구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구간에서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됐던 다른 에이스결정전과는 달리, 이번 승부는 마지막 커브구간까지 이어집니다. 미세한 실수 한 번에도 승부가 결정지어지는 상황에서, 이재혁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입니다.

'혹시 모를 순간적인 스탑카트? 속도를 줄일까? 치고 나갈까? 먼저 공격할까?'

순식간의 망설임이었지만, 문호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 과감한 몸싸움 한 방으로 이재혁의 가속을 넘어섭니다. 오늘만 무려 33트랙을 달렸습니다. 기나긴 주행을 끝낸 문호준이 승리를 확정지은 순간, 동생들이 부스 안으로 달려듭니다. 문호준도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감격의 포옹을 나눕니다. 최영훈의 유니폼이 구겨질 정도로 꽉 붙잡은 문호준의 손에서, 오늘의 승리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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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뻐야 할 한화생명 이스포츠의 창단 첫 우승.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생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동생들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인터뷰를 이어나가던 문호준의 마음 속에서, 그 동안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지금까지 함께 연습하며 동고동락한 시간들, 동생들을 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때로는 모질게 질책했던 일들에 대한 미안함,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동생들에 대한 고마움.

주장의 책임감과 황제의 외로움을 꿋꿋하게 견뎌 냈던 문호준도, 동생들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문호준은, 동생들과 함께 열 세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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