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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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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이제는 제법 날씨가 추워졌는데 시문은 상처 때문인지 상의를 입지 않고 외투만 어깨에 걸친 상태였다. 그 아래로 두텁게 감겨 있는 붕대가 보였다.

티노의 시선이 붕대 위에 닿자 시문은 그 위를 아무렇게나 손으로 툭 쳐 보이며 말했다.

“이건 위장입니다. 제가 다 나은 걸 알면 달려들어서 귀찮게 굴 인간들이 무더기로 있으니까요.”

공방 사람들을 칭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황금의 어스듐을 노리고 있다던 많은 사람들을 말하는 거겠지.

“티노 군에게도 같은 약을 썼는데 이상할 정도로 더디게 낫더군요. 씨드 그 자체에 베인 것이라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모레쯤이면 다 나을 겁니다. 아마 흉터는 남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최상급 약을 퍼부어 줬나 보네요. 고맙습니다.”

티노는 몸을 일으키면서 인사했다. 시문의 상처는 티노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이 단숨에 나았다면 실력 있는 의사가 최상급 약을 써서 제대로 치료해 줬다는 뜻이 된다. 시문의 가문에서 의사와 약을 보내 온 거겠지. 덩달아 티노까지 득을 봤으니 고마워해야 마땅했다.

“당연한 겁니다. 저들의 눈에는 티노 군이 제 생명의 은인인 걸요.”

“하하……!”

정작 구해진 것은 티노였다. 시문은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었다. 죽고 싶어 했던 것인지, 죽어야만 했던 것인지, 둘 다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의 시문은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티노를 위해 아르카와 검은 남자를 불러 준 것이다.

“사람들한텐 뭐라고 하셨어요?”

“단순 사고라 변명하기엔 제 상처가 있으니까 적당히 섞어서 말했죠. 또 수색한답시고 쳐들어 온 테이슨 경이 절 찌르고 티노 군은 기절시킨 뒤 물건을 훔쳐 도망쳤다고요. 그자가 증거인멸을 하려고 소각로에 폭탄을 설치했는데 다행히 티노 군이 바로 깨어나서 절 업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 팔의 상처는 제가 조각하고 있던 원석이 폭탄에 휩쓸리면서 할퀴고 지나간 거라 해 뒀어요.”

“그쪽 사람들은 뭐라고 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가요?”

다시 만들고 싶지 않기에 제 손으로 모든 걸 지우려 한 시문을 방해한 것은 결과적으로 티노 자신이었다. 때문에 덧붙이는 질문이 한층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시문은 재미있다는 듯 눈까지 반짝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설마요!”

심지어 답하는 목소리까지도 유쾌했다. 항상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감정의 색깔은 없는 시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제 와 다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가며 몇 년을 기다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완성품을 훔친 자를 찾아내는 게 시간 면에서도,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니까요. 거기다 다시 시작한다 해도 완성품의 효력이 검증된 다음에나 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 아니겠습니까?”

“……완성품을 훔친 자요?”

“예.”

티노는 새삼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건가요?”

“예. 티노 군의 친구는 머리가 좋더군요.”

“아, 예. 그 녀석이 괴짜긴 하지만 머리는 좋……!”

말하다 말고 뻣뻣하게 굳은 티노를 보며 시문은 쿡쿡 웃었다. 그리곤 다시 작은 액자를 바라보았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가씨의 사진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실린을 위한 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

“어스듐이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극대화시켜서 보다 좋은 약을 만들고 싶었죠. 실제로 약효도 월등히 좋아져서…….”

시문에게 들통 난 사실을 아르카에게 들키면 당할 백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석상이 되어 있었던 티노는 천천히 인간으로 돌아와(?) 시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객관적으로 타당한 이유나 증거는 없지만 시문이 아르카와의 일을 문제 삼지 않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덕에 그녀는 좀 더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제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제 욕심은 커져 갔죠.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황금의 어스듐입니다.”

치유력을 극대화시킨 어스듐의 씨드를 하나에 모아서 효력을 중첩시킨다. ……라는 이론이 나온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발로 걸어서 저택 밖에 나와 본 실린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였다. 진정한 의미로의 ‘황금의 어스듐’ 연구는 그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린의 몸은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버텨 주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스물을 넘기지 못할 거란 선고를 받은 실린은 효력이 월등히 좋아진 약 덕에 큰 고통 없이 5년하고도 8개월을 더 살았다. 그녀는 연장된 삶을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시문의 품에서 웃으며 떠났다. 그리고 그 순간, 시문에게 황금의 어스듐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어쩌면 저는 그녀를 위해 만든 황금의 어스듐을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는 게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디라면 듣는 순간 눈물을 펑펑 쏟고도 남을 애틋한 이야기를 시문은 매우 담백하게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기왕 이리 된 거 좋은 데 쓰이면 좋은 거죠.”

“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정신없이 몰아쳐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황금의 어스듐은 정말로 달리 사용방법이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작정하고 그렇게 만든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시문은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삐딱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한 번 압축한 어스듐은 그 상태로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압축 작업을 거치면서 일종의 방어막 같은 것이 생긴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용법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그저 황금색 돌멩이일 뿐이죠.”

티노의 얼굴이 순간 가라앉았다. 아르카가 연구까지 때려치우고 여기에 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금의 어스듐이 꼭 필요한 이유가. 그런데 사용법에 대해 알 턱이 없으니 가져가도 소용없는 거 아닌가? 티노가 사용법을 배워서 듀오 루나에 있는 아르카의 작업실에 간다고 해도 그가 지금 거기 있을지…….

“괜찮습니다.”

티노의 속내를 읽은 듯 시문은 선뜻 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사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어떻게요?”

시문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도 없었다. 티노가 레나센시아에 오기 직전까지 듀오 루나에 있던 아르카가 무슨 수로? 시문의 연구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던 테이슨도 사용법은커녕 그런 것이 따로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 검은 남자가…….

티노는 문득 오른팔의 붕대 위에 왼손을 얹었다. 그 흉터…….

“제 기계가 도둑 회로로 운행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겠죠? 수도의 씨드가 종종 끊기는 이유도.”

“……네.”

티노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라 실랑이 할 것 없이 바로 시인했다. 시문은 의자걸이에 팔꿈치를 댄 뒤 손에 턱을 괴었다.

“그럼 수도 전체의 씨드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것도 알겠군요.”

“네. 하지만 압축 작업을 하는 데 그만한 씨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더욱 의아해했었다. 거기다 비상용 어스듐 라인까지 망가뜨린 이유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속을 훤히 안다는 얼굴로 시문은 노골적으로 재미있어하며 물었다.

“그럼 제가 왜 수도 전역의 씨드를 끊었을 것 같습니까? 건드리면 위험할 게 뻔한 왕성까지 건드려 가면서.”

“…….”

“티노 군, 당신이 제게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예? 전…….”

그런 적이 없다고, 그때는 당신이 도둑 회로의 주인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반박하려던 티노는 순간 오른팔을 움켜쥐고 입을 다물었다.

시문은 웃으며 말했다.

“비상 어스듐 라인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건 제가 아닙니다. 폭파 시간에 맞춰서 씨드를 끊어 주긴 했지만.”

“그럼 폭탄을 설치한 건…….”

분명 테이슨을 깔끔하게 죽일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유인해서 세 줄기 황금빛에 다치게 만들었던 검은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낯익은 초록색 눈동자와 오른팔에 새겨져 있는 두 개의 흉터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머리로는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가슴은 벌써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 티노 군.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시문은 티노가 실컷 고민하도록 내버려 뒀다가 허망할 정도로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 주었다.

“물론 ‘지금’의 티노 군은 아니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어떻게…….”

자신의 본능과 시문의 말을 의심하지 않기에 티노는 더욱 혼란했다. 그런 그에게 시문은 성숙한 어른의 포용력 넓은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여상스럽게 말해 주었다.

“드물지만 그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때때로 있습니다. 과거, 또는 미래와 만나는 사람들이.”

“시문 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티노는 자신의 입에서 질문이 나온 순간 바로 답을 떠올렸다.

“시문 님도 만난 거군요?! 이번만이 아니라 예전에도.”

시문은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언젠간 티노 군도 모두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 티노 군은 현재에만 충실하면 됩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시문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얼굴로 답했다.

“그야 미래의 티노 군이 이곳에 왔으니까요.”

“아……!”

듣고 보니 그랬다. 진작 떠올리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다.

어떻게 과거로 올 수 있는지, 특정한 방법이 있는 건지,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가지고 간 황금의 어스듐은 어디에 쓰려는 건지, 어째서 그 과정에 아르카까지 끼어들었는지…….

마구 치솟던 의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시문의 말대로다. 현재에 충실하면 언젠가는 모두 자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편이 단순히 말로 들어서 아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티노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물었다.

“어쨌거나, 저 꽤 멋지게 크지 않았어요?”

“티노!”

환자의 특권으로 아침 청소를 빼먹고 느지막이 아침을 먹으러 나온 티노를 라디가 열성적으로 맞아 주었다. 죽은 줄 알았던 형제를 맞는 수준이었다.

“아침은 방으로 갖다 주려고 했는데! 벌써 움직여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거의 나았으니까.”

“난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라디는 울먹이기 시작하더니만 갑자기 티노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하하……. 걱정해 줘서 고마워.”

티노는 어색하게 웃으며 라디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오오! 뜨거운데? 시문 님에서 티노로 갈아타는 거냐?”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천박한 말을 하며 끼어들자 라디가 고개를 홱 돌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아마 공구 사건 이후로 웨이를 선배 대접하지 않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웨이 선배는 걱정도 안 되세요?! 티노는 죽을 뻔했다고요!”

“흥! 죽긴 왜 죽어? 시문 님까지 업고 올라올 정도로 쌩쌩했구만. 의식을 잃은 것도 진짜인지 아닌지 알 게 뭐야? 괜히 말이 궁하니까 그런 척한 건지도 모르지.”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감 하나는 좋다. 단지 감일 뿐이라서 근거가 없고, 거기다 그걸 그럴싸하게 포장할 말재주까지 없어서 빛을 못 볼 뿐이지.

“웨이 선배! 티노가 제 공구를 고쳐 줬다고 시비 거시는 거죠?!”

“누, 누, 누가 그렇대?!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런 거였구나.

웨이는 잔뜩 흥분해서 씩씩거리다가 홱 나가 버렸다. 그 와중에도 머핀을 양손 가득히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라디는 흥, 하고 고개를 바로하며 티노를 끌어안고 있던 팔도 풀었다. 웨이의 말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생환(?)한 동료에 대한 환영이었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건 분명했다. 그제야 티노도 어색함을 떨치고 평소처럼 부엌으로 향하며 물었다.

“시험은 잘 봤어?”

“응. 한 번 포기했던 거라 그런지 전혀 떨리지 않더라고.”

“다행이네. 결과 발표는 언제야?”

“한 달 뒤.”

라디는 꼬박꼬박 대답하면서 티노를 붙잡았다.

“그 팔로 뭘 하려고? 앉아 있어.”

“크게 무리만 안 하면 움직일 만해.”

“안 돼!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무조건 조심해야 해!”

그러면서 티노의 등을 식당 쪽으로 밀었다.

“어차피 다 만들었으니까 앉아 있기나 해.”

“괜찮은데……. 신경 써 줘서 고마워.”

티노는 적당히 빼면서 식탁 앞에 앉았다. 청소도 빼먹은 마당에 식사 준비를 빼먹는 게 대수겠는가?

다 만들었다는 소리는 빈말이 아니었는지 라디는 곧바로 커다란 쟁반에 요리가 담긴 접시들을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다. 티노는 라디가 식탁 위에 올려놓는 접시들을 끌어다가 먹기 편하게 배치하면서 물었다. 새벽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잘한 것들이 이제야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문 님의 작업실은 어떻게 됐어?”

“그렇지 않아도 수사관들이 와서 수색했는데 죄다 타 버려서 단서를 하나도 못 건졌대. 폭탄만으로는 그렇게 다 타 버릴 수가 없다더라? 작정하고 모두 태워 버리려고 구석구석에 기름을 뿌렸다는 거야! 정말이지, 그 정도로 악질인 줄은 몰랐어!”

“테이슨……은 아직 안 잡혔고?”

입에 붙어 버린 탓에 저도 모르게 ‘경’을 붙일 뻔했다.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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