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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7화

두 사람은 제법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 망할 괴물들로부터 왕국을 수호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내게 안부도 좀 전해 주게나. 이 무심한 사람 같으니.”

“죄송합니다. 제가 그간 소홀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자네가 그렇게 진지하게 사과하면 내 입장이 뭐가 되겠나? 농담이었네, 농담. 허허. 자네 앞에선 농도 못 하겠군그래.”

영주는 꽤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카일처럼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사람을 상대로 저렇게 물 흐르듯 대화를 나누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장서는 영주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도시의 번화가가 트였다.

비록 소도시라고는 해도, 며칠 내내 날벌레가 득실거리는 야외에서 지내왔던 병사들의 얼굴은 자연히 상기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머물다 가도 좋네.”

영주는 보병대에게 제 별관을 통째로 내어주는 배포를 보였다.

영주의 별관은 연병장으로 이용되기도 할 만큼 넓어서, 클로버 보병대 전원이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카일은 병사들에게 이틀간의 자유를 주었다.

짧다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속히 군단에 합류해야 하는 입장을 감안하면 그도 병사들에게 최대한 배려해 준 셈이다.

“캬!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자유냐!”

모처럼 맛보는 해방감에 병사들은 잔뜩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재희가 맡은 16조 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선량한 린데일 아가씨들한테 추파 던지지 말고 조용히 다녀와. 도시에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부대장님의 명령도 있었으니까.”

재희는 조원들을 모아놓고는 짧게 주의를 시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병사들은 막사가 떠나가라 대꾸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은 번화가에 가 있었다.

길게 붙잡아 놓고 설교를 늘어놓아 봐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게 분명하다.

“브록.”

시끌벅적 떠드는 조원들을 뒤로 한 채, 재희는 나지막이 브록을 불렀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은 네가 조장이야. 그러니 괜히 조원들 선동하지 말고 문제 일으키지 못하게 잘 단속하도록 해.”

“어? 조장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나중에. 오늘은 따로 들를 곳이 있거든.”

어젯밤, 협곡에 남은 하울링들을 처리하기 위해 주변을 수색하던 도중, 얻은 수확이 있었다.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폐광이었다.

원래는 철광산이었던 듯했는데, 광맥이 고갈되었는지 운영이 중지된 모양이었다.

지구의 중세와 비슷한 이 시대에서 가치가 높은 광석은 구리, 은, 금, 철 정도일 것이다.

수많은 행성들을 거쳐 오면서, 그는 이 세상에 가치가 높은 광석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희귀한 광석들에 비하면 금이니, 은이니 하는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폐광에 남은 광맥은 존재하지 않았다.

씨가 마른 철 부스러기와 부서진 바위의 잔해들만이 난잡하게 널려있을 뿐이었지만, 재희에겐 노다지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

그는 시간이 허락할 때 이 광석들을 한바탕 짊어지고 갈 작정이었다. 훌륭한 재료들이 고스란히 묻혀 있음을 알고도 그냥 지나치긴 아쉬웠다.

그렇잖아도 슬슬 새로운 무기가 필요한 시기였다.

러너와의 전투에서도 고작 일격에 검이 박살 날 정도였으니까.

‘이참에 방어구까지 싹 다 갈아엎어야겠군.’

그런 각오와는 달리, 폐광을 방문한 재희의 짐은 지나치게 간소해 보였다.

그의 수중엔 달랑 곡괭이 하나뿐이었으니까. 끝없이 이어진 철로를 따라, 그는 본격적으로 폐광 안으로 들어섰다.

팅.

그가 말없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주먹 크기의 불꽃이 생성되었다.

어두운 곳에서 시야를 확보해 주는 기본적인 라이트 마법이다.

“어디 보자.”

그는 디텍트 아이를 발동시켰다.

정보노출범위를 폐광 내의 광석으로 제한하자, 알토란 같은 핵심 정보들만이 각막 위로 떠올랐다.

“땡잡았다.”

그 정보들을 유심히 읽어 내려가던 그의 입가에 곡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구불구불한 철로를 따라가던 그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철로가 계속해서 이어진 오른쪽과는 달리, 왼쪽은 사람들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길이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재희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길은 거기서 끝이었다.

전방이 바위들로 가로막혀 있어 이대로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는 정확히 뒤로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뒷걸음질치는 그의 머릿속엔 5서클 익스플로전과 3서클 쉴드 마법의 수식이 동시에 그려지고 있었다.

재희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었다.

그의 검지는 목표지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그는 전신에 쉴드를 두름과 동시에, 전방을 향해 익스플로전을 시전했다.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부서진 바위의 잔재들이 사방으로 마구 튀었다. 개중에서는 재희를 향해 날아오는 잔해들도 있었으나, 반투명한 막 형태의 쉴드가 피해를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다.

“휘유.”

꽉 막혀 있던 전방이 시원하게 뚫렸다.

‘마나가 벌써 동이 났군.’

보잘 것 없는 마나로 3서클과 5서클 마법을 동시에 운용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재희는 혀를 차며 마나 호흡법을 실행했다.

그 과정을 몇 번인가 반복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스킬의 랭크가 올랐다.

[마나 호흡법, 랭크 업!]

[수련도 : 0% (E랭크)]

[호흡을 통해, 주변의 마나를 체내에 축적 가능. 축적 가능한 마나 최대치 120%]

[보너스 : 마력 +10, 마법 저항 +10%]

[매직 마스터리, 랭크 업!]

[수련도 : 0% (E랭크)]

[주문력 15% 추가, 주문 속도 15% 감소.]

[보너스 : 마력 +10, 마법 저항 +10%]

마나 호흡법과 매직 마스터리의 랭크가 상승하면서, 스킬의 효과가 증대되고 보너스 스텟이 증가했다.

그렇게 인적이 닿지 않던 미지의 동굴을 개척하길 얼마간.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재희는 그제야 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이쯤이로군.”

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벽의 왼편을 향해 곡괭이질을 개시했다.

깡.

곡괭이를 쥔 손에서부터 무게를 싣는 허리, 그리고 상체를 지탱하는 두 다리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완벽한 동작은 가차 없이 벽을 무너뜨렸다.

[채광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채광속도 10% 증가. 낮은 확률로 희귀한 광석 획득 가능.]

[보너스 : 힘 +5 체력 +5]

깡깡.

한참 동안 곡괭이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니그룸 광석 획득!]

[니그룸 광석 획득!]

[희귀한 니그룸 광석 획득!]…….

이따금 ‘희귀한’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광석이 채굴되기도 했다.

‘낮은 확률로 희귀한 광석 획득’이라는 채광 스킬의 옵션이 발동된 거다.

희귀한 광석은 광석을 재료로 물건을 제조할 때, 더 질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확률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

그는 체력이 바닥을 보인다 싶으면 중간중간 명상을 취하면서 피로를 빠르게 회복했다.

“휴우.”

제 앞으로 돌무덤이 허리께까지 쌓일 무렵에서야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만하면 충분하겠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재희는 생각했다.

‘이런 곳에 니그룸 광맥이 숨어 있을 줄이야.’

그가 캐낸 것들은 광석이라고 보기 어려운 형태의 것들이었다.

‘이래서 니그룸을 발견하기 힘든 거지.’

얼핏 봐서는 그저 회백색이 감도는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였다.

그는 한데 그러모은 돌덩이들 사이에 불을 붙였다.

불을 붙일 장작도 불씨도 없었지만, 마법으로 불을 일으키는 건 간단했다. 마나만 있으면 되니까.

그는 한 점에 불꽃을 집중시켰다.

화악!

붉은색으로 달아올랐던 불꽃의 색상이 점차 옅어지더니, 이내 백색에 가까운 고열을 내뿜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백색으로 물들자, 그때까지 멀쩡했던 돌덩이들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1000도 이상의 고열에 장기간 노출시켜야, 비로소 니그룸 광석은 본모습을 드러낸다.

녹아내린 광석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정색으로 변했다.

[주조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주조 속도 10% 증가. 주물 제조 시, 낮은 확률로 희귀한 주물 획득 가능.]

[보너스 : 감각 +10]

그는 채굴한 광석들을 모두 녹여 주괴 형태로 만들어 냈다.

니그룸 광석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불순물들이 모두 사라진, 순도 높은 니그룸 주괴들이 탄생해 가고 있었다.

[니그룸 주괴 획득!]

[희귀한 니그룸 주괴 획득!]

[희귀한 니그룸 주괴 획득!]

니그룸은 어딜 가나 희소성이 높은 광석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흑색의 니그룸은 강철보다 강하지만 가볍다.

‘예전엔 강철에 워낙 귀해서 손톱만 한 니그룸을 합금하는 걸로 만족했었는데.’

손톱 크기의 니그룸만 들어가도 무기의 질은 대폭 향상된다.

억만금이 지녔어도 없어서 못사는 물건이 바로 니그룸으로 제작한 무기다.

‘그런데 니그룸으로만 구성된 무기를 제작할 날이 올 줄이야.’

이 재료로 장비를 제작하면 어떤 무시무시한 물건이 탄생하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나절을 꼬박 투자한 결과, 모두 합쳐 33개의 니그룸 주괴가 탄생했다.

그중 희귀한 니그룸 주괴는 무려 11개.

그 과정에서 채광과 주조 스킬은 E랭크로 상승했다. 이런 형편없는 랭크로 이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이게 다 경험의 차이라는 거지.’

랭크가 지배하는 스킬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경험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고 랭크일 때 니그룸 광맥을 캤다면 모조리 희귀한 광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일단은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리 니그룸 광맥이 드물다 해도 한 번 발견된 이상, 분명 행성 어딘가에 또 다른 광맥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에게 선수를 뺏길 우려도 없을 테고.’

이곳 사람들은 아직 니그룸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니그룸의 특성과 활용 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재희와 경쟁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했다.

‘좋아.’

니그룸 주괴는 충분하다.

무기는 물론이고, 부위 별로 방어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인벤토리.’

속으로 단어를 읊조리자, 그의 눈앞에 무언가가 아른거리기 시작하더니 곧 분명한 형태를 띠었다.

동일한 크기의 큐브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것들의 개수는 모두 합쳐 100개.

드럼퀸에 있을 때만 해도 인벤토리에는 유용한 아이템과 재료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지만, 새로운 행성으로 넘어온 지금은 완전한 공백 상태였다.

‘이것들을 언제 다시 채운다.’

씁쓸한 얼굴로 텅 빈 인벤토리를 잠시 바라보던 재희는 이내 니그룸 주괴들을 집어 들었다.

그는 주괴들을 하나둘 인벤토리에 옮겨 담았다.

그의 준비물이 지나치게 간소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큼지막했던 주괴들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자, 주괴는 큐브 안으로 쏙 들어갔다.

주괴는 작고 단순한 아이콘이 되어 큐브를 차지하고 앉았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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