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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22화

요 며칠간 무기를 굉장히 혹사시켰던 모양이다.

‘마침 좋은 기회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재희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기로 했다.

“괜찮다면 내가 손봐줘도 될까?”

“정말이십니까?”

렌은 저도 모르게 화색을 띠었다.

조금 전에 재희가 선보였던 대장기술을 보지 못했더라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거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믿을 수 없는 자에게 선뜻 맡길 순 없을 테니까.

칼잡이는 함부로 남에게 무기를 넘겨주지 않는다.

그것은 이쪽 세계의 사람들에게 있어,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그가 보기에도 16조의 새로운 조장은 비범한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렌에게 있어, 그것은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어디보자.”

재희는 천둥 쐐기를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마침 쓰고 남은 미량의 니그룸이 남아 있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뭔가를 새로 만들기엔 너무 적어서 그냥 인벤토리에 보관해두려던 참이었다.

창날 전체를 새로 만들어 낼 만큼 양이 충분하지 못한 관계로 합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고작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니그룸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무기의 질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화악!

재희는 창날을 떼어내 손에 일으킨 불꽃으로 천천히 녹여냈다.

‘주문조차 외우지 않는군.’

렌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비록 간단한 불꽃 소환 마법일지라도 저렇게 주문 한 마디 없이 자유자재로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 광석은 대체 뭡니까?”

렌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검은 색을 띠는 광석이라고는 석탄 정도 밖에 알지 못했던 그로선 재희가 보유한 신비한 광석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아. 이거?”

렌에겐 미안하지만, 아직은 이 광석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아티팩트 아이템으로 온몸을 도배한 뒤라면 모를까.

“일단은 귀한 광석이라고 해두지.”

재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녹여낸 창날과 액체화 된 니그룸 한 토막을 섞는다.

회백색의 철과 검은 니그룸이 융합되면서 검회색의 기묘한 색상이 완성되었다. 완전히 어둡지도, 그렇다고 평범한 쇠붙이 무기 같지도 않은 오묘한 빛깔이다.

깡깡.

검과는 달리, 창은 쇠붙이의 면적이 훨씬 적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은 그리 오래 소모되지 않았다.

“자.”

단조 작업을 끝낸 재희가 개조된 천둥 쐐기를 렌에게 돌려주었다.

[천둥 쐐기 (네임드 희귀)]

[내구도 : 2400 / 2400]

[공격력 : 520]

[힘 +12, 민첩 +13]

[공격 적중 시, 낮은 확률로 적 마비. 전격 속성 추가 피해 15%]

“원래 있던 무기 고유의 장점을 좀 더 개량시켰어. 낯선 느낌은 없을 거야.”

새로운 옵션을 따로 추가하진 않았다. 다만 원래의 성능을 개발시켜 주었을 뿐.

그것만으로도 천둥 쐐기는 고급에서 희귀 단계로 대폭 진화했다.

전혀 다른 옵션을 넣어버리면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한참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무기를 다뤄왔던 자로서, 재희도 그 미묘한 차이를 너무나도 잘 안다.

무작정 좋은 무기를 찾는 것보단 조금 수준이 낮더라도 손에 익는 무기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검을 내지를 때의 최대간격.

손끝으로 전해져오는 검의 무게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때론 결정적인 순간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직접 전장에서 싸울 일이 없는 평범한 대장장이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센스다.

“어?”

천둥 쐐기를 받아든 렌은 내심 놀랐다.

본래의 쇠붙이에 새로운 광석을 추가했는데, 오히려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느낌이 좋다.’

천둥 쐐기를 몇 차례 빙글빙글 돌려본 렌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기존의 천둥 쐐기보다 한 단계 발전된 무기로 진보되었다는 점이다.

“감사합니다. 아. 당연히 값을 치러야…….”

“돈은 무슨. 넣어둬.”

재희는 금화를 꺼내는 렌을 제지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입니까?”

렌의 표정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그럼 그렇지.’

돈을 마다하는 사람은 드물다.

‘돈을 거절할 정도라면 뭔지는 몰라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길 바라는 것일 테지.’

뒤늦게 아무런 의심 없이 재희의 호의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빚을 진 이상, 마냥 거절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렌은 어젯밤 주점에서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던 재희의 눈빛을 떠올렸다.

‘설마…… 내 정체를 눈치 챈 건 아니겠지?’

렌은 조마조마한마음으로 재희의 말을 기다렸다.

지금껏 잘 숨겨왔던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아닐까, 내심 두려워졌다.

렌은 반사적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차 하면 달아나기라도 할 태세였다.

클로버 보병대에서 지내왔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지만, 정체가 발각된 이상 떠날 수밖에 없다.

“친하게 지내자. 그게 조건이야.”

재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그럴 줄…… 예?”

렌은 복잡 미묘한 얼굴이었다.

“농담은 그만 두시고 진짜 조건이 뭔지 알려 주십시오. 제 능력 선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들어드릴 테니까요.”

“왜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렌의 반응에, 재희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난 16조의 새로운 조장이야. 내 휘하의 조원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잖아.”

“……정말입니까?”

‘경계심이 필요 이상으로 많군. 역시 숨기는 게 많아서 그런가.’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자신을 주시하는 렌을 보며 재희는 생각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풀진 않아. 난 단지 조원인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이고.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좋게 대해 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습니까?”

재희의 진실 된 눈동자에, 렌도 그제야 경계심을 거두는 기색이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렌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적어도 그쪽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는 일단은 의심을 거두기로 했다. 지금껏 수년 동안 감쪽같이 숨어 지냈다.

관직을 올려주겠다던 카일의 제안을 몇 번이고 거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지위가 올라가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게 될 테니까.

지금 렌에게 있어, 타인들의 관심은 치명적인 독극물과 다름없었다.

일반 병사의 봉급으로도 홀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의 솜씨를 인정한 카일이 다른 병사들보다 수당을 더 챙겨주곤 했기에 오히려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자들도 이미 틀림없이 내가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터.’

렌의 얼굴이 굳었다.

분명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을 찾아온다? 다소 뜬금없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진즉에 목숨을 끊으러 왔겠지. 이렇게 눈에 띄게 접근할 리는 없다.’

재희를 보며 렌은 계산을 마쳤다.

“이해해. 타인이 이유 없이 접근하는 걸 경계할 수도 있겠지.”

재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재희가 렌에게 호의를 베푼 건 정말 그에게 관심이 있어서다. 무려 A등급이다.

‘이런 식으로 호감을 얻어둬서 전혀 나쁠 건 없다.’

렌은 브록과 함께, 동료로 만들어야할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다.

‘뭔가 비밀스러운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지금 굳이 그걸 캐물을 필요는 없겠지.’

캐묻는다고 해서 알려줄 것 같지도 않고.

그렇잖아도 예민한 고양이 같은 이 사내의 경계심을 자극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자. 그럼 용무도 마쳤고. 난 이쯤에서 별관으로 돌아갈 생각인데. 넌?”

“저도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머쓱해진 렌이 짐을 정리하는 재희를 거들어주며 대꾸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제이라는 새로운 조장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이보시오.”

공방을 빠져나오는 재희를 발견한 무어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엔 당신이 단순히 고집 센 젊은이인줄로만 알았소. 하지만 나중엔 혼자서 장비를 제작하겠다고 했던 이유를 충분히 알겠더군. 솔직히 감탄했소.”

“과찬이십니다.”

사실 감탄이라는 말 정도로는 부족했다. 외관만 봐선 믿기 어렵지만, 단언컨대 그는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혹시 강철망치 대장간에서 나와 함께 일할 생각은 없소? 최고의 대우를 해 주겠다고 약조하지.”

무어의 파격적인 제안에 도제들은 내심 놀랐다.

재희의 신묘한 손재주를 보고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이런 제안을 받을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그들에겐 무어 만큼의 안목은 없었으니까. 최고는 최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재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미 군에 몸담은 처지라서요.”

“그런가. 거절당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런 말을 꺼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말이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

최고의 손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군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거절하리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제안 하나 없이 이런 인재를 그냥 보냈다면 오래도록 후회를 떨쳐 내지 못했으리라.

“참. 대여비를 지불한다는 걸 깜빡했군요.”

재희가 그에게 금화를 내밀었으나 무어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값은 충분히 치르고도 남았소.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으니까. 당신이 아니었다면 평생토록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겠지. 고맙소.”

무어가 악수를 청했다.

재희의 대장술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오르지 못했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으니까.

꽉 막혀 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무어는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과거의 열정이 다시금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중에 꼭 우리 대장간을 다시 찾아주시오. 공방은 얼마든지 제공해 드리겠소.”

“네. 기회가 닿는다면.”

재희는 무어의 배웅을 받으며 강철망치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참.”

재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던 무어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저 젊은 청년이 검을 제작하는 과정의 장면 하나하나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혹시라도 그 장면을 잊어버릴 세라, 그는 서둘러 공방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했다.

린데일에서 이틀을 보낸 클로버 보병대는 타바린을 향해 계속해서 북진했다.

린데일을 떠난 뒤로는 좀처럼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왕국이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전란의 시대가 지속되어 왔었으니까.

햇수로만 따지면 무려 12년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전쟁터 근처에서 둥지를 틀고 살 사람은 없을 거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몇몇 크고 작은 부락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지금은 전쟁 통에 죽거나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달아나 버린 지 오래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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