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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 이대로 좋은가

한국 게임산업이 수출산업으로 각광받으며 매년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부분이 바로 확률형아이템 관련 논란일 것이다. 국산 타이틀 중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게임의 대부분이 확률형아이템 위주의 과금 모델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 업체들의 과도한 확률형아이템 채택은 과소비, 과몰입 등과 같은 여러 부작용을 낳았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업계에서는 자율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자율규제 도입 수년이 흐른 지금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창간 기획]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 이대로 좋은가
◆밸브 '도타2'가 자율규제 미준수 타이틀?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6월22일 배포한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 19차 공표(사진)'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31일 기준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물은 총 19개다. 이 중 111퍼센트의 '랜덤 다이스: PvP디펜스'를 제외한 18개가 해외 업체 타이틀로 국내 업체들은 전반적으로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를 잘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준수 타이틀 목록을 살펴보면 의아한 부분이 적지 않다. '도타2', '브롤스타즈', '에이펙스 레전드' 등 AOS와 FPS 장르 게임들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 해당 게임들은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확률형아이템 판매가 없거나 드문 게임들로 캐릭터나 장비 뽑기, 강화 등의 시스템에 확률이 적용되는 RPG에 비하면 확률 스트레스가 사실상 없다시피 한 게임들이다.

반면 최근에도 과도한 과금유도 확률형 아이템 도입으로 이용자들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던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M'이나, 낮은 확률로 획득 가능한 고등급 선수카드의 밸런스 파괴 문제로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 관계자가 나서 사과까지 한 넥슨의 '피파온라인4'는 자율규제 미준수 타이틀 목록에 없다.

확률형아이템과 관련된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임들이 자율규제 미준수 타이틀 목록에 대거 들어간 반면, 이용자들의 확률 스트레스가 상당한 게임들은 자율규제 미준수 타이틀 목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확률 공개가 자율규제의 전부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업계 주도로 시행되고 있는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에서 '규제'라고 할 만한 것이 확률 공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확률을 공개하기만 하면 적용된 확률의 높고 낮음 여부와 상관 없이 자율규제를 준수하게 된다.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해당 확률형아이템이 게임 진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지, 적용된 확률이 높거나 낮은지, 판매되는 아이템의 가격 여부와 관계 없이 미준수 게임물이 된다.

때문에 게임 진행과 아무 상관 없는 치장 아이템 상자를 비싸지도 않은 가격(2.49 달러, 한화 약 2900 원)에 판매하면서 업데이트 시마다 지속적으로 변하는 다양한 내용물에 대한 개별 확률을 주기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타2'는 확률형아이템 자율규제 미준수 타이틀 목록에 올라 마치 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확률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반면, 백분의일, 천분의일, 만분의일보다 낮은 확률이 적용된 다수의 확률형아이템이나 시스템이 수시로 업데이트돼, 게임 진행을 위해 이용자들이 적지 않은 과금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 연출되고 있는 게임들은 업체들이 확률을 공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율규제를 '준수'하고 있는 '착한 업체'로 인증받고 있다.

◆확률 스트레스 해소는 확률 공개로 해결되지 않는다

확률형아이템이 이용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확률 공개 여부보다는 적용된 확률의 높고 낮음에 있다. 확률을 따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높은 확률이 적용돼 2-3번의 시도만으로 누구나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면 확률 공개 요구조차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뽑기를 해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고, 아무리 시도해도 강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용자들은 '도대체 확률이 몇 프로길래 이렇게 안 뜨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분노에 찬 게이머들에게 국내 게임사들은 단순히 확률만을 공지하고 '자율규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 셈인데 확률 공개만으로는 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어렵다. 이는 최근 확률형아이템과 관련된 문제로 최근 홍역을 앓았던 '리니지2M'과 '피파온라인4' 모두 자율규제 준수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대체 확률이 몇 프로냐'는 분노에 찬 이용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정말 그 확률이 궁금하다는 의미만 담긴 것은 아닐 것이다. 과도하게 낮게 책정된 확률을 좀 더 합리적으로 조정해달라는 요구가 강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극히 낮은 확률의 뽑기 아이템이나 강화 시스템에 대해 실제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인 확률표를 공개하고 "자율규제를 준수하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자율규제 '반 걸음'에 멈춘 사이 정부 규제 나올 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황성기 의장은 지난해 10월 한국게임기자클럽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국내 자율규제가)반 걸음 정도 앞으로 나아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는데 당시 상황과, 아니 자율규제 초기 상황과 현재 상황이 달라진 점이 없다. 업체들이 공표한 확률이 실제 적용되는지를 검증할 장치가 마련되지도 않았고, 과도하게 낮게 책정된 확률형아이템 도입을 지양하거나, 보다 높은 확률 적용을 권장하는 방향의 자율규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는 시작부터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확률을 공개한다고 해서 그 게임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닌데 업계에서는 카지노 잭팟 확률보다 낮은 확률이 적용된 게임에도 버젓이 '자율규제 준수' 타이틀을 붙여 마치 문제 없는 타이틀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자율규제가 '반 걸음'에 멈춰 있는 사이 정부 규제가 나오게 생겼다. 정부는 확률형아이템의 확률정보 등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확률정보 표기 의무가 명문화될 경우 표기된 확률의 검증, 확률에 따른 등급 판정, 적용 가능한 확률 하한선 책정 등 추가 규제가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자율규제 강화 없이는 정부 규제 막을 명분 없다

업계는 확률형아이템과 관련해서는 자율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게임물의 확률형아이템 관련 문제를 감안하면 정부가 당장 규제에 나선다고 해도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업계의 바람처럼 정부 규제 없이 자율규제를 이어가려면 확률 공개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행 자율규제로는 부족하다.

자율규제를 강화하고 이를 업계에서 적극적으로 준수해야 업계에서도 정부 규제에 반대할 명분이 설 수 있을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적용되지 않았거나, 게임에 적용된 최저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임에 인증마크를 부여하거나 ▲확률형아이템 획득이나 확률형 시스템 성공시 예상되는 지출 금액 표기 ▲공개된 확률의 정상적인 적용 여부 검증 ▲확률 표기 오류 발생 시 미준수 목록 등재 및 관계 기관 고발 등 자율규제 강화를 위한 보다 강도 높은 자율규제안 마련이 필요하다.

◆확률형아이템 의존도 줄여야 장기적인 경쟁력 갖출 수 있어

장기적으로 바라보면 국내 게임업계는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게임물에 적용된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확률형아이템을 도박과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확률형아이템이 적용된 게임을 미성년자에게 판매하는 일이 금지된 지역도 있다.

해외 규제가 확대된다면 확률형아이템 위주의 과금모델이 적용된 국산게임의 수출길이 막힐 수 있다. 한국 업체들은 국내시장의 작은 파이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더욱이 차세대 콘솔이나 스트리밍 게임, VR/AR게임 등 차세대 플랫폼이 확산될 경우 확률형아이템 적용 게임의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해당 플랫폼은 북미나 유럽, 일본 개발사들의 AAA급 타이틀들의 경쟁장이 될 것이 유력한데, 그 사이에서 한국에서 만든 양산형 MMORPG 라인업이 인기를 얻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한국 게임업계도 확률형아이템이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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