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엔투스에게 창단 3년만에 우승컵을 안긴 조병세의 우승 이후 생활을 들었다. 화창한 어느 봄날 CJ 숙소에서 꽃과 함께.
◆백지 상태
조병세는 우승 이후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프로리그가 단체전의 성격을 갖고 있었고 CJ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우승했기 때문에 사령탑인 조규남 감독에게 인터뷰가 집중됐다. 또 변변한 이력도 갖고 있지 않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
조병세는 데일리e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2주 정도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는 “19년 인생 가운데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며 기억을 되짚었다.
“4세트 러시아워3에 출전하기로 내정되어 있었어요. 승자연전방식이라 제게 차례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고 건너뛸 수도 있었죠. 그래서 4세트부터 7세트까지 꼼꼼히 연습했습니다. 만약 0대3에서 바통이 넘어오지만은 않길 바라면서요.”
CJ는 결승전에서 화승 이제동을 막지 못해 애를 먹었다. 선봉으로 나선 저그 신예 김정우가 무너졌고 테란 고참 변형태와 저그의 대명사 마재윤마저 무너졌다. 4세트에 내정됐던 조병세에게 기회가 오긴 했지만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제동을 넘지 못한다면 올킬의 수모를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눈 앞이 하얘졌어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죠. 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길 바랐지만 정말 와버렸어요. 잃을 것 없다는 선배들의 조언만 들어왔어요. 무대에 앉았고 경기를 시작했죠. 정찰 위치를 잘못 찾아서 오래 걸렸는데 이제동 선수의 저글링이 뛰는 거에요. 5드론을 직감했죠. 그 뒤에는 죽어라 막기만 하면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뜻대로 됐죠.”
이제동을 제압하면 올킬 패를 떨쳐낸 뒤에도 조병세는 여전히 멍했다. 경기석을 나오자마자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변형태와 마재윤 등 선배들이 계속 주문을 했고 신기하게도 그 소리만 들렸다고.
"형태 형이 해당 세트에서 상대가 무엇을 할 지 같이 고민해줬어요. 그리고 선택의 폭을 좁혀줬죠. 무얼 해야 하고 이 때는 어떤 변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조언했어요. 재윤이형은 마인드 코치를 해주더라고요. 우리가 따라가는 입장이고 화승 쪽이 더 조바심을 낼 거라고요. 두 선배의 말에 힘을 얻었어요.”
5, 6세트에서 화승 노영훈과 임원기를 연파한 뒤 그는 몸에서 떨림이 사라졌다고 했다. CJ의 마지막 주자로 이제동을 대할 때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됐지만 무대에 적응한 덕인지 구성훈과의 7세트에서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머리속은 여전히 비어 있었어요. 단지 승부만을 생각했고 이기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한 것 같아요. 마지막 세트에서 질 뻔한 상황 덕에 집중력이 생겼고 빈틈이 어디인가를 찾기 위해 모든 신경을 모았어요. 그 덕에 이겼죠.”
경기하는 내내 백지 상태였다는 조병세는 우승 뒷풀이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을 때까지 우승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
다음날 아침 조병세는 덤덤히 PC를 켰다. 손이 가는 대로 스타크래프트 프로그램을 구동시키고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입력했다. 자주 가는 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단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보는 사람마다 우승 축하한다, 경기 정말 잘 봤다, 멋지더라, 기분은 어떠냐 등 스타처럼 대해줬다.
“그 때서야 깨달았어요. 어제 우승했고 내가 역올킬에 성공했구나. 그래서 이렇게 축하해주는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기사를 검색했죠. 제가 지금까지 성적을 못냈기 때문에 기사 사이트는 정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메인 화면에 제 얼굴이 나와 있고 선수들의 단체 사진이 걸려 있는 거에요. 어제의 감동이 다시 오더라고요.”
◆연예인 닮았다는 말 좋아
조병세가 올킬을 달성한 이후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한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톱 10에 들기도 하고 급상승 검색어에서 축구와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조병세가 ‘꽃보다 남자’에서 소이정 역을 맡은 김범이나 ‘온에어’에서 PD 역할을 맡은 박용하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저는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결승전이 끝나고 나서 김범이나 박용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욱 어색하더라고요.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3초간 소이정, 3초간 박용하’라고 하더라고요. 사진의 각도가 비슷하고 이목구비를 모두 가리니까 닮았다는 평이 나온 것 같아요. 잘 생긴 분들과 닮았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았어요.”
◆부담 백배
조병세는 인기와 함께 부담도 얻었다.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역올킬을 달성한 선수가 성적을 못내면 리그 자체가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J의 명예를 위해서도, 상대팀인 화승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최고의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위너스 리그 결승전이 끝난 뒤 곧바로 서바이버 토너먼트 예선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쉴 여유도 없었죠. 위너스 리그 준비할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올킬 선수가 예선에서 떨어졌다’, ‘결승전 올킬은 운이었다’, ‘결승전은 예선보다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기 싫었어요.”
조병세는 죽어라 준비한 덕에 올킬의 기쁨을 이어갈 수 있었다. 2일 열린 서바이버 토너먼트 예선25조 경기에서 최도식과 원종서, 홍진호를 차례로 꺾으며 예선을 통과했다.
“부담이 컸지만 일단 털어내고 나니 시원했어요. 본선과 프로리그에서 제 실력을 보여드리면 되잖아요. 한 고비는 넘겼지만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네요.”
◆이상적 현실주의자
위너스 리그 결승전 올킬을 통해 전에 없던 인기를 얻은 조병세는 자신을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세 글자로 답했다. 그의 답은 ‘듣보잡’이었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라는 뜻으로 팬들 사이에서 신인을 혹평할 때 붙는 수식어다.
“결승전 올킬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수확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이대로 무너진다면 기록 속에나 남는 이름이 되잖아요. 아직 프로게이머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병세는 개인리그 우승과 프로리그 우승을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이상이기도 하다.
진정한 이상은 뭐냐고 다시 물었더니 프로게이머 가운데 가장 돈을 많이 번 선수로 기록되고 싶다고 했다. 참 이상적인 이상이다.
“꿈과 이상은 크게 가지라고 하잖아요. 제가 이상을 이뤄가는 과정도 큰 걸음으로 갈 생각은 없어요. 현실은 한 단계씩 밟아 가려고요. 그 첫 걸음이 위너스 리그 결승전이었고 앞으로 작은 발검음을 옮기려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병세는 한 마디를 꼭 넣어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길을 열어준 선배들, 2군부터 함께 생활한 동료, 후배들과 함께 광안리 우승의 기쁨을 함께 맛보고 싶다고.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가려는 조병세의 동료 의식이 봄날 활짝 핀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