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7일
한국 대표 선발전이 한창이던 8월의 어느날.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WCG 사무실을 찾았다. 7층에 마련된 사무실은 기자의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매년 전 세계 70여개 국이 참가하는 e스포츠 사상 가장 큰 국제 대회를 유치하는 본부라고 보기에는 근무자가 많지 않았고 사무실도 크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것은 'D-77'이 라고 적힌 팻말이었다. 오는 11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되는 WCG 그랜드 파이널의 개최일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임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알려주는 표시다.
김형석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짜"라고 소개했다. 1년에 한 번 대회를 치르기 때문에 완벽하기 처리하기 위해서는 날짜에 맞는 일을 반드시 완료해야 한다고.
그는 "날짜를 바꾸는 당번을 따로 둘 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 자리라서 편했는데 금세 시간이 흘러 간다"며 WCG 그랜드 파이널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설명했다.
◆WCG 성공 비결 세 가지
WCG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를 개최해왔다. 이번 11월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대회가 9번째로, 매년 대회 규모와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 CPL이나 ESWC, CGS 등 WCG를 능가하는 국제 대회를 만들겠다며 시작된 후발 대회들이 문을 닫고 있지만 독야청청 WCG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WCG는 삼성전자를 홍보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비판도 받아왔지만 삼성전자가 꾸준히 지원하지 않았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겁니다. 외국에서 주최, 주관하는 대회들도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인해 메인 스폰서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다가 문을 닫았어요. 삼성전자의 WCG에 대한 애정은 대단합니다."
그는 또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고 했다. 1년의 1/3을 해외 관계자들과 만나는 데 사용하는 김 대표는 한국의 이미지가 IT 강국에서 점차 e스포츠 강국으로 퍼져 가고 있다고 했다.
"외국 관계자들이 한국과 같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초창기 정부 지원도 있었고 이후 게임 콘텐츠, e스포츠 콘텐츠로 운영되는 케이블 채널도 생겨났잖아요. 대기업들도 e스포츠 게임단을 운영하고 있고요. 한국형 모델이 e스포츠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입니다."
WCG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세 번째 요소는 노하우다. 김 대표는 일례로 심판 운영을 꼽았다. WCG는 심판의 비행기 삯을 따로 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해마다 대회가 열릴 때면 자비로 대회장까지 와서 운영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심판과 관련한 예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50명밖에 안되는 작은 회사인 WCG가 전세계 70개국을 총괄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의 전략적 파트너와 협업이 잘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WCG만 갖고 있는 노하우라 할 수 있죠."
◆중국이 따라온다
9회째를 맞는 WCG 그랜드 파이널의 개최지는 중국 청두다. 김 대표는 2008년 청두를 올해 대회 호스트 시티(개최도시)로 지정하면서 우려가 많았다고 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주요 도시가 아니어서 인프라가 될 지 고민했다고.
그렇지만 최근 중국을 드나들면서 잠재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2008년 쓰촨성에 지진이 나면서 청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어요. 보도를 접하고 나서 바로 달려갔지만 다행히도 개최도시는 피해를 받지 않았죠.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설물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거쳤고 대회 진행 중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김 대표는 최근 중국 정관계 인사를 만나다 특이한 정보를 얻었다. 중국이 e스포츠를 78번째 스포츠 종목으로 정했다는 것. 과거 99번째에서 78번째로 순위가 급상승한 것이다.
"중국이 78번째 스포츠 종목으로 정했다는 사실은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뜻입니다. 지원이나 육성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는 이야기죠. 우리가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면 안됩니다. 중국이 쫓아오고 있어요."
김 대표가 중국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점차 성장하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워크래프트3 스타 플레이어인 장재호를 성화 봉송 주자로 뽑은 일이나 최근 중국 대표 선발전에서 리샤오펑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만 여명이 현장을 찾은 일 등은 e스포츠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1년 내내 농번기
2006년 WCG의 대표를 맡은 김형석 대표는 1년에 한 번 대회를 치르기 때문에 농한기와 농번기가 분명한 직책이라 생각했다. 매년 10월이나 11월 WCG 그랜드 파이널을 치렀고 2~3개월 가량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대회를 위해 3, 4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기 때문. 12월부터 2월까지는 '농한기'였다.
그러나 최근 e스포츠에 대한 관심 제고를 위해 김 대표는 '농한기'를 없애 버렸다. 2009년 초 미국 NBC와 손잡고 'WCG 얼티밋 게이머(WCG Ultimate Gamer)'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 이 프로그램은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을 출연자로 선정, 각종 게임을 통해 서바이벌 대회를 치르는 것. 미주 지역에서 WCG 대표 선발전을 할 때 공식 종목으로 뽑힌 게임으로 경쟁 시스템을 만들어 최종 우승자를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e스포츠판 무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나이 어린 게이머들이 나오지만 30, 40대 시청률이 제법 높이 나왔어요. 단순히 리그 형식의 프로그램만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해서 시청자를 끌어 들이고 e스포츠에 대한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다양한 형식을 통해 e스포츠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 '농한기'에 할 일"이라고 역설한 김 대표는 종목 다양화를 꾀하고 싶은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현재 WCG 그랜드 파이널에서 소화하는 국산 종목은 대부분 삼성전자가 서비스하는 종목입니다. WCG의 대표 자격으로나 한국 e스포츠 관계자로서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기업에서 만든 종목을 선정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습니다. 그렇지만 국내 개발사나 서비스 업체들이 e스포츠를 단기간의 홍보나 매출 증진을 위한 매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 대표는 몇 번이나 국내 e스포츠 종목 게임을 WCG와 접목시키려고 시도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국산 종목이 접촉을 해온다면 만날 생각이 있고 세계적인 규모로 치러지는 WCG를 통해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e스포츠는 야구나 축구처럼 날씨 변화와 상관 없이 1년 내내 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WCG도 앞으로는 농한기 없이 계속 농번기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WCG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