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사정을 알리 없는 팬들은 "스타크래프트에서 밀려나 갈 곳 없이 다른 종목으로 떠났다"는 비난도 들었다. 성 캐스터 역시 세간의 평가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캐스터는 새로운 역할에 대해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성 캐스터만의 꿈을 키우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온게임넷과 수퍼액션, 바둑TV 등 온미디어 채널을 즐겨 보는 시청자라면 성승헌 캐스터의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온게임넷에서 서든어택 슈퍼리그와 던전앤파이터 리그를 중계하고 있으며 슈퍼액션에서는 UFC 격투기 대회를 진행한다. 바툭TV에서는 바둑과 게임을 전달하는 바투리그를 이끌고 있다.
"많은 리그를 진행하다 보니 준비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캐스터 일을 처음 할 때에는 힘도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각 리그마다 특성을 찾아 그에 맞는 중계를 하다보니 많은 리그도 문제 없습니다."
성 캐스터는 방송가에서 '준비하는 캐스터'로 알려져 있다. 초년병 시절 일화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중계에 서툴렀던 성 캐스터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무심히 버스가 오고 가는 것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 순간 머리가 번뜩였고 곧 버스가 오고 가는 것을 입으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미친 놈'이라며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버스가 오고 가는 것을 보면서 말을 풀다보면 어느새 리듬을 타기 시작하죠. 그 리듬을 타는 순간 방송 중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는 경륜장과 경마장에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돈을 걸고 내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빠른 리듬으로 중계할 수 있는 경륜과 경마에서 배울 것이 없나 찾아다녔다고. 게임 중계만큼 호흡이 빠른 종목이라 배운 점이 많았다.
"캐스터라는 직업이 단순하게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일로는 그것이 전부이니까요. 하지만 말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것은 음량의 변화, 음조의 변화로만은 할 수 없죠. 그것을 위해 항상 준비하는 습관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성 캐스터는 e스포츠협회나 게임 개발사들이 갖고있지 않는 기록지와 자료를 모으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한다. 언제 써먹을지 모르는 자료지만 한 번이라도 중계 도중 '멘트를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낀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 마시는 것을 엄청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최대한 자제하고 자료를 만드는데 투자합니다. 제가 준비한 자료와 말을 중계 도중 하는 것만큼 짜릿한 기분은 없죠. 그런 때에는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도 하죠. 하하하."
◆2세대 캐스터로서 사명감 충만
다양한 리그를 준비하고 공부하는 모습에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라고 넌지시 물었다. 바른 말만 하길래 힘든 일이라도 끌어내 인터뷰를 하고자 생각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성 캐스터에게서 나온 답변은 질문한 기자를 충분히 무안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2세대 캐스터라고 부릅니다. 선배 캐스터들이 지금까지 e스포츠가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해왔고 스타크래프트로 대변되는 한국 e스포츠를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 종목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편하게 중계를 진행하는 것에 만족하겠죠. 하지만 제가 해야할 일은 그것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세대 캐스터? 프로게이머들을 언급하며 세대 교체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캐스터에게도 세대 구분이 있었단 말인가. 말을 전달하는 소수의 캐스터들도 구분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2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제가 갖고 있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 캐스터들은 스타크래프트로 지난 10년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향휴 10년을 생각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리그를 만들고 정착시키는데 제가 땀을 흘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성 캐스터는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세대 구분의 의의를 전달했다. 1세대 캐스터들이 e스포츠의 정착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현재까지 해왔던 것처럼 자신은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에 e스포츠의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 세대를 구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비단 성 캐스터뿐 아니라 현재 각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캐스터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도 했다.
"제가 다른 종목으로 눈을 돌리자 팬들도 처음에는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했습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죠. 하지만 언젠가는 제 뜻을 알아줄 사람이 있겠거니 하면서 버텼습니다. 최근에서야 서든어택 팬들과 던전앤파이터 팬들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주시는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시청률? 기승전결 있다면 OK
방송가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청률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성 캐스터가 진행하는 리그들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비해 인기도 부족하고 좋은 시간도 아닌 탓에 시청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무리 낮은 시청률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기승전결이 있는 시청률이 나온다면 다음 방송에 가능성을 보고 기뻐합니다."
수치로 표현되는 시청률에 기승전결이 있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소설에서나 봐왔던 기승전결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시청률이 프로그램 전체를 보여주는 종합 시청률과 분당 시청률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분당시청률로 기승전결을 살펴봅니다. 어느 한 순간 시청률이 오르는데 그 지점과 리그 내용의 클라이맥스와 맞아떨어진다면 중계가 잘 됐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성 캐스터는 각 종목에 따라 중계 스타일을 달리한다고 한다. FPS 종목의 경우 그는 '감성 게임'이라는 말로 특성을 설명하며 자신이 격하게 중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또 바투의 경우 긴 호흡 속에서 차분히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FPS는 캐릭터가 곧 선수 자신과 같죠. 스타크래프트 등 RTS는 유닛의 움직임이 인공지능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감성이라고까지 할 것이 없어요. 하지만 FPS는 나를 믿고 있는 동료들이 있고 내가 믿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내 등 뒤를 놔두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게임 속으로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게임보다도 감성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 캐스터는 중계 도중 선수들에게 일부러 "왜 이렇게 못하냐"는 식의 멘트도 한다고. 그것이 꼭 게임을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 느끼는 점을 짚어주며 미안함과 자책 등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경기를 지켜보는 유저들에게 '네가 서든어택이나 해봤냐'라며 엄청 혼이 났어요. 하지만 이제는 팬들도 익숙해졌는지 '재미있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지는 캐스터 되고파
그렇다면 2세대 캐스터로서 향후 10년을 위해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캐스터라는 일을 떠나 게임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뜻하지 않았던 훌륭한 대답으로 돌아왔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캐스터죠. 하지만 게임과 리그를 팬들에게 전달만 하는 캐스터로는 부족해요. 게임 개발사의 협조를 얻어 게임 개발의 초창기부터 캐스터가 함께 동참해 그 게임에 책임일 질 수 있는 캐스터가 되고 싶어요."
성 캐스터에 따르면 게임 캐스터라고 해서 게임 중계만 하는 것만으로는 해당 게임을 하는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게임 속에 내제된 의미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으려면 게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 초기부터 캐스터가 알 수 있다면 훨씬 풍부한 내용으로 다양한 재미를 팬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마케팅이나 홍보효과만을 노리는 리그와 달리 진실성이 팬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로 인해 한국의 새로운 e스포츠 시장을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물론 현재 여건으로는 힘든 일이 되겠지만요."
이어진 성 캐스터의 설명은 MMORPG로 이어졌다. 자신을 RPG 마니아라고 설명하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MMORPG가 단순 사냥의 성격에서 벗어나 리그화에 성공한다면 e스포츠의 가능성은 무한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실현하기는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RPG 리그를 중계하고 싶습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가 리그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종목들이 리그에 나서고 그것을 전달하는 역할이 성승헌이고 싶습니다. 그때를 위해서 오늘도 땀을 흘리며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고요."
글/사진=오상직 기자 sjoh@dailyesports.com
*기사 수정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