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스로 플레이하는 선수들은 남자다운 외모를 갖고 있다. 꽃미남이라 불리는 김택용이나 김성제와 같은 선수들도 있지만 초창기 프로토스 선수들은 굵직굵직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턱선을 갖고 있어 질럿이나 하이 템플러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영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박정석이다.
◆팀플레이만 잘하던 고등학생
박정석의 아이디는 '[Oops]Reach'다. 삼성전자 칸 김가을 감독이 속해 있던 [Oops]길드는 스타크래프트 초창기 팀플레이 기량이 뛰어난 게이머들이 모인 클랜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강도경 등을 이끌고 SM 팀을 지휘하던 이재균 감독은 지인으로부터 [Oops] 길드의 마스터가 소속 선수들이 따낸 상금을 갖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팀플레이를 기가 막히게 하는 선수가 있는데 썩히기 아깝다며 추천을 받았다. 앳된 얼굴에 여드름 대신 군데군데 인상적인 점을 갖고 있던 선수를 테스트한 이 감독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영입한다. 그 선수가 바로 박정석이다.
2000년 당시 박정석은 고등학생이었다. 팀플레이로 다져진 기본기가 매력적이었지만 아직 개인전에 대한 감은 없었던 상황. 입단 테스트에서 강도경에게 전패했다는 박정석은 SM 팀의 일원이 되지 못할 것이라 좌절하고 있었지만 이 감독과 강도경 모두 "조금만 가다듬으면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며 받아들었다.
◆네오 제네시스 프로토스
박정석이 이름을 날린 대회는 누가 뭐래도 2002년 열린 스카이 스타리그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을 3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할 때 박정석이 보여준 생산력은 그동안의 개념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임요환이 컨트롤을 앞세워 효율적인 유닛 활용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면 박정석은 10개가 넘는 게이트웨이에서 필요한 유닛을 생산해 상대방의 기를 누르는 플레이를 펼쳤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박정석은 팬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박정석이 입신양명했던 무대는 겜비씨(현 MBC게임)가 제작한 프로그램인 '무한 종족 최강전'이었다. 종족별로 유명한 선수들을 초대해 다른 종족과 5전3선승제 경기를 치르고 승리할 경우 다음 주도 출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박정석은 프로토스 킬러로 유명했던 장진남은 3대0으로 완파했고 '할루시네이션 오브 핸드'라는 별명의 테란 최인규, '폭풍 저그' 홍진호 등을 연파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영웅의 탄생
박정석이 프로토스의 '영웅'으로 거듭난 대회는 스카이 2002 스타리그다. 박정석의 행보는 쉽지 않았다. 한빛 스타즈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선배인 강도경, 대나무류의 창시자인 조정현, 폭풍 러시의 원조 홍진호 등 당대 최강의 스타 플레이어와 한 조에 섞인 박정석은 재경기 끝에 강도경을 꺾고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8강 조편성도 역대 최강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다. 푸른 눈의 전사 베르트랑, 네이트 스타리그 2002 우승자 변길섭, 프로토스에게 1년에 한 번 진다는 조용호와 조를 꾸린 박정석은 베르트랑과 변길섭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른다.
16강에서 2패를 안긴 홍진호와 4강전을 치른 박정석은 지금까지 치러진 저그와 프로토스의 경기 가운데 가장 멋들어진 경기로 꼽히고 있는 난타전을 치른 끝에 결승에 오른다.
스카이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상대하기로 결정되자 박정석의 승리를 예상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불과 1주일전에 치러진 KPGA 투어 3차 대회에서 이윤열에게 0대3으로 완패를 당했기 때문에 박정석의 테란전 능력은 저평가되어 있었다. 이름값에서도 임요환에게 밀리고 1주일전에 치른 결승전에서도 완패하면서 박정석은 와신상담하고 있었다고 이재균 감독은 회상했다.
드디어 10월12일 서울 올림픽 공원 평화의 광장을 가득 메운 e스포츠 팬 앞에서 박정석은 '황제' 임요환을 상대로 생산력의 위대함을 뼈 속까지 각인시켰다. '개마고원'에서 펼쳐진 1세트에서는 10개가 넘는 게이트웨이에서 병력을 쏟아내며 승리했고 여세를 몰아 2세트까지 따냈다. '네오버티고'를 내주긴 했지만 4세트 '네오포비든존'에서 섬맵에 강하다는 임요환을 제치며 사상 첫 메이저 개인리그 우승자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팀플레이가 좋아 무작정 스타크래프트를 했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부산에서 올라온 고등학생이 영웅으로 승격된 순간이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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