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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비상(飛上)을 꿈꾸는 '빅가이' 김유진

[피플] 비상(飛上)을 꿈꾸는 '빅가이' 김유진
한 번 높게 날았던 새는 자신이 보았던 그 풍경과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생을 살던 새를 우리에 가두면 얼마 살지 못합니다. 다시 높게 날아 오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하면서 천장에 부딪히고 나중에는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높이 날았던 그 순간이 생애 최고의 날이었고 꿈 꾸는 세계였기 때문이죠.

승부의 세계에 종사하는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에 올랐던 선수들은 최고의 위치가 주는 짜릿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 정상에 서서 느낀 환호와 뿌듯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인생 최고의 희열입니다.

하지만 정상을 경험한 선수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슬럼프는 다른 선수들의 슬럼프보다 더 혹독합니다. 처음부터 새장에서 길러진 새와 야생의 새가 다르듯 최고의 선수들은 더 크게 좌절하고 더 많은 비판과 손가락질이 따릅니다.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무너지는 선수가 다시 최고가 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여기 또 다시 날아 오를 준비를 하는 야생의 새가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경기 운영과 전략은 마치 먹이를 무섭게 물어 뜯는 야생의 새와도 같지만 한 번 높이 날아 올랐던 짜릿함을 잊지 않고 다시 최고가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진에어 김유진이 그 주인공입니다.

한때는 '1억 원의 사나이'로 불리며 최종 보스를 뽑는 리그를 휩쓸었지만 지금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자취를 감춰 팬들의 걱정을 샀던 김유진. 잠시 웅크리고 있던 김유진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민이 많았던 지난 1년
김유진의 별명은 '빅가이'입니다. 상금이 큰 대회만 우승한다는 징크스(?) 덕에 붙여진 별명이죠. 김유진은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상금이 큰 대회에서 모조리 우승을 차지하며 지난 해를 '핫'하게 보냈습니다.

[피플] 비상(飛上)을 꿈꾸는 '빅가이' 김유진

우선 2013년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이하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상금 1억 원을 획득했죠. 이후 2013년을 마무리하는 대회였던 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즈(이하 IEM) 월드 챔피언십에서 김준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또다시 상금 통장에 1억 원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1년 단위 프로리그에서도 다승왕을 차지했고 2014년 GSL 상위 입상자들이 펼치는 마지막 대결인 핫식스컵 라스트 빅매치에서도 이정훈을 꺾고 우승, 상금 2,000 만원을 자신의 통장에 저축했죠.

2014년을 화려하게 보냈던 김유진의 2015년은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김유진은 무엇에 홀린 듯 GSL과 스포티비 게임즈 스타리그(이하 SSL)에서 모두 탈락했고 프로리그에서도 연패를 거듭했습니다. 2014년 펄펄 날아다니던 김유진의 날개가 꺾였던 것입니다.

"사실 저도 기대를 많이 했어요. 2014년의 마무리이자 2015년의 시작이었던 핫식스컵 라스트 빅매치에서 우승하면서 이제 '김유진 전성시대'를 열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슬럼프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어요."

김유진은 프로게이머 중 보기 드물게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고민합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항상 계획을 세우고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생활하죠.

김유진은 어느 순간 여가 시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차오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슬럼프라는 '놈'은 소리소문 없이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뭔가 일이 꼬여가고 있음을 느꼈어요. 제 입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여가 시간은 게임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지식도 쌓고 연습할 에너지도 얻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그게 안되다 보니 게임도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피플] 비상(飛上)을 꿈꾸는 '빅가이' 김유진

김유진은 순식간에 슬럼프를 겪었고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개인리그에서 김유진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프로리그에서도 연패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슬럼프라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김유진은 무료해졌다고 합니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빅가이'였잖아요(웃음). 동료들은 개인리그 준비하느라 바쁘고 프로리그에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새 3대 프로토스에서 제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을 보며 갑자기 깨달았죠."

실체가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자신이 슬럼프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던 김유진. 거친 야생에서 먹이사슬 최고의 위치에 있던 김유진은 다시 날아올라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동기부여가 필요했어요"
김유진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 시절 순둥이였던 김유진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렸던 것은 바로 동기부여였다고 합니다. 착하기만 하던 김유진을 우승자로 깨운 것은 옛 동료들이었죠.

"2013년 WCS 코리아 시즌3에서 백동준이 우승한 뒤 WCS 시즌3 파이널에서 또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백동준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는 나와 함께 연습생이었던 선수가 이제는 나와 다른 위치에서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나는 뭐 했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죠. 그때부터 독기를 품고 연습했던 것 같아요."

이후 김유진은 곧바로 열린 WCS 글로벌 파이널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백동준이라는 자극제가 김유진을 순둥이에서 악마로 바꿔 놓은 것이죠. 김유진은 스타1 시절 소속팀인 화승에서 최고의 선수였던 이제동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며 두 배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동기부여는 김유진의 또 다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신형에게 상대 전적에서 엄청나게 밀리고 있었던 김유진은 이신형에게만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핫식스컵 라스트 빅매치 8강에서 이신형을 만나게 된 김유진은 모든 힘을 쏟아 연습에 임했고 결국 이신형을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피플] 비상(飛上)을 꿈꾸는 '빅가이' 김유진

"동기부여가 되면 눈에 불을 켜고 경기를 준비하죠. 요즘 동기부여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 IEM 월드 챔피언십을 보면서 갑자기 저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최근 프로리그나 개인리그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같아요(웃음)."

◆김유진은 악마다?
얼마 전 스포티비 게임즈 스타리그 예선전에서 김유진을 결승에서 만났던 정우용은 가까스로 승리한 뒤 인터뷰에서 "도대체 정상적으로 흘러간 경기가 하나도 없었다"며 "다음에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선수"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이긴 선수가 이 정도로 불만을 터트릴 정도니 김유진에게 농락(?)당하고 패한 선수들은 얼마나 정신력이 무너졌을지 안 봐도 훤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김유진을 보면 이보다 더 순수할 수 없습니다. 착하디 착한 김유진이 어떻게 경기만 하면 상대를 무섭게 몰아치는 '악마'로 돌변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막상 본인은 "그냥 경기를 할 뿐인데 사람들이 왜 악마라고 말하는 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진정한 악마는 이병렬이에요. AB형인데 진짜 독특해요. 10문10답을 보셨잖아요(웃음). 이병렬이 4차원이지 저는 정말 평범해요. 경기를 조금은 독특하게 하긴 하지만 악마까진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상대는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있겠죠(웃음)."

자신은 절대 악마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김유진. 독특한 선수도 아니라며 그저 평범하기 그지 없는 프로게이머라고 소개합니다. 김유진의 경기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진에어에서 인터뷰를 가장 잘(?)하는 김유진에게 "조성주와 인터뷰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팁을 물었더니 "때리면 술술 이야기 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숙소에서도 말이 없고 조용하다가도 슬쩍 때리거나 놀리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며 기자들에게 때릴 것을 주문하는 김유진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4차원이 아니라고 해도 김유진이 평범한 선수는 아닌 듯 보여집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보고 싶어요. 누구나 가진 꿈일 거라고 생각해요. 한번 높게 날아봤으니 이번에는 멀리 날아볼 생각입니다.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으니 프로토스 원톱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할게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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