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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퍼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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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그녀 역시 닉스와 함께 대재앙 이전의 많은 과학기술들을 복원시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지금의 이 자리에 섰다. 닉스를 닉스 연방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닉스 연방의 어머니는 바로 에바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닉스에 버금가는 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여러 능력 면에서 오히려 닉스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항상 닉스의 뒤에서 그를 보좌하며 닉스와 함께 닉스 연방을 이끄는 영명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그녀의 답이 결국 이 회의의 결론을 의미할 것이었다.

에바가 특유의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저는 기가스 사령관님과 의견을 같이합니다.”

하바로프의 칼레 랑베르 위원장이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에바 부장님, 닉스 통령이 계셨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내리셨을까요?”

순간 장내가 고요해진다. 닉스 연방 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모든 연방국의 정신적 지주인 닉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분위기는 고요하다 못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의 부재가 이렇게 뼈저리게 아쉬운 적은 없었다. 연방의 분열, 루체 왕국과의 전쟁. 이 모든 것에 닉스의 부재가 있었다.

“네.”

에바의 짧은 대답과 함께 메탈리퍼의 증원을 우려하던 나이젤과 칼레 위원장의 머리가 동시에 숙여졌다. 더 이상의 의사표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닉스 연방에 있어 닉스 그리고 에바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 둘이 없었더라면 닉스 연방의 수많은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지금처럼 살아 숨 쉬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고마움, 아니 은혜,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이 험난한 세상을 이끌어 주고 의지할 수 있었던 그들을 거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이젤과 칼레 위원장이 미련을 가진 것은 메탈리퍼의 만행보다도 메탈리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 인간 한 명을 만들기 위해 100명 이상의 실험체-살아 있는 인간-가 필요하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의문점을 제시하기에는 힘도 그를 뒷받침할 정보도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전황 보고와 특전대 증원에 대한 결론이 난 이후에도 연방회의는 좀 더 진행이 되었다. 정부 요인들에 대한 루체 왕국의 지속적인 테러가 자행되고 있으니 주요 인물에 대한 경호 업무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루체 왕국의 테러 외에도 경호 인력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플레이그 스톰 같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대재앙 이후 출몰하는 이상 생명체-방사능에 변이된 괴생명체, 강화 실험에 연관되었다는 설도 있는-들이 도시 번화가에 출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아직까지 연방국민으로 편입하기를 거부하는 컴퍼니?산적이나 강도 같은 무장 집단?의 돌발적 행동, 게다가 내전 모의를 하다 숙청을 당한 군부세력이 모인 반란군의 조직적인 테러 활동까지 맞물리면서 경호 업무에 한순간도 신경을 놓을 틈이 없었다.

최근에는 자리에서 물러난 요인-루드 의원과 같은 닉스 연방의 전직 고위 관료(특히 닉스 연방 지역에서조차)-에게도 테러가 자행되기에 수도 경비를 맡은 치안유지군뿐만 아니라 각 지역 연방군 산하의 경비대 인원까지 각 도시의 치안유지에 전원 동원되기에 전선에 동원할 예비 병력을 확보하기에도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특전대 메탈리퍼의 증원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답보 상태인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일 수밖에 없었다.

* * *

회의가 모두 끝나고 대부분의 요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나이젤 위원장과 칼레 위원장만이 남게 되었다. 그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닉스 연방 공화국은 단일 국가이지만 9개의 연방국가가 연방의 기치 아래 결속한 형태이다. 연방의 대표는 통령이 맡고 있고 9개의 연방국가는 각각의 정부조직과 대표를 가지고 있는데 고스포드는 시장, 모스크는 영주, 레노는 총독 등 다양한 형태이다.

그중 나이젤 위원장과 칼레 위원장이 대표로 있는 베르시와 하바로프는 위원 집단 체제의 위원장이 대표를 맡는 형태의 동일한 정부 운영 형태로 그 둘은 이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가져오고 있었다. 더욱이 두 곳 모두 선임대표들이 독수리의 눈물로 불리는 닉스 연방 최악의 테러 사건에 전임 대표를 잃은 공통점 또한 이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더불어 다른 연방국가와 달리 선거에 의해 선출된 위원장이니만큼 다른 연방국가에 비해 비교적 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또 메탈리퍼가 증원되고 말았군요.”

나이젤 위원장이 체념한 듯이 말했다.

“예상했던 일이지 않습니까? 저도 이제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전쟁이 벌어진 이상 어떻게 해서든 빨리 승리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희생자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

나이젤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

“아…… 루드 의원님은 무사하십니까?”

이자벨의 아버지 루드 랑베르 의원은 칼레 랑베르 위원장의 친동생이었다.

“네…… 다행히도…… 굳이 제가 하바로프로 불렀는데 그런 일이 벌어져 동생 보기가 민망할 뿐입니다.”

아직도 노기가 남아 있는 듯 목소리가 격양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리고 역시 루체 왕국의 소행인 건 확실합니까?”

“네. 여러 정황을 봐서 루체 왕국의 테러가 확실합니다.”

“아니, 왜 굳이 물러난 루드 의원에게까지 놈들이 손을 뻗쳤을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칼레 위원장은 말끝을 흐렸다. 순간 죽음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동생과 조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둘은 칼레 위원장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리고 어린 조카 이자벨에 대한 사랑은 그녀의 아버지 루드 의원에 버금갈 정도였다. 사랑하는 조카를 자기 곁에 두고 싶어 기껏 자신이 있는 하바로프로 그 둘을 불러들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루체 왕국에 대한 적개심이 한층 더 불타올랐다.

“저는 전쟁에 승리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칼레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럼 다음에 또.”

“네.”

그렇게 칼레 위원장까지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나이젤 위원장만이 자리에 홀로 남았다.

“휴.”

루체 왕국과의 전쟁에서 비둘기파로 불리는 칼레 위원장마저 매파로 돌아섰다.

루체 왕국에 의해 전임지도자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길을 모색하고자 했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던 칼레 위원장마저 매파로 돌아서며 이제 비둘기파는 나이젤과 허드신의 에밀리 둘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메탈리퍼에 대한 여러 의혹과 문제점들은 이제 회의석상에서 더 이상 거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어깨가 축 처진 나이젤 위원장이 회의장을 마지막으로 빠져나갔다.

회의실 문이 닫히며 제36차 연방 최고 위원회 회의가 종료되었다.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강화 인간 특수부대 메탈리퍼의 증원이 결정되었다.

* * *

아이딘이 아침부터 유난을 떨었다. 어젯밤 손님들이 오늘은 공휴일이니 편히 쉬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휴일에는 아무래도 오후 이른 시간부터 분주해지곤 한다. 휴일 전날의 편안함으로 밤늦게까지 밀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예리엘도 늦잠을 자는 듯 아이딘 혼자서 가게 문을 열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이딘, 뭐 하는 거야?”

느지막이 일어난 예리엘이 기지개를 켜면서 아이딘에게 다가왔다.

“어, 오늘 공휴일이잖아. 손님들이 일찍 올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좀 준비했어.”

아이딘이 씩 웃는다. 예리엘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작업대의 공구들을 일사불란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모습이다.

“아…… 아이딘, 오늘 공휴일인 건 맞는데 가게 문은 열지 않아.”

“아니,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이딘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는 그의 약간 맹해 보이는 이런 표정조차 정겹게 느끼는 예리엘이다.

“그건 그러니까…….”

“어이, 아이딘 안녕.”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두 덩치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싱글벙글 건들건들 들어오는 두 덩치의 모습이 호퍼가 린에 대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다음부터 두 덩치 특유의 활기찬 파워가 완전히 회복된 느낌이다.

“잭슨 안녕…… 멋진 호퍼도 안녕…….”

호퍼 앞에 붙는 멋진이라는 칭호에 호퍼의 웃는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단순함을 넘어 순진하기까지 한 호퍼의 성격이 커다란 그의 덩치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지만 그의 해맑은 웃음과는 꽤나 어울린다. 이런 순수함이 적어도 이들에게 우정이라는 이름의 묘한 관계를 엮어 주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소풍이나 갈까?”

예리엘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예리엘. 정말 오늘 가게 문 안 여는 거야?”

“그래. 오늘은 가게 문 열면 안 되거든.”

“왜. 무슨 일 있는 거야?”

“오늘이 독수리의 슬픈 날이기 때문이야.”

“독수리의 슬픈 날? 그게 뭔데?”

“아이딘 너는 그것도 몰라?”

참견쟁이 잭슨이 끼어들어 설명을 시작한다.

독수리의 슬픈 날. 이날은 2년 전 일어났던 독수리의 눈물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었다.

당시 닉스 연방은 일촉즉발의 위기 사항이었다. 1년 전 통령인 닉스가 테러-훗날 루체 왕국이 자행한 것으로 밝혀진-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면서 연방의 결속력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졌다. 더욱이 이듬해 군부 주도하에 강행된 루체 왕국과의 전면전과 그에 따른 패배로 연방국 간의 대립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었다.

연방의 분리와 또 다른 내전-닉스 연방 이전에 연방국끼리의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음-을 우려한 연방 최고 위원회는 닉스 연방의 시발점인 독수리의 언덕-수도 고스포드에 위치하고 닉스가 통일 연합의 필요성을 구상하고 주창한 상징적인 곳-에서 닉스의 회복을 기원하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그리자는 취지에 연방 총회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연합의 밝은 미래를 꿈꾸었던 총회는 루체 왕국의 주도면밀한 테러로 닉스 연방에 지울 수 없는 비극으로 남게 된다.

총회장에 먼저 도착한 베르시, 모스크, 하바로프 연방국의 지도자들은 교전 끝에 피살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의 가족과 수많은 시민들까지도 루체 왕국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수없이 학살당했다.

이후 연방의 상징인 독수리의 언덕을 피로 물들인 이 사건은 루체 왕국에 대한 2차 침공의 명분뿐 아니라 닉스 연방에 대한 강한 결속을 꾀하게 한다. 그리고 그날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4일 이날을 독수리의 슬픈 날로 부르며 추모의 날로 정한 것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구나.”

“그래서 오늘 하바로프 안에 있는 모든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지.”

“에이, 그럼 아침부터 괜히 부산을 떨었네.”

“그래도 괜찮아. 오늘은 푹 쉴 수 있으니까.”

예리엘이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루체 왕국과의 전쟁은 이렇게 계속되는 거야?”

“나도 도통 모르겠어. 불타 버린 루드 의원의 집을 보면 정말 심각한 것 같기도 한데 전쟁을 한다는 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실제 전장에 나간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그렇게 전투가 치열하지는 않은가 봐?”

“왜?”

“생각해 봐. 뭐 옛날처럼 공군이 폭격을 해, 아니면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져. 그냥 총으로 쏘고 빠지는 게 전부잖아.”

“그래도 모병광고에 보니 탱크도 나오고 대포도 나오고 하던데.”

“그거야 광고니까 그런 거고 대부분 그냥 군인들끼리만 싸우는 게 대부분이래.”

대재앙 이후 플레이그 스톰이나 변화된 지구환경 때문에 항공기 운항뿐만 아니라 전자장비가 장치된 전차의 활용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투는 보병과 보병이 맞닿아 싸우는 보병전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싸우는 거야?”

“…….”

“루체 왕국이 먼저 우리를 공격하잖아.”

“왜?”

“그건 말이지…….”

호퍼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무슨 목적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 아니야?”

“아…… 나는 잘 모르겠는데 루체 왕국에서 자꾸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런 게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 죽을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또 전쟁이라니 난 절대 이해 못하겠어.”

예리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다. 바로 옆에 있는 아이딘의 코로 플로랄의 좋은 향기가 밀려든다. 무척 오랜만에 맡아 보는 여자의 향기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런 느낌 참으로 오랜만이다. 간만에 찾아온 여유가 아이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문득 고개를 들어 예리엘의 얼굴을 바라본다. 오뚝한 코, 커다란 눈. 거기다 가냘픈 몸매까지, 이제 보니 제법 미인이다. 그저 일할 때나 아무 생각 없이 볼 때는 몰랐는데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미모였다. 변두리 조그만 건스미스에 적지 않은 손님들을 끄는 데는 실력 말고도 또 다른 뭔가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딘, 뭔 넋을 놓고 봐. 예리엘 얼굴에 뭐 묻었어?”

눈치 없는 참견쟁이 잭슨이 머리를 들이민다. 아이딘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우리 오늘은 가까운 곳에 소풍이라도 가 보는 게 어떨까?”

“아. 좋아요.”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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