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네.”“뭘 몰라?”“기억이 안 나.”“……뭐?”“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르겠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예리엘이 슬며시 빨간 머리의 얼굴 표정을 살펴봤다. 마치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미소에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뭐야, 그러면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거야?”“기억상실?”그 말을 듣자 빨간 머리의 미간에 큰 주름이 잡혔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었다.“휴…… 그러고 보니 이름도, 사는 곳도,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어, 모르겠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그럼 뭐가 기억이 나는데?”“그냥 어디선가 막 도망친 것 같아.”“거기가 어디인데?”“모르
2018-06-27
Chapter 1.빨간 머리 불청객 답답하다.가슴이 조여 온다.따스한 온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공간 속에 나는 누워 있다.이곳은 어디인가?눈이 터질 듯이 쏟아지는 밝은 빛들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형상만 어른거릴 뿐이다.온몸이 꽁꽁 묶인 채 손가락만 꿈틀거린다.내 몸 곳곳에 붙어 있는 수많은 전극들이 나를 자극한다. 링거를 통해 내 안으로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알 수 없는 점액질들이 한없이 정신을 몽롱케 한다.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이미 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시간은 멈춘 듯하다.링거 바늘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끈적끈적한 기운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파괴하는 듯한 엄청난 고통을 안겨 준다. 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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