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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SKT 성학승 코치 "지도자가 주목받는 시대 열고파"

SK텔레콤 T1 성학승 코치를 만나기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추석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T1 연습실에는 박용운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가 모두 남아 있었다. 선수들은 모두 휴가를 갔지만 코칭 스태프는 추석 이후 연습 스케줄을 조율하기 위해 연휴 기간에도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몰두했다.

4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마친 성학승 코치는 "쉬는 일만 남았다"며 빨리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별로 성과도 내지 못한 자기같은 사람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들이 시간낭비하지 않도록, 그리고 추석 연휴를 조금이나마 오래 보낼 수 있도록 속도전으로 인터뷰를 끝내자고 했다.
◆오죽하면 전적 외우겠나
근처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첫 질문은 당연히 SK텔레콤 T1 저그를 어떻게 개선시켰냐는 것이었다. 성 코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2009년 1월23일 공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고 2월1일 SK텔레콤 저그 코치로 임명됐어요. 팀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저그 성적은 최악이었죠. 프로리그 2라운드가 끝난 시점에 5승20패였으니까요."

그는 T1 저그의 성적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1라운드 13전 전패, 2라운드 5승7패, 3라운드 2승4패, 4라운드 8승4패, 5라운드 4승6패, 광안리 결승전 2승1패 등 마치 컴퓨터에 입력된 것처럼 버튼만 누르면 전적을 쭉 뽑아냈다. 개인 세부 전적도 모두 외우고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3라운드에 돌입할 시점 저그 선수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죠. 잠재력은 갖고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죠. 박태민이 SK텔레콤의 저그 라인을 이끄는 핵심이었는데 공군에 입대한 이후 구심점이 없었어요. 박용욱, 최연성 등 코치들이 저그 종족을 지도했지만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어요. 저그는 무척 세밀한 종족이거든요. 국어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성 코치는 코치로 임명된 뒤 저그 선수들을 지켜만 봤다. 연습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성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2라운드 시작 직전 영입한 정영철이나 박재혁, 이승석 등 기존 선수들의 패턴을 알아냈고 문제점을 메모했다. 그리고 훈련 계획을 작성했다.

"선수가 경기에 출전해 이기게 만드는 조련사가 코치라고 생각해요. T1 저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승리였고요. 이기기 위한 기본은 충분한 훈련량이죠. 당시 T1 저그는 다른 팀보다 성적이 나빴잖아요. 못하는 선수가 잘하는 선수가 되려면 일단 남보다 많이 해야죠."

그는 저그 선수들에게 하루 60 경기를 치르라고 계획표를 줬다. 60 경기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경기당 평균 15분씩 잡아도 15시간이나 소요된다.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이다.

◆위기는 기회다
SK텔레콤 저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식 변경이 존재했다. 3라운드가 프로리그 방식이 아니라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충분한 연습 시간을 보장 받은 것. 5전3선승제의 프로리그 방식은 종족 의무 출전제를 지켜야 하지만 승자연전방식은 테란과 프로토스만으로 팀을 꾸려도 되기에 저그 라인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기회가 되더라고요. 다른 종족은 감독님과 최연성, 박용욱 코치에게 맡기고 저는 저그 선수들과 동고동락했어요. 하루 60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새벽 4시까지 선수들과 연습실에서 보냈죠."

성학승 코치의 첫 작품은 정영철이었다. MBC게임 히어로에서 이적한 정영철은 T1 저그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영입한 케이스. 2라운드에서 연패를 끊을 때 도움을 줬으니 어느 정도 합격점을 줄 만하지만 성 코치는 만족할 수 없었다.

"팀플레이 전담 선수여서 그런지 기본기가 좋았어요. 스타리그도 올라가면서 가능성을 검증 받은 선수가 연패 탈출용으로 쓰이고 버려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혹독한 트레이닝을 수행했죠. 체력이 바닥 나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박재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경상도 출신인 박재혁은 고집이 매우 강하다. 선수나 코치의 조언을 듣기는 하지만 자기 스타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성 코치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박재혁에게 스타일 변화를 추천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재혁이와 대화를 하는데 불만은 없다고 하지만 뭔가 뾰로통한 태도를 보였어요. 설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코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고 재혁이를 이끌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어요. ‘못하는 선수를 끌어 올리고 싶다’고 했고 ‘못하는 선수는 바로 박재혁이다’라고 말했어요. 정곡을 찔렸는지 재혁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따라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박재혁은 2006년 프로리그 전기리그에서 SK텔레콤이 우승을 차지한 뒤 당시 사령탑이었던 주훈 감독이 기대주로 선발하기도 했다. 이후 몇 번 예선을 통과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성 코치가 정영철과 박재혁을 저그의 주력 선수로 택하자 팀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시작했다. 저그 투톱 체제를 형성하고 경쟁에 들어간 것. 4라운드부터 종족 의무 출전제를 지켜야 했고 정영철과 박재혁을 고루 출전시키면서 서로 자극하게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정영철은 4라운드에서 박재혁보다 나은 성적을 냈고 5라운드에서는 박재혁이 뒤집으면서 4, 5라운드 동안 5할 승률을 넘겼다.

◆T1 코칭 스태프는 다르다
성학승 코치는 인터뷰를 하던 과정에서 코칭 스태프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제대로 코치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역할 분담을 해줘야 하고 감독이 코치를 위한 체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선수를 육성하고 승리하도록 만드는 코치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다고.

“코치 일을 시작한 지 불과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팀 코칭 스태프나 팬들에게 욕 먹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e스포츠계가 안고 있는 한계는 분명합니다. 현재 팀을 맡고 있는 코치들은 주업과 부업이 역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선수를 키우고 승리하도록 조련하고 연구하는 일이 코치의 본업이지만 이 업계는 운전이나 생활 관리, 스케줄 관리 쪽에 치우쳐 있어요.”



그는 현재 SK텔레콤이 추구하고 있는 지도자 육성 방향이 e스포츠계를 바꿀 만한 모범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종족별로 코치를 갖춤으로써 해당 선수들이 종족의 특성에 맞는 전략과 운영법을 만들어 냈다. 다른 팀들의 전략을 분석하는 코치가 없기는 하지만 현재 종족별 코치들이 이를 맡을 만하다. 또 선수들과 코치들이 머리를 맞대고 트렌드를 바꿀 만한 전략을 연구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박용운 감독이 취임 당시부터 갖고 있는 이러한 추진안들이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면서 코치들의 믿음을 이끌어 냈고 코치들은 진심으로 선수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바로 SK텔레콤이 3년만에 광안리 결승전에서 우승으로 나타났다.

“09-10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의 이적이나 변화는 거의 없었어요. FA 제도 시행 첫 해임에도 불구하고 대어급의 이동은 없었죠. 그렇지만 코칭 스태프의 숫자는 크게 늘었어요. SK텔레콤만 3명의 코치를 썼지만 이번 시즌부터는 2~3명씩 갖추기 시작했죠. SK텔레콤 T1이 만들어낸 성공적인 코칭 시스템을 다른 팀들이 배웠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죠.”

◆지도자 양성 코스 필요
성학승 코치는 단순히 코치의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다른 팀들이 SK텔레콤을 넘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숫자에 맞춰 코치의 숫자도 비례해야 하지만 질적인 측면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준비하는데 있어 감독 1명 이하 3명의 코치는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고 어떻게 선수를 키워갈지 계획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실질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죠. 팀 성적과 직결되는 부분이죠.”

지난 시즌을 치르면서 그는 선수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단순히 선배나 형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코치가 갖춰야 할 덕목과 선수가 목표를 이뤄야만 하는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 더 잘 통했다고. 이를 위해 성 코치는 야구나 축구, 농구와 같은 다른 스포츠의 코칭 노하우를 담은 책을 잡히는 대로 읽고 있다.

“야구가 최근 들어 큰 인기를 모으다 보니 여러 감독님들의 노하우를 적은 책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적용하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개념을 잡는 데 있어 최고의 책이라 생각해요. 3~40년 동안 선수와 코치를 거치면서 몸으로 익히고 머리로 구상한 선수 육성 방법들이니까 본받을 만하죠.”



코치와 관련된 서적을 접하면서 성 코치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e스포츠계에 코치 연수 과정이 없다는 것. 야구나 축구 등 프로 스포츠에서 뛰던 선수들은 은퇴하고 나면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서 지도자 수업을 들으면서 이론과 실제를 결합시키지만 한국은, 특히 e스포츠는 종주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배울 곳이 없다고 한탄했다.

“감독님들의 고민을 옆에서 보좌하면서 코치 업무를 배우는 것이 현 시스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직접 전투를 치르면서 체득하는 거죠. 코치란 무엇이고, 어떻게 선수를 가르치며, 왜 이 일이 필요한지를 몸으로 배울 수밖에 없어요. e스포츠 종주국이라면 코치 연수 시스템도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요.”

◆지도자가 주목받는 시대 열겠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발언을 요청하자 성학승 코치는 “주제 넘은 소리만 한 것 같아 감독, 코치 선배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직 1년차도 되지 않은 짧은 경력에 현실이 어떻고 비전이 어떻고 떠드는 것보다는 열심히 배우고 익힐 시점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굳이 주제를 꺼낸 이유는 “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까지 주목을 받게 되면 e스포츠가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개인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제 나이 18, 19세였어요. 위너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나서 몸도 마음도 모두 풀려 버렸죠. 누군가가 저를 붙잡아 주길 바랐는데 감독이나 코치의 역할이 그 때에는 거의 없었죠. 지금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 등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롱런하고 있는 배경에는 코칭스태프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선수들의 뒤를 받쳐주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성학승은 “김택용이나 이제동, 이영호가 은퇴하고 나서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서 이 곳까지 왔다’는 말을 해준다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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