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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스토리] MBC게임 이운재 "죽을 고비 맞아도 e스포츠 못 버려"

[코치스토리] MBC게임 이운재 "죽을 고비 맞아도 e스포츠 못 버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교통 사고로 몸 속에 기계 잔뜩…후배 도우려 밤샘도 불사

월드컵이 돌아왔다. 국가대표 수문장 이운재의 기용 여부로 축구계가 시끌시끌하다. e스포츠 업계에도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MBC게임 히어로의 사령탑 하태기 감독을 보좌하면서 09-10 시즌 우승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이운재 코치가 주인공이다.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룩스 히어로 센터에서 만난 MBC게임 히어로 이운재 코치는 피곤이 쌓여 다크 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과 스페인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을 봤냐"고 물었더니 "그런 빅매치가 열렸어요? 전혀 몰랐어요"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어떻게 승부가 전개됐는지 물어본다. 프로리그 4라운드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후배들과 함께 새벽까지 위메이드 폭스를 꺾을 방법을 연구했다는 이 코치는 그 좋아하는 축구도 포기하고 팀에 매달리고 있다.

◆살아 있는 머린
이운재의 선수 시절 별명은 '살아있는 머린'이었다. 데뷔 무대였던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에 버금가는 현란한 머린 컨트롤을 선보이며 정일훈 당시 캐스터로부터 "머린 컨트롤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살아있는 머린'으로 인정받았다.

"방송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대회가 바로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 대회 예선에 나가면서도 무슨 대회인지 정확하게 몰랐어요. 무수히 열리던 피씨방 대회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았는데 탈락한 선수들이 막 울더라고요. 강도경 선배가 울고, 화장실에 갔더니 다른 사람들도 엉엉 울더라고요. 저는 '대회에서 이겼는데 상금도 없어'라며 투덜대고 있었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스타리그에 나갈 선수들을 선발하는 무대였어요. 예선에서 WCG 챌린지 우승자 박태민과 당시 최고의 저그로 꼽히던 조용호를 떨어뜨렸죠."

이운재는 저그전에서 특이한 전략을 선보이며 '살아있는 머린'이라 불렸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당시 충격적인 빌드였전 공격력 1업그레이드 타이밍 러시나 디펜시브 매트릭스를 걸고 럴커를 잡아내는 컨트롤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김갑용 선수와의 '레가시오브차' 경기였어요. 16강 첫 경기였는데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죠. 입구 다 뚫리고 럴커가 일꾼 공격하고, 막기에 급급했는데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에요. 1대9 정도로 뒤지고 있었는데 머린 컨트롤로 뒤집었죠. 그리고 나서 '살아있는 머린' 별명이 생겼어요. 첫 경기에 주목받으니 날아갈 것 같았어요."

이후 이운재는 저그 킬러로 임요환과 함께 맹위를 떨쳤다. 비록 4강이나 결승 등에는 올라간 적이 없지만 저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우여곡절
2001년 코카콜라 스타리그에 참가한 뒤 이운재는 두 종목을 소화해야 했다. 소속팀인 한빛스타즈에서 서비스하던 엠파이어어스라는 게임과 스타크래프트를 병행해야했다. 당시 김동수와 강도경, 이운재 가운데 한 명은 엠파이어어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운재가 나섰다.

[코치스토리] MBC게임 이운재 "죽을 고비 맞아도 e스포츠 못 버려"


"재미있는 게임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고 세계관은 역사물이었죠. 제가 1년 동안 래더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죠. 방송 대회에도 자주 출전했어요."

엠파이어어스 리그가 성황을 이뤘지만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사라졌다. 1년 동안 공을 들였지만 이운재의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떨어졌고 한빛과도 계약이 만료됐다. 엠파이어어스 대회를 하태기 감독이 운영하던 피씨방에서 준비했던 이운재는 창단 소식을 듣고 곧바로 팀에 합류했다.

"하 감독님이 4당5락을 강조하시더라고요. 기본은 되어 있는 선수이니 노력만 더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었죠. 2개월만에 챌린지리그 예선을 통과했고 이후 파나소닉 스타리그에도 올라갔죠."

2002년 하 감독이 POS라는 팀을 창단하면서 이운재는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도진광과 손승완 등 3명이 주축이 됐고 박성준 등이 합류했다. POS 소속으로 출전한 첫 대회인 파나소닉 스타리그 16강에서 이운재는 임요환을 꺾고 3전 전승으로 8강에 올랐다.

"싫어하는 선수들이 한 조에 섞여 있었어요. 서지훈, 조용호, 이윤열이었죠. 세 선수 모두 친분이 있어서 열심히 연습하던 선수들이었는데 스타리그에서 한 조에 섞이니 난감하더라고요. 전략은 좋았으나 중후반전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도 조용호, 서지훈과 16강 같은 조에 속해서 탈락했죠. 이후에는 스타리그에 올라간 적이 없어요."

◆이적과 복귀
이운재는 POS에서 한계를 느꼈다. 테란 종족을 다루는 선수가 없었기에 번번이 테란의 벽에 막혀 성장하지 못했다. 도진광이 세 종족을 고루 잘했지만 테란만 전문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들과는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운재는 당시 테란 강호였던 이윤열이나 서지훈이 속한 팀으로 이적을 원했다.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탈락하고 나서 이윤열이 속한 KTF(현 KT)로 팀을 옮기고 싶었어요. 하 감독님과 장시간 토의한 끝에 팀을 옮길 수 있었죠. 돌아오는 팀은 POS가 되어야 한다는 당부만 하셨어요."

KT의 유니폼을 입은 뒤 이운재는 선수가 많은 팀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절감했다. 5~6명으로 꾸려진 팀에 있다가 10명이 넘는 선수를 보유한 곳으로 가다 보니 경기만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또 사령탑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운재는 POS가 그리워졌다. 돌아가도 되냐고 물었고 허락을 받았다. POS로 돌아온 이운재에게 맡겨진 선수는 박성준이었다. SK텔레콤 최연성과 연전을 앞두고 있던 박성준의 파트너가 되면서 이운재는 선수를 키우는 재미를 느꼈다.

"코치라는 자리가 생긴다면 성준이 같은 선수를 여럿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코치라는 자리는 거의 없었죠. 연습은 선수들끼리 알아서 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식물인간 8개월
24살이 된 이운재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프로게임단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지만 이운재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우선 추스러야 했다.

[코치스토리] MBC게임 이운재 "죽을 고비 맞아도 e스포츠 못 버려"


"당시 24살이되면 군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지금처럼 대학교에 갈 수 있는 환경도 안 됐으니 남은 시간 동안 다른 직업을 찾고 가족들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 뒤에 군에 가려고 했죠."

2년여 동안 야인으로 살았다. 동료였던 도진광은 군에 다녀왔고 이운재는 몸이 약해 현역으로는 가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하태기 감독으로부터 계속 러브콜이 왔다. 코치 생활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니 하루라도 빨리 합류하라는 요청이었다. 2006년말부터 수습코치 생활을 시작했지만 인생 일대의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였다.

"병원에서 8개월이나 입원했어요.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었죠. 사고 초기에는 정신도 없었고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판정도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만 4개월이나 있었으니 정말 중환자였죠. 인생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꿈이 있었어요. 후배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죠."

이 코치의 몸에는 지금도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진통제가 수시로 나오는 기계가 박혀 있고 면역 억제제도 기계로 공급된다 .철심도 상당 수 있다. 무리하면 쥐가 나고 일시적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다. 가장 크게 다쳤던 다리 쪽은 정상인의 60% 정도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감각은 거의 없다. 빨리 뛰는 일은 아직도 금지다. 단지 정상인과 비슷하게 걷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병원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제 평생의 배우자를 병원에서 만났고 아들도 생겼어요. 일가를 꾸리는 가장이 된 거죠."

수원에서 입원했던 이운재는 재활 치료 과정에서 담당 간호사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환자와 간호사의 입장에서 사랑이 싹텄다. 그리고 2008년에는 아들도 얻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운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카리스마 VS 데이터
2008년 겨울 MBC게임에 복귀한 이운재는 김혁섭 감독과 하태기 감독을 두루 섭렵하면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코치 수업을 받았다. 김혁섭 감독으로부터는 데이터에 대한 중요성을, 하태기 감독에게는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는 방법을 익혔다.

"김혁섭 감독님은 야구 선수 출신이었잖아요. 세세한 데이터까지 수집하기를 원하셨어요. 연습 경기, 2군 평가전, 1군 경기, 그리고 다른 팀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확보하고 나서 엔트리를 구성하는 방식이었죠. 데이터 수집을 주로 제가 했거든요. 꼼꼼하게 선수들을 관리하기를 원하셨어요."

하태기 감독에 대해서는 "선이 굵다고 해야 할까요.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자유방임형으로 내버려두세요. 그렇지만 체크는 꼬박꼬박하시죠. 면담을 통해서 선수들이 달성해야할 목표를 설정해주고 책임감을 갖도록 틀만 만들어주면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라고 분석했다.

◆코치직 확대 필수
코치 생활을 3년째 맞이하면서 이 코치는 코칭스태프 확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09-10 시즌에 돌입하기 전 도진광이 그만두면서 홀로 팀을 꾸려오면서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미안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선수들을 체크하는 방식을 선호해요. 그런데 20명이 넘는 선수들을 모두 일대일로 관찰하고 관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목하고 있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이 시샘하기도 하죠. 게다가 스페셜포스 선수들도 어느 정도는 관리해야 하니까 일이 더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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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게임은 한규종을 코치로 영입해 이운재와 함께 팀을 관리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2군 선수들을 한규종 코치가 주로 가르치고, 1군은 이운재와 하 감독이 공동 관리하고 있다. 스페셜포스 팀은 임수라를 플레잉코치로 올리면서 이운재의 짐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래도 모자라요. 다른 팀은 종족별 코치제를 도입해서 치밀하게 관리하는데 저희는 이제 스타크래프트 코치가 2명이잖아요. 선수는 가장 많아요. 드래프트 때에도 선수를 많이 뽑고 있기 때문에 12개 프로게임단 가운데 가장 선수 숫자가 많습니다. 20명이 넘어요."

◆선수 때 못해본 우승
이 코치는 선수 시절 우승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항상 약한 팀을 전전했고 강팀으로 갔을 때에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우승이 더욱 간절하다.

"이번 시즌처럼 전력이 좋은 적이 없어요. 이재호와 염보성이 버티고 있고 고석현, 김재훈 등도 어느 정도 기량이 올라왔죠. 또 박지호나 김동현, 서경종 등 노장들도 스나이퍼로 활용할 여지가 있어요. 7전4선승제의 포스트 시즌에 돌입하면 단기전에 강한 MBC게임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4라운드에 들어와 MBC게임의 성적이 좋지 않아 팬들의 우려를 사고 있지만 이 코치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2위로 올라가기는 어렵다고 해도 3위를 지키는 일은 쉽다는 것.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6일에 치른 위메이드전에서 3대0으로 승리하면서 MBC게임은 3위를 굳건히 지켰다.

"2006시즌 MBC게임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통합챔피언전에서도 SK텔레콤을 꺾으면서 최고의 팀이 됐습니다. MBC게임 선수들이 영웅이 되는 그 날을 지켜봐주세요."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이라고 했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고, 죽자고 덤비는 사람은 산다는 뜻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e스포츠에 올인하고 있는 이 코치가 있는 한 MBC게임 히어로는 최고의 자리에 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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