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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구성훈표 행복 바이러스에 빠져 보시죠"

[피플] "구성훈표 행복 바이러스에 빠져 보시죠"
프로리그는 팀 위해 이겨야 하지만
개인리그는 지더라도 팬 위한 재미줘야
세리머니로 망가져도 박수쳐 주길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다고 한다. 경쟁에서 처지는 선수는 뒤로 밀려나야 하고 은퇴도 고려해야 한다. 엔트리에 들기 위해, 연봉을 올리기 위해 남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연습해야 하고 특별한 기량을 쌓아야 한다. 뒤떨어지면 그만큼 은퇴 시기는 빨라진다. 연봉만큼, 아니 그 이상 성적을 내야만 인정받고 연명하는 것이 프로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프로의 조건이다. 적자생존과 위너테이크올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프로의 세계이지만 가끔 특이체질들이 존재한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다른 팀에 가지 않고 LA 레이커스에서 뛰겠다는 데릭 피셔 같은 선수들이 있고 일부 유대교 신자들은 특별한 날에는 경기에 나가지 않는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프로 생활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살짝 비껴가기도 한다.

화승 오즈 구성훈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경쟁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즐겁게 프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구성훈의 생각이다.

올해로 프로 6년차를 맞는 구성훈은 "선수로 뛰는 동안 나도 즐겁고, 팬들도 나를 보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구성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신 세계를 만나보자.

◆프로리그는 치열하게, 개인리그는 즐겁게
즐거움, 흥미, 재미와 같은 단어를 머리 속에 넣고 사는 구성훈이지만 모든 경기를 즐기면서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패배가 팀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프로리그 무대에 서면 비장하게 경기한다. 그렇지만 개인리그에서는 최대한 팬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경기를 하겠다는 것이 구성훈의 생각이다.

2007년 후기리그부터 프로리그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구성훈은 꽤나 임팩트있게 데뷔했다. 전기리그에서는 팀플레이 전담으로 뛰었지만 후기리그에서 개인전과 팀플레이를 겸임했고 개인전에서 7승1패를 따내면서 화승의 테란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후기리그에서 화승이 우승하는데 일조한 구성훈은 삼성전자와의 통합챔피언전에서도 마무리를 담당하며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2008년 후반기 프로리그가 1년 단위 리그로 전환한 뒤 구성훈은 승자연전방식으로 진행된 위너스리그에서 최강의 포스를 뿜어내며 리그의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위너스리그가 아니라 '잉어스리그'로.

"승자연전방식의 대회를 치러본 적이 없었어요. 팀리그가 사라진 뒤에 프로게이머가 됐거든요. 새로운 방식이어서 즐겁게 경기를 하다 보니 승수가 쌓였고 이제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승수를 쌓았죠. 톱 플레이어로 꼽히는 선수들 다음으로 승수가 많았기에 팬들이 제 별명인 '잉어'를 따서 '잉어스리그'라고 리그 이름을 바꿔버리시더라고요. 정말 기뻤어요. 신기하기도 했고요."

이후 프로리그에서 구성훈의 활약은 꾸준했다. 이제동의 뒤를 받쳐주는 화승의 프로리그 세컨드 카드로 활용됐고 다른 팀들에게도 두려움을 주는 선수로 입지를 굳혔다. 프로리그에서만큼은 집중력을 살려 승수를 쌓아야 한다는 구성훈의 마인드가 통한 까닭이다.

그러나 개인리그 무대에 올라서면 구성훈은 다른 사람이 된다. 조지명식을 치를 때면 다른 선수들이 뒷목을 잡을 정도로 특이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은 물론, 팀 동료인 이제동을 상대로 과감한 도발을 하고 "이기고 나면 이제동을 동네북으로 만들겠다"며 북을 치고 무대를 뛰어다닌다. 개인리그에 나서는 구성훈을 보고 있으면 행복 바이러스가 팬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개인리그에서 굳이 이기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개인리그만큼은 저도 즐기고, 팬들도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준비를 하지 않겠다거나 소홀히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프로리그에서 쓰지 못한 전략 플레이를 보여주고 상상하지 못한 특이한 전략을 보여드리면서 흥미 위주의 경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조지명식이나 승리 뒤에 펼쳐지는 세리머니도 개인리그에서는 더욱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팀의 범주에서 벗어나 구성훈이 펼치는 단독 콘서트라고나 할까요."



개인리그에서 구성훈이 남긴 발자취는 대단하다. 4강에 오른 적도 없지만 매 경기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조지명식에서 자신의 입으로 밝힌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MSL 조지명식에서 사비를 들여 오사마 빈라덴 분장을 하고 나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스타리그 조지명식에서는 구준표로 변신하기도 했다. 윤용태와의 하나대투증권 MSL 8강전에서는 패스트 핵폭탄 공격을 시도하며 색다른 전략을 쓰기도 했다. 이제동과의 박카스 스타리그 2010 16강전에서는 승리한 뒤 북을 치고 무대를 한 바퀴 도는 세리머니를 펼쳐 팬들의 배꼽을 빼기도 했다.

"프로리그는 화승의 브랜드가 걸리지만 개인리그는 구성훈의 브랜드를 걸고 출전하는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즐기고 팬도 즐기는 무대로 만들고 싶어요."

◆팬과의 소통 최우선
프로게이머에게 팬은 자신을 위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성적이 좋을 때야 팬과의 만남이 즐겁겠지만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는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존재로 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디시인사이드나 피지알과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팬들을 두려워하는 방증이다.

그렇지만 구성훈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팬과 소통하려 한다. 팬카페를 통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고 팬들로부터 즐거운 생각들을 구한다. 조지명식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할지, 승리한 뒤에 어떤 세리머니를 펼쳐서 즐거움을 줄지 홀로 고민하지 않는다. 팬카페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좋은 아이디어를 추천한 팬에게는 직접 보답도 한다. 세리머니 아이디어로 채택된 팬에게 통닭 한 마리를 선물하고 이를 받은 팬이 사진을 찍어 인증한 것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프로가 존재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 보시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를 보러 오고 같이 열광하고 함께 즐기는 팬들이 없다면 프로라는 타이틀을 굳이 달 필요가 없잖아요. 팬과의 소통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2인자의 삶도 즐긴다
화승 오즈의 에이스는 이제동이다. 구성훈과 나이가 같고 데뷔한 시기도 비슷하다. 2006년 화승에 입단해 지금까지 투톱을 이루면서 팀을 끌어 가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화승의 에이스는 이제동이지만 구성훈은 이제동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2인자로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제동의 통장 잔고를 보면 언제나 부럽죠. 그렇지만 에이스가 갖고 있는 스트레스가 제게 돌아온다면 저는 미쳐버릴 것 같아요. 연패만 해도 비난을 받아야 하고 이기는 것이 당연시되는 삶은 왠지 피곤할 것 같습니다."

구성훈이 갖고 있는 삶의 모토는 즐거움이다. 직업으로 게임을 하고 있고 성적에 따라 연봉이 주어지는 업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 구성훈의 주장이다. 일단 선수가 팀 생활을 즐겁게 해야 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경기에 나가서도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가 즐거운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경기가 재미없어지고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나 팬들에게는 즐거움이 전달되지 않잖아요. 저부터 즐겁게 생활하다 보면 업계 전체가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양념 역할이 제격
구성훈은 독보적인 선수가 되기 보다는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4대 천왕, 괴물, 투신, 악마, 영웅, 몽상가, 택뱅리쌍 등 e스포츠 분야에서 실력으로 한 때를 풍미했던 선수들은 많지만 다른 측면에서 팬들이 기억해주는 구성훈이 되길 원한다.

"개인리그 우승자나 각 팀의 에이스라 불리는 선수들은 자존심이 세서 그런지, 위엄을 가져야 한다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런지 세리머니와 같은 볼거리를 주지는 않잖아요. 그들이 부족한 부분을 제가 채워서 e스포츠 팬들에게 흥미를 주고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면 저도 업계에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세리머니와 언변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성은이나 고석현에 대해 구성훈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성은은 선구자, 고석현은 현역 최강이라고. 철판을 깐 듯한 이성은의 능청스런 세리머니를 보며 닮고 싶었고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는 고석현을 접하고 나서는 자기보다 한 수 위라고 느꼈단다.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들을 비판하지는 마세요. 아이디어를 짜고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고민하는 과정은 시간도 많이 들고 머리도 아프거든요. 팬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 위해 고생하는 저희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저희가 양념을 쳐주지 않으면 메인 디시도 맛이 나지 않잖아요."

구성훈의 머리 속에는 분명 승리보다는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상을 굳이 넣어 표현하면 자신의 승리보다는 팬들의 즐거움이 정확할 것이다. 팬을 위해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 구성훈에게 박수를 보낸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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