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송병구는 '우승자 징크스'를 겪고 있다. 간절히 원하던 우승을 이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쳐버린 것일까?
◆우승 후 필요했던 것은 잠시의 휴식
송병구는 긍정적이고 참 밝다. 찡그리는 법이 없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송병구는 무척 진지했다.
"요즘 꽤나 지쳤어요. 우승 뒤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었어요. 우승 후 3일 정도 쉬기를 바랬는데 다음날 바로 수원으로 가서 사인회를 하고 준비 못한 상태에서 프로리그에 나갔다가 패했죠. 정신이 멍하더라고요. 단지 한 경기 패했을 뿐인데 팬들의 질타가 쏟아졌고 벌써부터 '우승자 징크스'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일찍 데뷔한 탓에 사람들은 송병구를 올드 게이머 취급한다. 그러나 송병구는 이제 22살이다. 비난을 모두 짊어지고 가기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지만 송병구는 어리광을 부릴 처지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중추이자 e스포츠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항상 웃고 있지만 견디기 힘든 욕설을 보거나 비난을 받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힘들다. 하지만 괴로운 마음을 표출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에 송병구는 일찍 성장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음은 22세 어린 청년인데 몸도 이미지도 너무 커버린 것이다.
"혼자 많이 앓았어요.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프로리그에서 1패로 엄청난 비난을 들었을 때는 참 괴로웠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 항상 웃고 다니니 제가 힘든 것도 고민도 없어 보이나 봐요. 그게 제일 가슴이 아프죠."
송병구처럼 힘들게 정상에 도달한 선수는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 우승을 거둔 선수는 로열로더거나 전성기 시절 곧바로 우승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병구는 정상에 서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동안 달려왔던 송병구이기에 우승 후 정말 필요했던 것은 아주 잠시의 휴식이 아니었을까?
◆성한 곳이 없는 몸 “종합 병동이죠”
손찬웅의 디스크 사건을 계기로 프로게이머 건강에 대해 이슈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송병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리, 목, 손가락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허리 디스크는 오래된 프로게이머들이라면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많이 아파요. 목과 손가락은 거의 옵션이라니까요(웃음). 요즘은 왼쪽 손목 통증이 심해졌어요.”
![[휴(休)] 삼성전자 송병구 "다시 날아오르고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1251411400006617_7.jpg&nmt=27)
가끔 연습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손목 통증이 심해진다는 송병구. 구단에서 프로게이머들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소속 선수들이 정상적인 몸 상태에서 연습하고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가장 힘든 것은 눈이에요. 안경을 바꿔도 눈이 따끔따끔 하거든요. 경기장에서 모니터를 보기가 힘들 정도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프로가 제 몸을 챙기지 못한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빨리 몸이 제 컨디션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든든한 후원자 여자친구
송병구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웬만한 e스포츠 관계자나 팬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만큼 공인된 사이인 것. 여자친구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송병구는 오히려 여자친구에게 큰 힘을 얻는다.
“물론 자주 만나지 못하죠. 하지만 여자친구가 그것 때문에 저를 힘들게 한 적은 없어요. 항상 저를 이해해 주고 응원해주죠. 얼마 전 여자친구랑 술 한잔 하며 지친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날 정말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네요.”
프로게이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송병구는 참 복 많은 선수다.
“저도 여자친구 복은 있는 것 같아요(웃음).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해줘요. 힘들 때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저보다 이런저런 경험이 더 많은 여자친구가 도움이 되곤 하죠. 제가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어 미안하기도 해요.”
송병구와 여자친구 이야기를 나누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여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게 해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선수가 있는 가 하면 송병구처럼 내조를 잘하면 꾸준하게 성적을 내는 선수도 있지 않은가.
“항상 고맙죠. 내 생각 먼저 해주고 나에게 맞춰 주기 때문에 제가 게임에 몰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수 되고파
송병구는 요즘 부쩍 팀에 믿음직한 선수로 자리매김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예전에는 삼성전자 에이스 하면 송병구였지만 요즘 에이스 결정전은 대부분 허영무가 출전하고 있다. 자칫 하면 에이스 자리를 넘겨줘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선수가 감독님이나 팀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죠. 내가 나간다고 했을 때 ‘승리할 거야’라는 믿음을 줄 때 선수들은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제가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 점이 가장 힘드네요. 빨리 극복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팬들에게도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며 고개를 떨구는 송병구. 요즘 무쩍 지친 모습이 눈에 보였던 이유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송병구는 희망을 이야기 했다.
“그래도 꾸준함은 저를 따라갈 선수가 없잖아요(웃음). 잠시의 슬럼프지만 곧 극복해서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야죠.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주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믿음을 줘야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팀원들에게 감독님께 팬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용기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끔한 충고 한마디가 아니라 따뜻한 응원의 목소리가 아닐까?
◆다시 날아오르고 싶은 사령관
송병구는 인터뷰 이후 박찬수, 박정석에게 연달아 패하며 아직 부진을 떨치지 못한 모습이었다. 유지강 코치 역시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송병구가 인터뷰 마지막에 했던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송병구는 “극복하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잠시 지쳤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내 병력을 진두지휘 하는 ‘무결점의 총사령관’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준비중인 송병구. 묵묵히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