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 "정신 없네요"
22일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용산 상설 경기장. 인파들이 몰려 북적거리는 가운데 심판들은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도착해 경기장 상황과 선수단의 동태를 파악하는데 여념이 없다.
미리 정리해 놓은 기록지와 전적표를 각 관계자들에게 전달하는 일로 업무가 시작됐다. 현장 연출을 맡은 온게임넷과 MBC게임 관계자들부터 중계석에 앉아 있는 해설자에게도 데이터를 전달했고, 기자석에도 기록지를 배포했다. 매번 받아만 보던 상황에서 전달하는 입장으로 바뀌니 협회 심판들이 고생해서 만든 전적지를 정말 쉽고 편하게만 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인 12시30분. 본격적인 심판 업무가 시작됐다. 게임단이 모두 정시에 도착했는지부터 파악한다. 30분에 도착하지 못한 팀에게는 주의를 내려야하기 때문에 양쪽 대기실부터 찾았다. 양 팀 감독을 만나 엔트리를 적어낼 종이를 전달해 준 뒤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이후 선수들이 컴퓨터 세팅을 하기에 앞서 경기석 환경을 체크했다.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관중석과 경기석을 분리시켜주는 '사운드 커튼'이었다. 경기석 안으로 들어서자 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스타크래프트 음향이 울렸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는 관중이 더 많아지니 볼륨을 최대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먼저 오형진 심판이 시범을 보인 뒤 두번째 부스에서는 직접 조작했다. 이때 리플레이 파일을 지우는 일을 스쳐 지나갔다.
![[체험e스포츠] 오상직 기자 일일 심판이 되다(2)](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3231809450008680dgame_2.jpg&nmt=27)
◇경기전 경기석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오 기자.
"오 기자님,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리플레이 파일을 지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선수들이 리플레이를 확인하고 실수로 리플레이를 남긴 선수를 분석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지워주는 것도 심판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오 심판의 따끔한 질책에 깜짝 놀랐다. 시범을 보인대로 따라했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인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선수들의 경기 기록은 어떻게 보관하는 것인가.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각 방송사별로 방을 만드는 옵저버와 게임에 참관하는 주심이 파일을 저장하고 USB로 옮긴 후 협회에 리플레이만 저장하는 하드 디스크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펼친 수천 경기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석 환경까지 모두 체크한 뒤 주심과 부심들은 각각 제 자리에 위치했다. 부심 보조 자격인 기자는 KTF 선수단 벤치 바깥으로 자리가 배정돼 관중석에서 일어날 불상사를 감시하는 일을 맡았다.
◆박지수 "기자님이 심판도 하세요?"
경기석을 점검하는데 김창선 해설이 "뭐하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일일 심판이라고 했더니 "에이 난 또 기자 그만두고 협회로 이직한지 알았네"라고 농담을 했다. 또 전용준 캐스터는 "심판 체험 하는 것이 이벤트 아니냐"며 "중계할 때 따로 언급할 필요 없죠?"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부심 보조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귀에 꽂은 무전기 이어폰으로 강미선 심판과 양환석 심판의 무전 내용이 쉼 없이 들려 왔지만 부심 보조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체험e스포츠] 오상직 기자 일일 심판이 되다(2)](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3231809450008680_3.jpg&nmt=27)
◇심판진들과 무전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오 기자.
1세트 이제동과 고강민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지훈 감독에게 달려갔다. 이 감독이 차봉으로 내세울 선수를 적은 쪽지를 건네줬고 박지수라는 것을 확인한 뒤 반대편에 있는 강미선 심판에게 전달했다. 큰 일을 마쳤다라고 한 숨을 쉬는 순간 온게임넷 AD 한 분이 다가왔다.
"2세트에 출전하는 선수가 누구죠?"
"박지수입니다."
아차했다. 오형진 심판이 엔트리를 반대편으로 건네주기 전 온게임넷 AD에게 엔트리를 알려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깜빡 잊었다. 심판으로부터 1분1초라도 빨리 엔트리를 전달 받아야 방송국이 2세트에 쓰일 자막을 준비하거나 해당 선수들의 전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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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e스포츠] 오상직 기자 일일 심판이 되다(2)](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3231809450008680_5.jpg&nmt=27)
◇KTF 박지수가 경기석에 앉기 전 금속 탐지기로 온 몸을 검색하고 있다.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잠시 후 박지수가 벤치에서 일어서 경기석으로 걸어왔다. 이때 심판은 경기석에 들어가기 전 금속탐지기로 온몸을 체크해야 한다. 혹시라도 있을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휴대폰이나 삐삐를 가져들어가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작업이다.
기자를 알아본 박지수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님이 이제 심판도 하는거예요?"라고 물었다. 이번에는 경기 전 "선수들과 장난치시면 않된다"고 주의를 줬던 오 심판의 말이 떠올라 무표정으로 금속탐지기로 확인한 뒤 경기석으로 안내했다. 휴~. 이제 부심 보조로서 할 일을 겨우 마무리했다.
◆주심 "바쁘다! 바빠!"
부심이 경기석 주변에 서있으면서 상황을 체크하는 동안 주심은 양 방송사의 옵저버들과 함께 게임 속 상황을 체크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각 선수들의 진영을 오가며 버그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경기는 제대로 진행되는지 등을 파악했다.
또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주심의 역할. 농구나 축구처럼 경기 기록관이 따로 없기 않기 때문에 주심이 상황과 경기 양상을 간략하게 정리한 뒤 언론사와 관계자들에게 메일로 송부한다.
주심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마이크를 들고 판정을 내리는 것도 심판이 해야할 일이다. 이때 관객에서 "노래해! 노래해!"라는 말이 들려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창 심판이나 오 심판 역시 "노래해"라는 말에 당황한 적이 있다. 창 심판은 훤칠한 키와 외모 때문에 "잘 생겼다"라는 말도 곧잘 듣는다.
![[체험e스포츠] 오상직 기자 일일 심판이 되다(2)](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3231809450008680dgame_1.jpg&nmt=27)
◇오형진 심판이 선수들을 경기석으로 안내하고 있다.
모든 경기가 끝난 뒤에도 주심은 리플레이를 저장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문제는 없었는지 다시 정리한다. 종종 선수단의 항의나 불평을 듣고 메모한 뒤 협회에 전달하는 것도 주심의 역할이다. 문제가 된 장면을 따로 모아 협회 회의실에서 경기국 인원들이 모두 모여 토의를 한다. 리플레이를 틀어 놓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판정을 내릴 것인지 등의 의견을 모은다. 정당한 항의일 경우 상벌 위원회를 소집하기도 한다.
기자가 공인 심판을 체험하는 과정 중에서 유일하게 해보지 못한 것은 주심의 역할. 주심이 잡을 수 있는 마우스는 아무나 잡을 수 없는 것이라며 뒤에서 관전하는 것으로 그쳤다. 대신 주심 자리 주위에 함께 있는 양 방송사 관계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협회 심판이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경기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모든 경기가 완료된 뒤 마지막으로 다시 경기석의 리플레이가 삭제됐는지 확인하고 부심 보조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이날 주심을 맡은 오형진 심판이 다가와 "처음 치고는 그래도 잘 해내셨다"라고 한 뒤 "아무쪼록 심판의 역할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팬들도 계신데 이번 기회에 심판이 하는 일도 많다라는 것을 알려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 심판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심판 역할을 하면서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와이셔츠가 현장의 긴장과 심판의 중요성을 대신 설명해줬다.
글=오상직 기자 sjoh@dailyesports.com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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