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休)] 김정민 해설 "없는 동안 e스포츠 지켜주세요"](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5251347080011003dgame_1.jpg&nmt=27)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 김정민의 위치는 매우 독보적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김정민의 입대를 아쉬워했다. 더군다나 이번 시즌을 마치지도 못하고 리그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도 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23일 마지막 중계를 차분하게 진행하던 김정민은 KTF와 SK텔레콤 경기가 끝난 뒤 특별하게 열린 환송식에서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군에 가는 것이 슬퍼서라기 보다는 별 볼 일 없는 자신에게 많은 사람의 사랑이 쏟아진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은 눈물이었다.
“상상도 못했어요.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해설자로서도 미흡한 저에게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환송회까지 열어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 잘해준 적 없는 선후배들과 e스포츠 관계자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김정민이었기에 마지막 환송회에서 보여준 팬들과 e스포츠 관계자들의 사랑은 넘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눈물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른 김정민은 군입대 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입대 전 정식으로 하는 마지막 인터뷰랍니다. 인터뷰를 하며 제 삶을 돌아보니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선수 시절에도, 해설자 시절에도 잘하고 싶어 바둥바둥했고 1등이 되고 싶어 몸부림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사실 김정민이 해설자를 하기로 결심한 시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KTF의 23연승의 숨은 공신이었지만 '숨은'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팀플레이 전담 선수로 전환하면서 1승도 둘이 나눠가져야만 하는 어색한 입지가 되어 버렸다. 그는 좌절감에 빠졌고 프로게이머가 아닌 제2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게임을 계속 하는데도 유닛을 제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가 없었거든요. 당시 (홍)진호의 바이오닉 컨트롤이 저보다 나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느 순간 제가 박정석과 홍진호의 '곁다리'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큰 행사가 있으면 정석이와 진호가 가고 작은 행사에는 메인으로 정석이나 진호가 가면 저는 부수적인 인물이었어요. 누군가의 보조가 된다는 기분이 들면서 힘들었어요.”
e스포츠를 초창기부터 관전한 팬들이라면 김정민의 존재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임요환과 함께 테란의 쌍두마차로 각종 대회 상위권을 차지했다. 임요환이 인정한 라이벌이었고 김정민의 조이기가 시작되면 해설자들은 "천만년 조이기가 들어갑니다. 저걸 뚫을 선수는 거의 없죠"라고 흥분했다.
“저를 해설자로 기억하는 분들은 잘 모르실 거에요.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을 것 같은 무적의 포스를 뿜어내던 시절이 있었답니다(웃음). 제가 행사를 뛰면서 팀을 먹여 살리기도 했고요. 항상 주목 받았고 팀의 주축이었지만 KTF에서는 누군가의 보조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영원히 2인자인가 보다’라는 패배주의에 빠졌습니다.”
인생의 바닥까지 경험한 김정민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KTF에서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코치직을 제안했고 온게임넷에서는 해설직을 제안했다. 원래 선수가 코치직을 맡게 되면 연봉이 삭감되는데 KTF에서는 이례적으로 김정민에게 연봉 삭감 없이 코치직을 제안했던 것.
“굉장히 파격적인 조건이었어요. 사실 온게임넷 해설직을 하게 되면 선수 때 받았던 연봉보다 깎이기 마련이었거든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 결과 패배주의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들었던 선수 시절에 종지부를 찍은 김정민. 랭킹 1위도 못해보고 평생 2인자라는 서러움을 뒤로 한 채 선수 시절을 마감한 없었던 김정민은 “게임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고백했다.
“진지하기만 했어요. 예전 조지명식 동영상을 찾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제가 얼마나 진지했는지(웃음). 얼마 전에 다시 봤는데 중계진 입장에서 보니 답답하더라고요(웃음). 게임을 즐기고, 승부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그때 조금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게임에 임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 거에요.”
선수 시절 김정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차갑고 잘 웃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해설자가 되고 난 뒤 김정민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변화했다. 김정민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진지하고 고지식한 성격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
“팬들이 경기에서 이기면 경기가 재미없다고 하고 경기에서 지면 진다고 욕하더라고요. 이기든 지든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쓴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흥미와 재미를 잃어버렸죠. 그래서 해설자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는 최대한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했어요.”
발상의 전환은 e스포츠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재미있게 해설을 하다보니 선수 때보다 오히려 팬들도 더 많아지고 드디어 1인자로 평가 받기 시작했다. 그는 아니라고 하지만 팬들이나 방송 관계자들 모두 최고의 해설자를 뽑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김정민을 꼽는다. 심지어는 데일리e스포츠가 창간 기획으로 했던 프로게이머가 뽑은 최고의 해설자에도 압도적인 표 차이로 김정민이 뽑혔다.
“선수 시절에 이루지 못한 꿈을 해설자가 되어 이뤘네요(웃음). 최고라는 말은 기분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저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정말 제가 1인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개선점도 수두룩합니다.”
해설자가 됐을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처음으로 해설한 방송을 모니터링 할 때”라고 했다. 김정민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었고 어디론가 숨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발음, 목소리, 상황 설명 등 정말 모든 면에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고 이 방송이 전국으로 송출됐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김정민은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최고의 해설자로 자리매김했다. 온게임넷에서 프로리그를 연출하는 이학평 PD는 “성실하고 항상 노력하는 해설자”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김정민 해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성실함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해설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요. 일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김정민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김정민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줄 상상도 못했다”며 목이 메이는 듯 했다. 김정민의 마지막 방송에 온게임넷 PD, 카메라 감독 등 스태프가 총 출동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났음에도 한 사람도 나가지 않고 자신의 환송회 때 경기장을 가득 메워 준 팬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28년간 허투루 살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불운한 게이머도 없다’고 좌절했어요. 지금은 전성기 시절이 오면 많은 연봉도 받을 수 있고 배부른 상황에서 연습도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전성기 시절 연봉이라는 것을 받아본 기억도 없고 연습도 정말 힘들게 했고 운영비를 위해 행사를 뛰어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이상 불운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입대 전 마지막 해설이 마치 짠 것처럼 KTF와 SK텔레콤 경기라는 것만 봐도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정말 멋진 경기를 보고, 해설하고, 팬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스포츠가 제가 준 시련도 많지만 기회도 주었어요. 기쁘고, 좋은 기억만 담고 2년간 자리를 비웁니다.”
2년 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 김정민. 다시 돌아올 때 여전히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반겨 줬으면 좋겠다며 김정민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e스포츠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김정민은 다시 온게임넷 해설자로 돌아올 겁니다. 그때까지 잠시 유학 갔다고 생각해 주시고 기다려 주세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 져서 더 많은 에너지를 머금고 돌아오겠습니다. 더 멋있어진 모습 기대하셔도 좋아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김정민은 “군대 들어가서 스타 크래프트2만 시켰으면 좋겠다”며 너스레이자 바람을 밝혔다. 바둑 기사가 군대를 가면 상부 사람들과 바둑을 둬야 하듯 보직이 스타 크래프트2를 하며 해설 감각을 떨어뜨리지 않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담이지만 군에서도 해설자로 계속 노력하겠다는 김정민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김정민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동안 여러분은 e스포츠를 지켜 주세요. 그래야 제가 돌아와서 할 일이 생기죠(웃음).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팬들에게 좋은 해설 들려 주고 싶습니다. 최고의 해설자가 되겠다는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몸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dai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