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유나이티드 시절 이호우는 최고의 선수였다. 케스파 공인 랭킹 1위, 각종 리그 우승 등 이호우가 속한 e스포츠 유나이티드팀은 승승장구했다. 또한 스페셜포스 프로리그를 위한 드래프트 선발전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많은 팀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걱정도 없었고 항상 즐겁기만 한 소위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였다.
이스트로 창단 이후 이호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STX 김솔과 더불어 스페셜포스 양대 산맥이라고 불렸던 이호우를 만난 것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 6월의 어느 날. 평소와는 달리 인터뷰 내내 진지한 모습을 보였던 이호우와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눴다.
◆리퓨트 연승이 이호우 탓?
이호우는 요즘 스페셜포스 프로팀 선수들에게 뭇매 아닌 뭇매를 맞고 있다. 드래프트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해 턱걸이로 리그에 합류했고 우승 경험도 없는 리퓨트가 1라운드를 전승으로 마감한 것은 첫 경기에서 이스트로에게 승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선수들의 이야기다.
“드래프트 선발전에서도 쉽게 승리했고 다른 대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겼기 때문에 리퓨트에게 질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죠. 리퓨트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한 우리 팀을 꺾고 나서 자신감을 회복했고 그 기세를 몰아 연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래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이 기세와 자신감에 승패가 좌우되곤 하죠.”
따라서 이호우는 리퓨트의 기세를 살려줬다는 이유로 다른 프로팀 선수들에게 구박을 받고 있다. 이호우 역시 이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무척 화가 났다고. 매번 이겨왔던 상대인 리퓨트에게 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만심이죠. 프로리그 시작 전 저를 만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때 우리 팀은 최강이었고 누구를 만나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어요. 창단한 뒤 리더로서 챙겨야 할 것도 많더라고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하고 리퓨트전에 임했어요. 솔직히 연습 안 해도 이길 줄 알았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자만심이었던 것 같아요.”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이호우는 2라운드에서 리퓨트를 만나 반드시 기세를 꺾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이스트로가 살린 리퓨트 연승 불씨를 꺼트릴 수 있는 사람은 이스트로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호우와 4명의 팀원들은 밤낮 없이 연습에 몰두했다.
결국 이스트로는 지난 14일 리퓨트의 연승 행진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리퓨트를 상대로 깔끔하게 2대0 승리를 거둔 이스트로는 이번 승리로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찝찝함과 다른 프로팀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을 깨끗이 씻었단다.
“리퓨트에게 승리를 거두며 그동안 마음 고생을 털어버렸어요. 이스트로가 다시 한번 최강 팀임을 입증한 거잖아요. 사실 다른 팀이 리퓨트 연승을 막았다면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찝찝했을 것 같아요.”
◆창단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리퓨트의 연승을 막아내며 한 숨 돌렸지만 그동안 이호우는 생각지도 못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이호우는 최근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특유의 발랄한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창단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창단을 하고 나니 더 많은 문제가 산더미처럼 눈앞에 쌓여 있더라고요. 도저히 감당이 안됐어요. 저를 믿고 여기까지 달려온 팀원들도 있고 우리를 믿고 팀을 창단해준 이스트로 관계자 분들, 그리고 우리를 응원해준 많은 분들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재미로 게임만 하던 선수들이 갑자기 팀에 들어와 합숙을 하고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고 고백하는 이호우. 1패를 쌓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온 몸을 휘감았고 그때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었단다.
“최강 팀이라는 자존심이 무너지고 나니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더군다나 게임을 즐겼던 선수 5명이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니 실력 발휘가 안되고 점점 움츠려 드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회에서 성적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아마추어 때는 느낄 수 없는 부담감이었어요. 성적이 안 나오는데다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도망가고 싶었어요.”
힘든 이호우를 잡아 준 것은 팀 동료들. 이호우를 믿고 이스트로에 입단한 선수들을 버리고 차마 도망갈 수는 없었단다. 가장 오랜 기간 이호우 옆에 있었던 임정민을 비롯해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게임을 하고 있는 박귀민, 누구보다 이호우를 믿고 따르는 강주호 그리고 원래 있던 팀에서 이스트로로 대려 오기 위해 삼고초려 했던 조현종까지 이호우 옆에서 힘이 돼 주었다.
“팀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 벌써 도망갔을 겁니다. 서로 힘든 부분을 아껴주고 감싸주는 마음이 정말 강해졌어요. 지금은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아끼는 사이가 됐죠. 끈끈한 동료애가 생기고 나니 게임이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생계형 프로게이머?
이호우가 처음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매우 독특하다. 울산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을 당시 지낼 곳이 필요했던 이호우는 스페셜포스 게임을 하던 한 클랜 형에게 연락을 했다. 단지 거처가 필요해 시작했던 스페셜포스가 이호우에게 지금은 직업이 됐다.
“게임이 좋아서 프로 게이머가 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저는 정말 생계형 프로게이머였죠(웃음). 제가 서울에서 계속 지내려면 스페셜포스를 계속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클랜 형을 따라 리그도 나가게 된 거죠.”
살기 위해 리그를 나갔던 이호우. 그 곳에서 이호우는 스페셜포스를 계속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냈다. 방송에 나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는 이호우는 방송에 계속 출연하고 싶어 스페셜포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만약 생계형 프로게이머였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게이머를 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방송 출연을 한번 하고 나니 딱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송에 계속 출연하고 싶어 미친 듯이 연습해 실력을 키웠죠.”
정말 다른 선수들과 다른 이유로 프로 게이머가 된 이호우. 하지만 최강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이호우만의 게임 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노력하는 자에 비해 쉽게 최고가 됐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이호우가 가진 복이 아니겠는가.
◆이호우 그리고 부모님
알고 보면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이호우. 무작정 서울에 상경한 이유를 물어보니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사생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호우가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며 말문을 텄다.
“처음에 부모님이 ‘저러다 며칠 후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셨어요. 아직도 서울에 가는 버스를 탔을 때 아버지 전화가 잊혀지지 않아요. 제가 무작정 서울에 가는 것도 모르고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때 버스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호우는 한동안 부모님과 연락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집에도 한번 내려가지 않았다고.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는 이호우. 철이 들고 나니 부모님께 저지른 불효가 가장 마음 깊이 상처로 남는다며 살짝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얼마 전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 오셨어요. 잘 지내는 저를 보시더니 뿌듯해 하시더라고요. 방송에서 저를 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으시데요.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동안 못했던 효도 앞으로 많이 하려고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던 이호우. 게임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점점 프로가 되어 가는 이호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셜포스 양대 산맥, 김솔-이호우
지난 주 김솔의 휴(休)인터뷰를 본 이호우는 자신도 빨리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욕심 많은 이호우는 김솔과 함께 스페셜포스 양대 산맥이라 불렸기 때문에 언론에서 김솔만 집중 조명하는 것이 서운했다고.
“저도 스페셜포스에서는 솔이형만큼 인기도 있고 인지도도 있는데 매체 인터뷰나 방송에서는 솔이형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정말 서운했어요(웃음). 스페셜포스 프로리그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어요. 앞으로 저도 많이 조명해 주세요(웃음)."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터라 뭐라고 대꾸를 해줘야 할지 모를 무렵 이호우는 "라이벌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김솔 하나만으로는 스페셜포스 스타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요환이 더욱 빛났던 것은 홍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김솔의 라이벌이자 동반자, 그리고 양대 산맥으로 이호우라는 이름이 기억됐으면 좋겠단다.
"물론 라이벌이라고 보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죠(웃음). 하지만 저는 이스트로와 STX가 스페셜포스 전통 명가이자 라이벌로 커 나가길 바래요. 그렇게 된다면 리더인 솔이형과 저도 숙명의 라이벌이 되겠죠. 스페설포스에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다면 리그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거든요."
이호우는 인터뷰를 마치며 김솔과 더블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스페셜포스 리그 활성화를 위해 양대산맥이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이호우. 2라운드를 마친 뒤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이호우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연습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스페셜포스 프로리그가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점점 커가고 있음을 느껴요. 지난주 처음으로 이스트로 여성 팬들이 현장을 찾아주셨더라고요. 조금씩 바꿔 나가는 거죠. 그리고 스페셜포스를 지탱하는 중심에 이호우가 있었으면 좋겠다요.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사진, 글=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