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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인터뷰] 황제, 적자(適者)를 만나다…①

[더블 인터뷰] 황제, 적자(適者)를 만나다…①
'김택용 지명' 임요환, 포스트 논란에 종지부

e스포츠는 논란이 많은 분야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게임으로 대회를 하는 것이 스포츠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것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다.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임요환(30. SK텔레콤 T1. 테란)'을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들어봤다"고 답한다. e스포츠가 뭔지 모르고, 스타크래프트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임요환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e스포츠 관계자들은 뿌듯해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임요환을 만들기 위해 12개 프로게임단 관계자들은 오늘도 발이 닳도록 뛰고 있다.
◆임요환의 등장
임요환은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 대한민국을 경제 위기로 몰아 넣은 IMF 시절, 인터넷 산업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산업군이 나타났다. 인터넷을 활용한 콘텐츠가 막 뜨기 시작하면서 게임 또한 인터넷을 통해 인터랙티브라는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PC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스타크래프트가 존재했다.

임요환은 IT 산업을 앞세운 신종 산업의 성장과 게임, 그 중에도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가 결합된 새로운 시장의 대표 주자였다. 임요환의 탄생은 IT와 벤처 산업이 문화로 연결되는 고리였고 새로운 양태였다. 1020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최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서태지가 음악이라는 콘텐츠를 앞세워 어린 세대를 사로잡은 것처럼.

임요환은 초창기 e스포츠의 시대를 연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던 시기였고 자신도 그 안에 존재했지만 실력 하나로 양지를 개척했다. e스포츠계가 처음으로 발굴한 스타였고 그를 통해 기업의 후원이 잇따랐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다. 임요환의 모습을 보면서 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나서는 선수들도 증가했다. 기업의 투자가 대폭 늘었으며 대회 e스포츠 대회의 규모 또한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도 좋을 만큼 성장했다.

◆포스트 임요환 논쟁
산업적으로 임요환이 가져온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그렇지만 e스포츠계에서 임요환에 대한 평가는 최근 들어 점차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임요환은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2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년 개인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다. 팀의 이름을 걸고 출전하는 프로리그에서도 주인공 역할은 하지 못했지만 팀의 우승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 간간이 1승을 보태주는 전략적인 카드로 활용됐다. 임요환의 소속팀인 SK텔레콤 T1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프로리그 타이틀을 달고 진행된 4개의 대회를 싹쓸이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강 프로게임단으로 군림했다.

[더블 인터뷰] 황제, 적자(適者)를 만나다…①


2006년 10월 공군에 입대한 임요환은 공군 팀에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군대가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팬들의 원하는, 기지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이슈를 몰고 다녔다. 임요환이 출전해서 승리할 때면 100만 클릭에 가까운 인터넷 조회수가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임요환에게 혹독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프로게이머 10년차를 맞은 임요환에게는 '한물 갔다', '30대 프로게이머는 꿈이었다'라는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포스트 임요환'은 누가 될 것이냐로 화두가 옮아 가고 있다. NBA에서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이후 '적자(適者)'가 누구냐는 논쟁이 뜨거웠던 것처럼.

◆적자=김택용?!
마이클 조던은 공식적으로 후계자를 택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NBA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확실한 차기 주자를 지명했어야만 NBA의 인기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볼멘 소리였다. 그래도 조던은 묵묵부답이었다. 후계자란 누가 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증명해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블 인터뷰] 황제, 적자(適者)를 만나다…①


'포스트 임요환 시대'이지만 임요환에게 적자를 지명하라는 요구는 가혹하다. 아직 현역 프로게이머로 뛰고 있고 그의 꿈이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성공 시대를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요환은 간접적으로 후계자를 지명했다. 공군 복무를 마친 뒤 복귀 인터뷰에서 김택용(21. SK텔레콤 T1. 프로토스)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왜 임요환은 적자로 김택용을 선택했을까.

◆황제와 닮은 혁명가
임요환이 SK텔레콤 T1으로 복귀했을 때 김택용은 그 팀에 '있었다'. '있었다'를 강조하는 이유는 김택용과 임요환은 같은 팀의 유니폼을 입고 활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 2006년 10월 임요환이 공군에 입대했고 김택용은 1년이 지난 시점인 2008년 SK텔레콤으로 이적했다. 따라서 임요환과 김택용은 일말의 관계도 없었다.

임요환은 복귀하자마자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김택용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유인즉 "아이콘으로 갖춰야 할 많은 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할 것도 많기 때문이리라.

임요환과 김택용은 닮은 점이 많다. 우승 커리어를 살펴보면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임요환은 2001년 온게임넷이라는 게임 방송국이 주최하는 한빛스타즈 스타리그와 코카콜라 스타리그를 연거푸 우승했다. e스포츠계에서 공식 리그로 인정하는 대회를 연이어 제패한 선수는 임요환이 처음이다. 또 바로 이어 개최된 스카이 스타리그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임요환은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세 번 연속 결승전에 진출한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김택용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7년 MBC게임에서 주최한 스타리그인 MSL에 진출하자마자 스타플레이어들을 연파하면서 결승까지 올랐다. 당시 최강으로 꼽히던 저그 마재윤을 결승전에서 3대0으로 완파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택용은 다음 대회에서는 라이벌 프로토스로 경쟁 구도를 형성하던 송병구를 3대2로 제압하면서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곧이어 열린 MSL에서는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박성균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어려운 시기에 해당 종족의 길을 열었다는 점도 흡사하다. 임요환이 스타리그를 우승하던 2001년 이전까지 테란이라는 종족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저그와 프로토스 사이에서 구색을 맞추던 종족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임요환은 지금도 유명한 ‘드롭십’이라는 유닛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어냈고 이후 테란의 전성기를 이끌어간 선봉장 역할을 했다. 새로운 전략을 여럿 만들어내면서 ‘테란의 황제’ 뿐만 아니라 ‘전략의 달인’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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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용이 마재윤을 꺾기 전까지 프로토스는 우승 문턱에서 저그라는 종족의 한계에 번번이 부딪혀 고배를 마셨다. 특히 마재윤의 프로토스전 성적은 승률 90%를 상회할 정도였기에 프로토스의 악몽, 재앙이라고 불렸다. 그렇지만 김택용은 신인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전략을 들고 나와 마재윤을 흔들었고 3대0으로 완파했다. 김택용이 사용한 전략은 ‘커세어’라는 공중 유닛을 통해 저그의 상황을 체크한 뒤 병력을 쏟아내는 플레이였고 지금은 모든 프로토스 프로게이머들이 사용하는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임요환과 김택용의 빼어난 외모도 닮은 점이다. 임요환은 데뷔 초반 백옥 같은 피부와 가녀린 몸매로 여성 팬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러나 경기 안에서는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면서 남성 팬들에게는 우상이 됐다. 그 결과 임요환의 팬 카페 등록 인원은 50만 명이 넘어갔고 여느 연예인 못지 않은 팬층을 형성했다.

김택용은 남성에게 인기가 많은 프로토스 종족을 플레이하고 있지만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라지 않은 외모를 갖고 있다.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얼빠(얼굴에 빠져서 따라다니는 팬이 됐다는 뜻)‘라는 용어가 유행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택용의 미니 홈피에는 하루에 1000명이 넘는 팬들이 방문해 글을 남기며 인기 곡선을 그리고 있다.

◆황제와 다른 혁명가
임요환과 김택용은 닮은 점이 많지만 시대적으로 다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임요환이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던 시절 e스포츠는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프로게이머라는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게임 폐인’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IT 산업이 붐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지원도 없었던 시기다.

e스포츠 내적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임요환이 인기를 끌던 시절에는 팀의 이름을 달고 출전하는 대회도 없었다. 대부분 개인 타이틀이 걸린 대회였고 인물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개인 자격으로 동양 오리온이라는 후원사를 끌어 오는 등 임요환은 개인만으로도 개인 기업 형식을 띄고 활동했다.

[더블 인터뷰] 황제, 적자(適者)를 만나다…①


그러나 김택용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지금은 스타크래프트 대회의 지형도 크게 변했다.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프로팀에 소속되어야 하고 팀의 이름을 걸고 출전하는 프로리그라는 대회를 중심으로 리그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대회-온게임넷의 스타리그와 MBC게임의 MSL 등-도 존재하지만 프로게임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회는 프로리그다.

임요환이 개인리그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면 김택용은 철저하게 프로리그가 갖고 있는 시스템 안에서 성공한 스타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MBC게임 히어로라는 팀에 소속된 김택용은 프로리그 안에서 경험을 쌓았다. 김택용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같은 팀 두 명이 팀을 구성해 출전하는 팀플레이를 1년 가량 맡으면서 기본기를 닦았다. 이후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개인전을 주로 출전하면서 스타 플레이어로 입지를 굳혔다.

2008년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한 이후 김택용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에서 53승을 기록하면서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프로리그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임요환이 e스포츠의 초창기에 안정화 작업을 위한 지반을 닦았다고 표현한다면 김택용은 그 위에 씨를 뿌리고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는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e스포츠라는 터를 닦은 임요환이 같은 팀 후배이자 바통을 이어받아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할 김택용을 만나면 어떤 말을 전해줄까. 황제와 적자의 대담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②편에서 계속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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