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e스포츠 사랑에 푹 빠진 정신과 의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10271319570016940dgame_1.jpg&nmt=27)
"e스포츠-게임 체계적 연구 분석 절실"
프로게이머와 정신과 의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얼까. 공통점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굳이 찾아 보자면 머리를 써서 경제 활동을 펼친다는 점이다. 프로게이머들이 속해 있는 e스포츠 업계는 한 때 '마인드 스포츠'라고 불리기도 했다. 육체적인 활동은 적지만 눈으로 파악된 게임 속 상황 정보를 신속한 두뇌 회전을 손끝에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경쟁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프로게이머라고 부른다.
정신과 의사는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다스리는 뇌의 활동을 수치화, 객관화함으로써 부정적인 부분을 고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프로게이머와 정신과 의사는 뇌를 쓰고 뇌를 연구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서로에게 의지할 부분이 많다.
프로게이머의 뇌를 연구해보겠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의미있는 데이터나 결과를 도출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상시적으로 열리는 리그에 참가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습해야 하는 프로게이머에게 연구 대상이 되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연구하겠다고 나선 의사들 또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e스포츠계에 의미있는 도전을 하겠다고 나선 의사가 있으니 바로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한덕현 박사다.
◆게임 덕에 하버드로 유학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전임의로 활동한 한덕현 박사는 2008년부터 용산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 박사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뇌과학 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펼쳤다. 연구 과제는 바로 게임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하버드 대학교에 가게 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전임의를 마치고 공부를 더하려고 제안서를 넣는 과정이었는데 연구 주제를 정해야 했어요. 마약 중독, 우울증, 게임 중독 세 가지에 관해 연구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게임에 관해 연구를 한다면 우리가 받아들이겠다'는 답신이 왔어요. 학창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즐기는 사용자 중에 한 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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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 땅을 밟은 한 박사는 왜 하버드에서 자신을 불렀는지 알게 됐다. 우리나라는 PC방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노트북이 있다면 무선 인터넷도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인터넷 보급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서서히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미국에서도 인터넷 사용율이 높아졌고 2006년 유학 당시부터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하버드 입장에서는 인터넷 환경이 고도화된 상황을 잘 아는 연구 인력이 필요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에 대한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2006년의 미국은 그 당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제 연구 과제에 관심을 가졌던 거죠."
◆MBC게임과의 인연
한 박사는 2년 동안 하버드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귀국 후에도 지속하기 위해 마땅한 곳을 알아보던 차에 MBC게임 히어로의 전 감독이었던 김혁섭 감독과 연이 닿았다.
"개인적으로 LG 트윈스 야구단을 무척 좋아했어요. e스포츠계와 인맥을 닿으려고 하니 김혁섭 감독님이 LG 트윈스 선수 출신이면서도 MBC게임 히어로의 감독을 맡고 계시더라고요."
한 박사는 김 감독과 수 차례 논의한 끝에 MBC게임 히어로 선수들의 정신 분석 담당을 맡게 됐다. 자주는 아니지만 선수들을 병원으로 직접 불러 경기할 때의 심리를 물어보고 첨단 장비를 활용해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어떤 선수들이 연구를 도왔느냐고 묻자 "실험 결과가 나오더라도 해당자들은 알려줄 수 없다"며 '컨피덴셜(1급 비밀)'이라고 함구했다.
그는 "MBC게임 선수들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면서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매우 닮았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게임 중독자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어요. 올해 김 감독님이 경질되면서 MBC게임 선수들에 대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데이터는 갖고 있고 전 지금도 LG 트윈스 야구단 선수들의 스포츠 심리 분석을 하고 있거든요. 연구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점을 많이 느끼고 있죠.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의 정체성
한 박사는 e스포츠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게임과 프로게이머라고 규정지었다.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없다면 프로게이머도 존재할 수 없고 프로게이머를 통해 e스포츠, 즉 게임 콘텐츠도 영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프로게이머를 분석하다 보니 게임 내적인 영향보다 외적인 영향에 더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프로게이머가 연봉이나 가정, 사회적인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 성적이 나오지 않아요. 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마찬가지였어요."
그가 보기에 현재 프로게이머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하드 코어 게임 사용자와 아이돌처럼 인기를 끄는 인물 사이에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인기를 얻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에서 프로게이머에 대한 시각을 정립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프로게이머와 게임 중독자에 대한 구별이 되어 있지 않아요. 게임이 갖고 있는 역기능의 집합체를 프로게이머로 이해하고 있는 시선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피플] e스포츠 사랑에 푹 빠진 정신과 의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10271319570016940_3.jpg&nmt=27)
한 박사는 e스포츠계 내부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C방 폐인으로 낙인찍혔던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면 든든한 뿌리를 내부에서 썪게 만든다는 의미다. 직업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면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뒤를 잇는 선수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게임 중독자와 프로게이머 차이 크다
한 박사가 미국에서 공부한 뒤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온라인 게임 중독자와 프로게이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인터넷 중독을 만드는 뇌의 부위는 어디인가', '게임 중독을 치료하면 어떤 부위가 개선되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는 온라인 게임 중독자, 일반인, 프로게이머 등을 수십 회 면담했다. 정밀 검사를 하면서 알아낸 결과 프로게이머에게서는 게임 중독자와 다른 뇌 활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게임 중독자와 프로게이머 사이에는 세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느냐,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냐, 뇌 활동에서 어떤 쪽을 사용하느냐가 극명하게 다릅니다."
일상생활에 있어 차이점은 단순하다. 프로게이머들은 주로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지만 게임 중독자는 이를 관리할 의지가 떨어진다.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자들처럼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의지가 없는 쪽이 게임 중독이라는 것. 프로게이머의 활동은 일반 샐러리맨과 차이가 없지만 중독자는 사회 생활을 침해할 정도로 게임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구별점이다.
멀티 태스킹은 스토리 구성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 프로게이머와 게임 중독자들은 하나의 게임을 갖고 몰두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프로게이머는 이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그렇지만 게임 중독자들은 다양한 방식의 게임 전개보다는 반복성에 빠져 있기에 멀티 태스킹이 되지 않는다.
뇌를 연구했을 때 나타나는 차이점도 있다. 프로게이머를 연구했을 때 우반구가 전반적으로 밝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뇌는 주로 감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프로게이머가 경기를 할 때나 게임을 볼 때는 우뇌가 활발히 움직인다. 또 수행 능력의 중추로 알려진 전두엽의 활동도 왕성해 진다. 그러나 게임중독자의 경우 단순 반복 기능을 담당하는 좌뇌가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디.
"프로게이머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게임 중독자와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 중독을 예방하고 인터넷과 게임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프로게이머의 사례는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게임의 기능성 극대화
한 박사의 연구는 프로게이머에 대한 연구나 인터넷 또는 게임 중독자의 치료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최종 목표는 인터넷이나 게임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게임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 매개체입니다. 태생 자체가 야누스적이라 할 수 있죠.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면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너무 많이, 잘못 이용하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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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사는 요즘 기능성 게임을 활용한 치료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의료계에서는 게임을 잘 알지 못하고 게임 업계는 의료 분야를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기능성 게임은 일단 재미가 없어요.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인데 재미없는 게임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죠. 인지 기능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노인들, 지체아들도 재미 없는 게임은 하지 않습니다. 너무 복잡해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너무 단순해도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의료계나 게임계 모두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개발 과정에서 원활한 소통이 필요한 시기죠."
한 박사는 인기를 얻고 장수하는 게임의 특징을 반복 속의 비반복성으로 꼽았다.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은 몇 가지 직군의 캐릭터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플레이어가 달라지면서 반복성이 사라진다. 스타크래프트도 하나의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누구냐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며 흥미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게임 등급을 정하는 기준도 폭력성이나 선정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반복성을 기준에 넣어야 합니다. 신체 나이는 20세이지만 정신 연령이 7세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7세 등급을 받은 게임이어야 하죠. 이런 방식으로 기능성 게임을 만들어야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기능성 게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기능성 게임이라는 장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게임 회사는 물론 의료계가 이러한 현실을 적시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단순히 사업비를 따내기 위한 제안이 아니라 게임을 통한 치료임을 감안한 제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연구 필요
프로 야구 LG 트윈스 선수들을 만나 직접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 박사는 e스포츠와 게임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엿봤다. 스포츠 심리학을 부수적으로 연구하고 있기도 한 그는 "프로 야구 선수는 야구가 무언지도 모르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고 프로에 와서 야구라는 커다란 숲을 보며 새롭게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라는 콘텐츠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끊임 없이 하며 이론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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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박사가 e스포츠와 게임에 매료된 이유는 아직까지 체계적인 이론화 작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가 형성된지 e스포츠는 10년, 게임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새롭다.
"프로게이머를 육성하는 과정만 하더라도 이론적인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요. 겉으로 보여지는 전략과 전술은 다양하지만 선수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죠. 장기적인 연구, 체계적인 이론이 필요합니다. 이건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고요."
e스포츠를 향한 한덕현 박사의 사랑이 외사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글=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