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베팅 사건으로 인한 승부 조작이 공개된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선수는 누구일까? 가담하지 않고 정직하게 경기를 했던 많은 선수들이 일차적인 피해자일 것이다. 사상 초유의 불미스런 사태로 인해 후원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은 온게임넷과 MBC게임 등 방송사일 수도 있다. 선수들을 응원했던 팬도 실망감을 느낀 큰 피해자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기 전 누리꾼들의 구설수에 오르며 마녀사냥을 당했던 이스트로 신상호가 장본인이다.
이제는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추스렀지만 그동안 힘든 나날을 보낸 신상호는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는 억울한 누명과 아버지가 수술을 받는 악재가 겹치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역전패에 대한 트라우마
신상호에게 2009년 10월24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루머가 나돌게 된 발단이 된 경기를 치른 날이기 때문이다. STX와 경기에서 3세트 '아웃사이더'라는 맵에서 김윤환과 경기한 신상호는 승기를 잡았으나 공격해야 할 타이밍을 살리지 못했고 경기를 질질 끌다 결국 역전패를 당했다.
"이 경기 하나로 저는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아야 했어요. 유리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저 또한 많이 후회했죠. 하지만 이 경기가 제 인생을 이렇게 많이 바꿔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신상호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이 시작되기 전 동료들과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고 다짐했다. '신 트리오'인 신대근과 신희승이 잘해주고 있었고 박상우 역시 에이스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신상호는 이번 시즌 이스트로가 일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갔을 때 신상호는 승수를 많이 챙기지 못했다. FA 덕분에 이스트로 안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게 된 신상호 입장에서는 조급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승수를 쌓아야겠다는 조바심에 무리하다 패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역전패를 당하고 난 뒤 신상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경기를 나갈 때마다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은퇴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신상호는 김현진 감독을 찾아가 “만약 내가 지금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동안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스트로는 제 혼이 담긴 팀이에요. 꼭 프로리그 포스트시즌에 진출 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창 연습에 몰두했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빨리 팬들의 머리 속에서 그 때 경기를 지워주고 싶었어요."
노력하던 신상호에게 ‘승부 조작’ 누명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월급을 받지 못하던 2군 선수들에게 용돈을 줬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하는 등 이스트로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신상호. 하지만 누리꾼들의 억측으로 신상호는 마우스를 잡는 것이 두려운 상황에 처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누구나 힘들 때면 '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진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상호도 악플이나 악성 루머 때문에 자살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인생을 쉽게 포기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작금의 사태를 맞이했을 때 정말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살 용기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제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왜 그들이 자살을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들어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승부조작을 했다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어요. 길거리에서 '정말 승부 조작을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어요. 집안에 있으면서 '내가 과연 이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상호는 5년 넘게 자신의 꿈을 위해 열정과 노력을 모두 쏟아 부었던 e스포츠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왔는지 멍한 기분만이 신상호의 머리 속을 메우기 시작했다고. 신상호는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할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제가 승부조작을 했다는 소문이 2월 초부터 돌았다고 하더라고요. 경기장에 가면 왜 사람들이 저에게 말도 안 걸고 이상하게 쳐다봤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 됐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데 현실에서 제가 그 주인공이더라고요.”
◆아버지 수술로 ‘설상가상’
신상호는 억울한 누명을 썼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동료들이 굳게 믿어 줬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희망의 끄나풀을 잡아갈 때쯤 아버지께서 쓰러졌다. 설상가상이었다.
"연습하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계속 전화가 왔어요. 원래 연습 시간에는 급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단 번에 눈치챘죠. 전화를 받아보니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며 울먹이시더라고요. 부랴부랴 집으로 내려갔죠."
아버지가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상호는 그동안 다잡았던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승부조작을 했다는 온갖 오해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티던 신상호는 결국 마음이 무너졌다.
"다행히 아버지 수술이 잘 돼 한시름 놓았는데 아버지께서 수술 후 완치가 안되신 상황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시면서 화근이 됐어요. 아버지께서 승부 조작 기사 댓글에 저를 지칭한 온갖 욕이 난무하는 것을 눈으로 보신 것이죠.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아버지는 제가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어요. 수술 후 아직 완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버지는 ‘댓글로 이러는 사람들을 당장 찾아라’며 울분을 토하셨어요. 화를 내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신상호는 처음으로 누리꾼들의 한 댓글로 인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눈 앞에서 봤다. 수술을 받고 회복 단계에 있던 아버지가 다시 쓰러지자 신상호는 그동안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누리꾼들을 모두 찾아가 그들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다.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누리꾼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제가 아니라는 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지만 아무도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누리꾼들 역시 아무런 반성도 없더군요. 사람을 죽일 뻔했는데 말이죠.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서 내뱉은 한 마디가, 댓글 몇 줄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인터뷰를 보고도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을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또 다른 꿈을 향해
소문이 났을 때 신상호가 나서서 '나는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누명이 벗겨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신상호가 입을 다무는 사이 너무나 많은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신상호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소문이 퍼질 때 아니라고 말했다면 누가 믿어줬을까요? 그리고 제가 그런 글을 쓴다면 오해받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죠. 만약 글을 안 쓰면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여론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어요.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4월초부터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온 5월말까지 두 달 동안 신상호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e스포츠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뒤 신상호는 뒤돌아 보지 않고 순천으로 내려갔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두 달간 방송도 보지 않았어요. 5년간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고 제 꿈을 짓밟은 이 곳에 있으면 숨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이요? 많이 마음이 가라 앉았어요. 하지만 다시 마우스를 잡는 것은 아직은 두려워요."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신상호는 그제서야 마음을 가라앉혔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선수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늦은 상황이라는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멈출 수가 없었다.
"언론을 통해 인터뷰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제 누명을 벗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다만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누리꾼들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어요. 글 하나로 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애정 담은 비판이 아닌 무조건적인 비난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충격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신상호는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e스포츠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정도로 진지하게 미래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또 다른 꿈을 꾸기 위해 비상하려는 신상호에게 이제는 응원의 박수를 쳐줄 때가 아닐까. 더불어 누리꾼들의 무분별한 댓글 문화도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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