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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포인트] 허영무가 완성한 가을의 전설이라는 시나리오

SK텔레콤 어윤수와의 경기에서 다전제 교범 선보여

재미있는 드라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연급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하기에 비주얼로 승부하거나 치밀한 복선, 깔끔한 대사 등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경쟁하는 부류로 구별된다. 전자의 대표작이 '아이리스'라고 한다면 후자는 '최고의 사랑'이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리그도 드라마의 트렌드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5전3선승제처럼 두 선수가 여러 세트를 치러야 하는 경기는 선수들마다 풀어가는 스타일이 다르다. 이영호와 같은 선수는 큰 전략의 변화 없이 기량을 믿고 풀어가는 경향이 강하고 전략을 자주 쓰는 선수들은 매 세트 새로운 전략을 통해 상대를 흔드는 두뇌 싸움을 걸어 온다.

삼성전자 칸 허영무는 이영호와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생산력이 받혀주기 때문에 전략을 쓰기 보다는 같은 전략을 계속 구사하면서 타이밍으로 승부를 보든지, 전투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2011 4강전 SK텔레콤 T1 어윤수와의 경기에서 허영무는 치밀한 복선을 깔면서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축했다. 큰 경기 경험이 적은 어윤수를 상대로 흔들기에 나선 허영무는 두뇌까지 갖춘 '허느님'으로 거듭났다. 허영무의 결승전 진출 시나리오를 철저히 분석했다.


◆다크 아콘은 왜 나왔을까
허영무와 어윤수의 1세트는 '신피의능선'에서 펼쳐졌다. 프로리그에서도 저그와 프로토스의 경기가 주를 이룰 정도로 '신피의능선'은 저그는 물론, 프로토스도 소화할 만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객관적인 성적으로 보면 저그가 프로토스보다 많은 승수를 따냈는데, 이유는 히드라리스크 타이밍 러시에 이어지는 뮤탈리스크 전환에 프로토스가 대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허영무는 독자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앞마당을 가져갈 수 있는 입구 지역에 게이트웨이를 먼저 건설하면서 질럿을 양산했다. 일반적으로 포지와 캐논 건설에 이어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질럿을 확보하면서 캐논 숫자를 줄이고 여차하면 게릴라 전술까지 펼치겠다는 의도였다.

어윤수는 이 전략을 뮤탈리스크로 무너뜨리려 했다. 아무리 질럿이 스피드와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하더라고 공중을 공격할 수는 없는 법. 뮤탈리스크로 프로토스의 앞마당 확장 기지에서 견제를 펼친 뒤 서서히 럴커를 확보해 조이기를 시도하고 하이브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허영무는 질럿을 모은 뒤 치고 나오면서 다크 템플러를 쓸 것처럼 페이크를 썼다. 어윤수가 뮤탈리스크를 수비에 동원하게 강제하겠다는 김택용식 운영법을 선보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허영무는 다크 아콘을 만들면서 변수를 만들었다. 다크 템플러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어윤수는 뮤탈리스크로 공격을 시도했고 허영무의 앞마당 지역을 이동하다가 '붉은 구슬'을 맞닥뜨렸다. 어윤수의 움직임은 일순간 정지했고 더 이상의 견제를 하지 못했다.

저그전에서 다크 아콘은 양날의 검이나 다름 없다. 다크 아콘의 마엘스트롬이 개발되기 전 시점에 히드라리스크 러시가 들어온다면 다크 아콘은 쓸모 없는 유닛이 된다. 차라리 다크 템플러 2기를 보유하는 것이 히드라리스크 공격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뮤탈리스크를 택한다면? 자원 소모가 많은 뮤탈리스크는 다크 아콘의 활용도를 높이는 유닛이다. 일단 생산 시점이 히드라리스크보다 길며-레어와 스파이어를 완성해야 하니까-일점사를 위해서는 오버로드 한 기를 끼워 넣어 뭉쳐다녀야 하기에 다크 아콘에게는 '쥐약'이다. 마엘 스트롬을 개발하고 마나를 채울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에 운 없으면 한 부대가 단숨에 몰살당한다.

허영무의 다크 아콘을 본 어윤수는 프로브 견제 타이밍을 놓쳤고 뮤탈리스크를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히드라리스크와 럴커로 전환해야 했던 어윤수는 허영무와의 장기전을 치러야만 했다.


허영무의 게임 아이디는 '장비'다. 삼국지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장비는 무식하지만 우직하기로 따지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허영무는 우직하게 중장기전으로 끌고 갔고 6시 확장 기지를 잃었지만 어윤수의 12시 확장 기지를 파괴하는 우직함을 앞세워 1세트를 따냈다. 다크 아콘을 보여주면서 어윤수의 뮤탈리스크 게릴라를 사전에 차단했기에 나올 수 있는 뒷심이었다.

◆꼼꼼한 정찰
프로토스 가운데 저그를 상대로 가장 높은 승률을 구가하고 있는 선수는 SK텔레콤 김택용이다. 데뷔 초부터 내로라하는 저그를 잡아내며 이슈를 만들었던 김택용은 10-11 시즌 프로리그에서 저그를 상대로 80%를 상회하는 승률을 유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택용이 저그를 쉽게 꺾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능력은 정찰력이다. 저그가 레어로 전환하고 저글링의 스피드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기 전까지 김택용은 프로브를 살리면서 체제를 모두 확인한다. 저그의 속내를 프로브 한 기로 모두 확인하고 캐논 숫자와 병력의 수, 테크트리까지 완벽하게 맞추기 때문에 저그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2세트 '패스파인더'에서 보여준 허영무의 정찰력은 김택용급이었다. 첫 프로브가 저글링에 의해 파괴됐지만 허영무는 한 기의 프로브를 더 보낸다. 어윤수가 앞마당만 가져간 채 레어로 전환하고 히드라리스크를 뽑으면서 드롭까지 이어지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는 사실을 허영무는 두 번째 프로브 정찰을 통해 완벽히 간파했다.


어윤수가 프로브 정찰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본진과 앞마당이 이어지는 지점에 드론 한 기를 배치했지만 이 드론이 배신을 해버린 것이 패인이었다. 충분히 프로브의 이동 경로를 차단할 수 있었지만 드론이 가운데가 아니라 1/3 지점에 있었기에 허영무의 프로브는 마음 편히 저그의 본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히드라리스크에 의해 파괴됐다. 자신의 명은 다했지만 주인인 허영무에게는 완벽한 정보를 제공한 이 프로브야 말로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다.


어윤수의 체제를 눈치챈 허영무는 질럿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도 승리했다. 커세어를 모으고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허영무는 질럿과 커세어로 지상과 공중을 모두 방어했다. 어윤수가 무리하면서 오버로드를 본진으로 밀어 넣었지만 커세어가 히드라리스크와 럴커의 드롭을 저지했고 질럿이 지상에서 수비에 동원되며 완승을 거뒀다.

어윤수가 럴커를 섞어주면서 허영무의 본진에서 일하던 프로브가 앞마당으로 이동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커세어가 퇴각하는 오버로드를 절반 이상 잡아내면서 2차 공격을 저지했기에 허영무는 수비만으로 어윤수를 꺾었다. 경험이 일천한 어윤수에게 0대2로 끌려가는 상황은, 그것도 저그가 프로토스를 맞아 12승4패로 크게 앞서 있던 2세트를 잃었다는 점은 심리적인 압박을 더했다.

◆준비된 3게이트
3차전에서 허영무가 꺼낸 카드는 질럿 러시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스코어인 2대0으로 앞선 상황에서 허영무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어윤수의 약점을 파고 들었다. 1세트에서 다크 아콘으로 시간을 번 뒤 장기인 장기전에서 승리했고 2세트에서는 어윤수의 맹공을 모두 막아냈기에 과감하게 파고들 틈을 만들었다. 이 틈은 다름 아닌 타이밍이었다.

'라만차'에서 프로토스가 저그를 맞아 선택할 전략은 몇 가지 없다. 앞마당에 넥서스를 가져간 뒤 커세어로 공중을 장악하고 병력을 모아 힘싸움을 펼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허영무의 3세트 시작은 일반적인 프로토스의 움직임이었다. 게이트웨이와 포지로 입구를 좁혔고 캐논을 건설했다.

어윤수도 일반적인 패턴이라 생각하고 일반적인 저그의 대응책을 구사했다. 앞마당에 이어 제2의 스타팅포인트 확보에 나섰다. 5시에 위치한 어윤수는 앞마당에 이어 7시 앞마당 지역에 해처리를 가져갔고 드론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허영무는 이를 파고 들었다. 스타게이트를 짓지 않으면서 세이브한 미네랄 150을 게이트웨이를 짓는데 쓴 허영무는 세 번째 게이트웨이까지 확보하면서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질럿이 3기까지 모이고 드라군이 한 기 충원된 타이밍에 병력을 내려보냈을 때 어윤수의 움직임은 평범했다. '이 정도는 생산되는 저글링과 입구에 지어지고 있는 성큰 콜로니로 막을 수 있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질럿 3기가 충원되는 순간 어윤수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성큰 콜로니 하나와 저글링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는 숫자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피드 업그레이드까지 되자 허영무의 질럿은 더욱 강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글링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컨트롤이 통하는, 질럿으로 변했다.

허영무는 7시 앞마당에 지어진 성큰 콜로니를 연파했고 해처리까지 깨뜨렸다. 어윤수가 수비에 병력을 동원하는 동안 12싱 넥서스까지 지었고 캐논을 4개나 지었다.

승리를 확신한 허영무는 1세트에서 깔았던 복선을 3세트에 드러냈다. 다크 아콘이 등장한 것이다. 어윤수가 반전을 노리기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뮤탈리스크 게릴라를 지켜보고 있던 허영무는 다크 아콘의 마나가 확보되자 마엘 스트롬을 걸었다. 승리를 확정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허영무는 실수인지, 의도인지 뮤탈리스크를 잡지 않았다. 어윤수의 뮤탈리스크는 한 기도 잡히지 않았고 마법이 풀리면서 모두 살아 도망갔다.


허영무는 굳이 뮤탈리스크를 잡지 않아도 이미 이긴 상태였다. 6개의 게이트웨이에서 드라군과 하이템플러가 쏟아져 나왔고 3분이 지나자 공격을 시도했다. 어윤수의 1시 몰래 확장은 질럿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고 5시 앞마당 해처리는 드라군에 의해 깨져 나갔다. 진에어 스타리그 2011 결승전 티켓은 허영무의 손에 쥐어졌다.

경기를 마친 뒤 허영무는 "다크 아콘의 마엘 스트롬이 제대로 걸렸지만 아콘의 진출로를 질럿이 막고 있어 잡지 못했다"며 웃었다. 과연 허영무가 실수로 잡지 않았을까? 승패가 걸려 있던 순간이었어도 허술하게 컨트롤했을까? 허영무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열심히 뮤탈리스크 잡기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승리의 시나리오는 완성되어 있었고 마침표는 어느 때든 찍을 수 있었기에 연장 방송에 들어간 드라마처럼 늘어지게 운영했을 것이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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