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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프로토스전에서 벙커링을 자주 시도하는 이영호. 임요환이 저그전에서 보여준 벙커링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 게이트 더블 넥서스에 최적화된 테란의 카드
연계 전술 확실해야만 승리 담보할 수 있어

지난 주에 연재를 시작한 '핀포인트'에 보여준 많은 분들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벙커링의 기원에 대한 지적도 많네요. 임요환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도현이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에 임요환이 첫 선을 보였다고 적은 것은 그만큼 임팩트가 컸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면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합니다.

이번 '핀포인트'는 임요환이 유행시킨 벙커링이 어떻게 변화되었느냐를 고찰하는 시간으로 꾸며볼까 합니다. 홍진호와의 EVER 스타리그 2004 4강전에서 벙커링이 저그를 상대로 효율적이라는 증명을 받은 이후 테란 선수들은 저그를 맞아 자주 벙커링을 시도했습니다. 저그가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기 편한 맵에서는 무조건 시도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죠.

[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 커맨드라는 말을 만들어낸 전상욱.

◆가까우면 벙커링, 멀면 더블 커맨드
임요환과 함께 SK텔레콤 T1에서 활동하던 테란 전상욱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그와의 매치업이 성사되면 일단 정찰을 한 뒤 "거리가 가까우면 벙커링을 시도하고 멀면 더블 커맨드 전략을 쓰면 된다"라고요. 가로나 세로 방향에 저그가 위치한다면 벙커링을 추진하고, 대각선의 거리에 스타팅 포인트가 배정될 경우에는 1개의 배럭에서 머린을 생산하면서 앞마당에 커맨드 센터를 가져갈 경우 불리할 것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임요환이 홍진호를 상대로 충격적인 벙커링을 시도한 이후 테란의 벙커링은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지난 주 칼럼에서 보신 바와 같이 임요환의 벙커링은 SCV가 4~5기 정도 머린과 함께 진출합니다. 저그가 자원을 채취하지 못하는 것만큼 테란 또한 자원을 가져가지 못하는 폐단이 생기죠. 벙커링으로 피해를 주지 못한다면 테란이 저그를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이후 테란 선수들은 벙커링을 계승하되, 발전된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SCV를 2~3기 정도만 대동해서 벙커를 짓는 패턴으로 변화됐습니다. 벙커가 완성되기 전까지 SCV와 머린으로 드론을 잡아내고 벙커가 완성되면 최고의 상황, 완성되지 못하더라도 드론을 2~3기만 잡으면 이익이라는 개념을 잡게 된 것이죠. 벙커링에 올인하지 않으면서 전황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한 것입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저그전에서 테란이 벙커링을 덜 사용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저그들의 수비 능력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이다.

◆벙커링? 드론으로 막는다
저그 선수들의 대처법도 금세 나왔습니다. 앞마당에 해처리를 짓지 않고 스포닝풀을 먼저 가져간 뒤 일단 저글링을 생산해서 테란이 벙커링을 시도할 때 역공을 펼치는 작전이 일반적인 대응 방안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한계를 드러냈죠. 테란이 SCV로 정찰을 시도한 뒤 저그가 앞마당을 가져가지 않으면 진출하지 않았기에 저그가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빠져 버렸습니다.

저그 선수들은 공격적으로 활용되는 벙커링을 드론으로 막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앞마당에 해처리를 건설하되, 파괴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테란이 벙커링을 시도하면 일단 드론으로 몸싸움을 시도합니다. 벙커를 짓고 있는 SCV를 공격하기 보다는 뒤따라 오는 머린을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잡아내면 된다는 신개념을 발견한 것이지요.

사실 머린은 SCV보다 체력이 적기 때문에 드론 4~5기로 두 차례 정도 공격을 성공시키면 잡아낼 수 있습니다. 머린이 벙커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저그로서도 피해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드론으로 머린을 끊어낸다면 저글링이 생산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머린이 벙커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뒤 저글링과 드론이 동반 러시를 감행해서 테란을 꺾는 경기가 나오기도 했죠.

◆프로토스전에도 쓰이는 벙커링
저그의 대처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적극적인 벙커링은 오히려 프로토스전에서 사용됐습니다. 프로토스와 테란이 보여준 전략적인 상관 관계를 보면 벙커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상관 관계상 프로토스는 테란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테란이 배짱 플레이를 펼치면 초반부터 몰아치면서 돌파를 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2개의 게이트웨이를 건설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탱크가 늦게 확보되는 테란으로서는 수비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토스는 테란과의 역학 관계를 거꾸로 활용합니다. 공격 유닛이 생산되는 게이트웨이를 건설하지 않고 앞마당 지역에 넥서스를 먼저 짓는 것이지요. 테란이 수비적인 마인드를 갖고 경기를 풀어간 상황에서 프로토스가 자원을 한 곳 더, 그것도 일찌감치 가져가게 되면 중후반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테란이 팩토리를 확보한 뒤 탱크와 벌처를 모으면서 앞마당을 가져갈 경우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기에 프로토스가 경기를 풀어가기가 수월해지죠.

프로토스가 넥서스를 먼저 확보하며 게이트웨이를 뒤늦게 늘리는 전략을 구사했을 때 테란이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벙커링입니다. 2010년 1월17일에 열린 EVER 스타리그 2009 결승전 KT 롤스터 테란 이영호와 CJ 엔투스 프로토스 진영화의 경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대2로 끌려가던 진영화는 필승 전략으로 노 게이트웨이 더블 넥서스 전략을 시도합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EVER 스타리그 2009 결승전 4세트에서 이영호가 선보인 벙커링. 더블 넥서스를 상대로 초반에 테란이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전략임에 틀림 없다.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로 초반만 넘기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을 택한 것이지요. 뒤늦게 진영화의 전략을 확인한 이영호는 정찰 병력을 포함, 5기의 SCV를 이끌고 진출합니다. 진영화의 앞마당 넥서스 지역에 벙커를 짓던 이영호는 진영화가 프로브를 끌고 나오자 짓던 벙커에서 SCV를 빼놓습니다. 다리 지역에서 전투를 펼치면서 머린과 벌처, SCV로 질럿 한 기를 잡아낸 이영호는 재차 벙커링을 시도하면서 프로토스의 앞마당 넥서스를 파괴하게 되죠. 이후 탱크와 벌처, 머린이 계속 전장에 동원되면서 이영호는 진영화의 자원 채취 시점을 늦추며 승리하게 됩니다.

◆점차 세련되어지는 벙커 전략
벙커링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합니다. 프로토스전에서 사용되는 벙커링 또한 발전됐는데요. 얼마전에 열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KT 롤스터와 STX 소울의 경기에서도 보여집니다. 테란은 이영호이고 프로토스는 백동준인데요. 백동준은 이번 시즌 테란만 세 번 상대해서 3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백동준이 게이트웨이를 짓지 않고 앞마당에 넥서스를 건설하는 것을 확인한 이영호는 자신의 앞마당에 커맨드 센터를 지으면서 프로토스의 앞마당 넥서스와 다소 거리가 있는 지역에 벙커를 짓습니다. 그러면서 생산된 머린을 벙커 근처로 이동시켰고 벙커가 완성되자 머린을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벙커의 사정거리가 닿는 지역에 또 하나의 벙커를 이어서 건설합니다. 소위 말하는 '연벙(연속해서 짓는 벙커) 전략'인데요. 2개의 벙커가 완성되면서 백동준의 앞마당 넥서스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드라군이 생산될 때까지 입구를 봉쇄하면서 자신의 전략을 꾸려나갈 시간을 벌었습니다.

중반전까지 무난하게 넘긴 이영호는 성공적으로 병력을 모아갔고 서서히 조여들어가면서 백동준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냅니다.

[이소라의 핀포인트] 이영호가 진화시킨 벙커링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1 2라운드 STX 소울과의 경기에서 이영호가 선보인 연속 벙커링 전략. 벙커링은 초반 전략으로 점차 다듬어지고 있다.

◆백전백승의 전략은 없다
프로토스전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벙커링이지만 사용한다고 해서 100% 승률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더블 넥서스를 시도하는 프로토스를 상대로 벙커링을 통해 앞마당 넥서스를 파괴했지만 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그를 상대로 벙커링을 시도하다가 막힐 경우보다 프로토스전에서 벙커링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간혹 벙커를 너무나 멀찌감치 지어서 넥서스를 깨지 못한다거나-백동준과 염보성의 '일렉트릭서킷' 경기가 그랬죠- 파괴한 이후에도 병력 생산을 원활하게 하지 못해 질 수도 있습니다.

전략은 누가 쓰느냐, 어떻게 사용하느냐, 연계된 운영 방안을 얼마나 치밀하게 짜오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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