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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SK텔레콤 김도우 "우승이라는 비 맞은 뒤 땅 굳었다"

[피플] SK텔레콤 김도우 "우승이라는 비 맞은 뒤 땅 굳었다"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 중 '내 것 인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사에 엄청난 공감을 느끼고 있는 한 선수가 있죠. 실연을 당했냐고요? 아닙니다. 얼마 전에 차지한 우승컵을 바라보며 위에 적힌 가사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승컵에 내 이름이 써 있어 내 것 인듯 하지만 우승했다는 기쁨을 누린 적이 없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자기 손으로 따낸 우승컵이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 선수는 바로 얼마 전 팀 동료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SK텔레콤 T1 프로토스 김도우입니다.

우승을 했으니 행복한 미소가 만면에 가득해야 할 것 같지만 김도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우승했다는 것조차 가끔 잊는다고 합니다. 우승하기 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악플로 힘든 나날을 겪는 일은 우승자이기에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요.

우승하자마자 부진에 빠진 김도우는 전보다 더 열심히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승자로서 대접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김도우의 솔직한 심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저 우승자 맞죠?"
김도우가 우승하고 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소위 '종족빨'을 받았다는 폄하였습니다. 김도우가 우승을 위해 흘렸던 땀과 눈물은 모조리 무시된 채 그저 프로토스가 강해 우승했다는 말만이 그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우승을 축하하는 목소리는 극히 소수였습니다. '어떻게 네가 우승했냐'는 우스갯소리만이 그가 들은 대부분의 우승 축하 메시지였습니다.

김도우도 사람입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승을 한 뒤 자신이 우승자라는 것을 자각조차 못할 정도로 비난과 따가운 눈초리만을 받은 순간들은 처음으로 우승한 김도우에게는 낯설기만 했습니다. 개인리그 우승에 이어진 프로리그에서의 연패로 인해 비난은 거세졌고 김도우는 수렁에 빠졌습니다.

"우승하고나면 회식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기쁨을 누릴 시간이 있잖아요. 그런데 팀이 프로리그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리그가 끝나고 나서 곧바로 연습했어요. WCS 시즌2 결승전 끝난 당일이요. 다음날이 바로 프로리그 경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우승한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요. 우승했다는 기쁨은 아마 통장에 상금이 들어오면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피플] SK텔레콤 김도우 "우승이라는 비 맞은 뒤 땅 굳었다"

김도우가 우승한 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동료인 어윤수를 이기고 우승했기 때문입니다. 동료가 3연속 WCS 준우승을 차지한 상황에서 김도우는 제대로 웃지도 못했죠. 그렇게 김도우는 기쁨을 안으로 삭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평범한 일상이 아닌 예전보다 훨씬 힘든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들었어요. 한 번도 우승자라고 우쭐한 적도 없고 방심한 적도 없어요. 우승자 대접을 받아야 그런 우쭐한 마음도 들죠.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인걸요. 그런데도 초심을 잃었다, 벌써 자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많이 억울했어요. 차라리 '종족빨'로 우승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나을 정도였어요. 아직도 저는 예전만큼 아니, 더 열심히 연습해요."

우승 직후 반응을 본 김도우는 어떻게든 우승자로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됐고 오히려 프로리그에서 연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경기력도 좋지 않았죠. 김도우에게 쏟아진 것은 "운으로 우승한 사람"이라는 비난뿐이었습니다.

"할 말이 없었어요. 부담감이 심해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무기력하게 패했죠.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제 책임이에요. 하지만 그저 한번쯤은 저도 우승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몇 번의 팀 해체 위기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근성을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축하 받지' 못한 우승컵을 가진 김도우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했습니다. 멍든 가슴을 안고 김도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포기하면 진짜 우승하고도 패배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이를 악물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지금처럼 노력한다면 분명히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김긍정 선생'
만약 김도우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선수였다면 억울한 마음만 안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불만만 쌓인 채로 지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도우는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김도우는 항상 행운의 여신이 따라다닌다고 자부합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소속팀 해체를 겪었지만 김도우만이 유일하게 전 소속팀보다 안정적인 소속팀을 구했고 항상 연봉도 올라갔습니다. 김도우는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이 자신을 따라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사실 프로리그에서 패한 뒤 사람들의 비난을 바라보며 '왜 나한테 이렇게 심한 비난이 쏟아질까' 생각해 봤어요. 결국 결론은 우승자였기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이 축하해 주지는 않지만 결국 제 우승을 인정하고 우승자라고 바라보기에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우승자가 아닌 것 같다는 좌절감을 극복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팬들의 비난 덕분이었어요. 결국 전 우승자이기에 한 경기만 패해도 이런 비난을 듣는 것이니까요."

[피플] SK텔레콤 김도우 "우승이라는 비 맞은 뒤 땅 굳었다"

김도우는 자신이 이기든 지든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예전과 비교했을 때 차라리 지금이 더 행복한 상황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방황하고 힘든 나날을 끝낸 것도 그만의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입니다.

"우승자이기에 받는 비난을 감수해야죠. 그건 우승컵과 상금만큼 저에게 주어지는 책임이잖아요. 이제는 팬들에게 운으로, '종족빨'로 우승한 것이 아니라 저만의 노력과 땀방울로 우승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아요."

물론 그 증명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김도우가 2회 연속 우승이라도 해야 이 비난이 가라앉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군단의 심장으로 치러진 스타크래프트2 개인리그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김도우에게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김도우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나를 인정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묵묵히 연습으로, 결과로 보여줄 것입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작은 응원도 큰 힘이 돼요"
김도우는 힘들 때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우승 후 힘들 때 최연성 감독이 "앞으로 더 노력해야 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며 격려의 말을 던진 것이 김도우에게는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작은 응원도 좋습니다. 힘들어하는 선수들에게는 '파이팅'이라는 세 단어가 새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되곤 해요. 앞으로도 김도우를 계속 일어서게 만드는 것은 팬들의 응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도우는 SK텔레콤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거듭나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개인리그에서 우승했지만 차기 개인리그는 욕심을 버릴 생각이라고 하네요. 우승자이기 때문에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경기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경험한 김도우는 절대강자가 나오기 힘든 스타2에서 억지로 절대 강자가 되기 보다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개인리그 2연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팀을 위한 선수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개인리그에서 아무리 잘해도 프로리그에서 못하면 팬들도, 프로게이머들도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저 역시도 인정 받는 선수가 되기 위해 팀을 위한 선수로 거듭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개인리그 영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요?"

[피플] SK텔레콤 김도우 "우승이라는 비 맞은 뒤 땅 굳었다"

팬들의 작은 응원에도 눈물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는 소박한 마음의 소유자 김도우.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지만 팬들의 비난조차도 열심히 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며 묵묵히 노력하는 김도우에게 지금은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오는 9일에 열리는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선수가 돼 장수하는 프로게이머로 거듭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 주실거죠?"

[데일리e스포츠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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