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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준우승자 정명훈도 헹가래친 SK텔레콤

지난 11월 1일 인크루트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준우승을 차지한 SK텔레콤 정명훈이 상패를 받을 때 감독과 코치, 동료들이 올라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행가래를 쳤다. 지금까지 백 번 넘게 치러진 e 스포츠 결승전 무대에서 준우승자가 기쁨을 표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기에 현장을 찾은 팬들이나 시청자들은 충분히 생소함을 느낄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기자는 송병구가 우승을 차지한 뒤에 흘린 눈물보다 더한 감동을 느꼈다. 우승자는 칭찬받고 추앙받지만 2등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우리네 문화를 바꾼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2위에게 박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은,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금메달만이 최고로 여겨진다. 1등 주의가 낳은 폐해다.
e스포츠계도 그랬다. 송병구는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4번이나 2인자에 머물렀다. 준우승을 차지하고서도 고개를 묻고 무대 한 켠에 장식품처럼 서 있었다. 마치 죄인처럼. 그러나 정명훈은 달랐다. 정명훈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SK텔레콤 T1이라는 팀이 달라졌다. 2등에게도 샴페인을 쏟아 부었고 우승자에게나 주어지던 헹가레라는 선물을 받았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2위의 모습은 생소하긴 하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준우승자의 슬픔과 괴로움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대에 함께 오른 SK텔레콤 선수들의 얼굴에서도 진한 동료애가 묻어났다.

한발 앞서 e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가던 SK텔레콤이 이번 스타리그 결승전을 계기로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패한 선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주는 축하의 문화, 준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흘렸던 땀방울을 보람되게 만들어 주는 기쁨의 문화, SK텔레콤이 만들어 낸 새로운 문화는 여느 프로 스포츠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준우승자가 슬퍼하는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1위 지향적인 사고 방식이 낳은 심리적 압박감이다. SK텔레콤이 보여준 칭찬의 문화는 이런 풍조를 없애는 첫 걸음이라 하겠다. 1위를 하지 못했지만 정명훈의 아래에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34명이 있다. 그들과 경쟁해서 2위라는 자리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SK텔레콤은 현재 프로리그에서 3승5패를 기록하며 10위에 랭크돼 있다. 최악의 성적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언제든 상위권으로 올라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준다. 역사적으로도 SK텔레콤은 거짓말처럼, 드라마처럼 뒷심을 발휘하며 결승전에 올랐고 우승한 적도 있다. 이러한 기적의 중심에는 팀워크를 기반으로 한 단결력이 자리하고 있다. 2005년 팀워크라는 화두를 실천에 옮겼고 다른 팀에게 '전염'시킨 주역이다.

2008년 SK텔레콤은 또 다른 문화를 전파하려 한다. 칭찬이라는 기제를 통한 조직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11월1일 정명훈은 졌지만 숙연한 분위기는 없었다. 모두가 승자였고 결승전은 축제의 장이 됐다.

준우승자에게 뛰어가 샴페인을 터트리며 같이 축하해 줄 목숨 같은 동료들. SK텔레콤이 아직도 최고의 팀으로 자리잡은 원동력은 바로 그들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팀은 패해도 자기만 승리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프로게이머가 존재하는 다른 팀과 다른 이유다.

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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