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퓨트’라는 이름으로 세미프로의 돌풍을 일으키며 KT 롤스터로 창단까지 일궈냈던 선수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자신감 하락으로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 치지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시즌 팀을 이끌었던 저격수 김찬수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며 KT는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KT에 합류하자 소위 '날아다녔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은 정훈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정훈의 합류로 KT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승승장구했고 결국 7위로 시작했던 이번 시즌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팀에 운을 가져가 준 사나이 정훈을 만났다.
◆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
전문가들이나 스페셜포스 팬들은 정훈의 합류가 KT의 성적 반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KT가 상승세를 탄 시점도 정훈이 합류한 시점과 거의 일치했고 정훈도 KT 유니폼을 입은 뒤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KT가 포스트 시즌에 오른 이유를 '정훈 효과'라고 설명하자 정훈은 손사래를 쳤다.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 공을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겸손하다는 질문에 “겸손이 아니라 정말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가끔 운이 따라주는 선수가 있잖아요. 뭘 해도 되고, 뭘 해도 이기는 선수. 바로 제가 그런 것 같아요. IT뱅크 레이저에서 정말 잘하는 선수로 각광받고 KT에 입단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죠. 하지만 개인 플레이가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어요. 한 일을 굳이 말하라면 그저 차려진 밥상에 수저 하나만 올려놨을 뿐입니다(웃음).”
정훈의 말에 따르면 KT의 성적이 올라간 시기와 합류 시기가 그저 ‘우연히’ 맞았을 뿐이란다. 우연치고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행운의 여신’이 정훈의 뒤를 계속 돌봐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시점이 정말 절묘했다.
“팀에 들어와 리더 역할을 하면서 무언가를 바꿔놓았다거나 동료들을 이끌고 이렇게 하자고 방향을 제시했다면 제 덕으로 돌릴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KT에 들어와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한 경기당 한 세트 정도 출전한 것이 전부였어요. 다른 선수들과 차이날 것 없는 활약이었지만 방송 화면에서 제 플레이를 자주 잡아주시더라고요. 그 때마다 신기하게도 큰 활약을 펼쳤죠."
연속해서 운이 따라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훈은 모든 것을 운에 돌렸다. 스페셜포스는 개인 화면을 잡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화면을 잡자마자 죽는 선수도 있고 맞추지 못하며 모자란 플레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럴 경우 선수들은 시청자에게 "못 쏘는 선수"로 치부된다. 그러나 정훈의 경우는 정반대다. 개인 화면이 잡힐 때마다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마치 정훈의 활약 덕분에 KT가 살아난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진짜 할말이 없네요(웃음). 운 좋게 KT에 들어온 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습니다. 방송 타는 운도 있네요. 이제부터 저를 행운의 사나이라고 불러주세요(웃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살아가다 보니 이렇게 좋은 일이 넝쿨 째 들어오는 경우도 있네요. 정말 행복합니다.”
행운의 사나이 정훈. 정훈의 행운은 팀을 살리고 정훈을 살리고 나아가서는 스페셜포스 프로리그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불어 넣는 선수다.
◆게임 덕에 바뀐 인생
정훈에게 스페셜포스는 정말 소중한 게임이다. 인생을 변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이머가 됐다는 것만으로 인생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정훈이라는 사람을 바꿔놓은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항상 서글서글하고 잘 웃는 정훈 스페셜포스 관계자들에게 정훈은 예의 바른 선수로 알려졌다. 다른 팀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고 트러블 없이 어떤 팀에 가도 잘 적응하는 좋은 성격을 보유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훈의 성격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믿기 어려우실지 모르겠지만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을 접하기 전에는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벙어리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정도로 말수도 적었고 표정도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매우 어색하고 귀찮아했어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정훈은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을 한 뒤부터 성격이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훈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활동적이며 활달한 성격으로 바꿔 놓은 사람들은 같은 길드 동료들이었다.
“혼자 게임을 즐기다가 ‘길드’에 가입했어요.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정기 모임을 갖기도 했죠. 막상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내 의지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고 성격이 바뀌었어요. 내성적이던 아들이 활달하게 변하자 부모님도 게임하는 저에 대해 반대하지 않으셨고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셨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 정훈은 “성격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정훈에게 스페셜포스는 정말 단순한 게임이 아닌 정훈의 인생을 바꿔 놓은 소중한 존재라고 할만 하다.
◆꽃을 좋아하는 사나이
정훈의 꿈은 특별하다. 사나이가 꽃을 만지고 싶단다. 대학교도 원예과에 가고 싶다고. 꽃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원예과에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한 뒤 화원을 하고 싶단다.
“부모님께서 화원을 운영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꽃, 나무와 함께 자랐죠.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받고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꽃을 정말 좋아합니다. e스포츠계에서 프로게이머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고 나면 반드시 원예과에 진학할 겁니다.”
나중에 화원을 운영하면 꽃은 꼭 우리 가게에 와서 사라는 정훈은 “지방이지만 배달도 해드릴 테니 꼭 이용해 달라”며 벌써부터 영업전(?)에 나섰다. 넉살 좋고 수완 좋은 선수다.
◆KT '준우승 저주' 내 손으로 없앤다
정훈은 KT로 입단한 뒤 팀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항상 고민했다. 예전 레이저 시절 정훈은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팀을 위해 희생하는 플레이를 주로 하면서 인정받았다.
“화원 운영은 정말 나이가 들어서 제 꿈이고요. 지금은 KT 롤스터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KT가 스타크래프트든 스페셜포스든 팀 단위 리그에서는 아직까지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스페셜포스 팀이 그 징크스를 깰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입니다. KT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정훈’이라는 이름도 같이 생각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고의 선수가 아닌 최고의 팀을 이끈 선수가 되고 싶다는 정훈. 시원한 미소로 만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하는 매력을 가진 그가 KT 롤스터에도 시원한 미소를 선사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글, 사진=이소라 기자 sora@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