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프로토스의 한 획을 긋다
삼성전자 송병구는 2007년까지 국내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국제적으로는 큰 행적을 남겼다.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WCG 2007 그랜드 파이널에서 송병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스타크래프트 부문 연속 우승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재윤과 진영수와 함께 한국 대표로 뽑힌 송병구는 다른 선수들이 결승까지도 올라오지 못하는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이재훈에 이어 한국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천신만고 끝에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대한민국은 스타크래프트 최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이어갔다.
![[GamerGraphy] 삼성전자 송병구, 공룡처럼 큰 걸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009241532070032844_3.jpg&nmt=27)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결승전에서 SK텔레콤 도택명을 모두 꺾고 우승한 송병구. 국내에서 열린 개인리그에서 준우승 징크스를 깬 대회다.
◆2인자의 한을 풀다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e스포츠 국제 대회인 WCG에서 우승했지만 여전히 송병구에 대한 평가는 2인자였다. 2007년 김택용과의 MSL 결승전에서 패했고 같은 해 EVER 스타리그에서는 이제동에게 패권을 내주면서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려야 했다. 해를 바꿔서도 송병구는 박카스 스타리그에서 이영호에게 0대3으로 완패하면서 개인리그 연속 준우승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했다. 일부 팬들은 송병구에게서 홍진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며 '콩라인의 후예'라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송병구는 개인리그에 대한 도전을 그치지 않았다. 스타리그와 MSL에 연속 진출하면서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렸고 또 다시 기회를 얻었다.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에서 송병구는 또 다시 기회를 얻었다. SK텔레콤 T1이 임요환, 최연성에 이어 야심차게 키워낸 신예인 정명훈을 결승전에서 만난 것.
재미있는 사실은 송병구가 토너먼트로 진행된 8강, 4강, 결승에서 모두 SK텔레콤 선수를 만났다는 점이다. 8강에서 김택용을 2대1로 제압한 송병구는 4강에서 도재욱을 꺾으면서 결승전에 올랐고 결승전에서는 정명훈을 상대했다. 송병구가 우승할 경우 스타리그라는 무대에서 거함 SK텔레콤의 주전 선수들을 모두 격파한 선수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회였다.
송병구는 결승전에서 두 세트를 연거푸 따낸 뒤 두 세트를 잃으면서 준우승 징크스를 이어가는 듯했다. 그렇지만 노련미로 극복했고 국내에서 열리는 개인리그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더 이상 송병구에게 2인자라는 타이틀은 붙을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GamerGraphy] 삼성전자 송병구, 공룡처럼 큰 걸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009241532070032844_4.jpg&nmt=27)
◇프로리그 광안리 결승전에서 삼성전자가 2회 연속 우승하는 데 일등 공신은 바로 송병구였다.
◆프로리그에서도 최고 성적
인크루트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송병구는 꾸준히 성적을 냈다. 결승전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스타리그에 개근했고 프로리그에서도 삼성전자를 또 한 번 우승 고지에 올려 놓았다. 2007년 광안리 결승전에서 화승 오즈를 4대0으로 완파할 때에도 일조했던 송병구는 2008년에 열린 광안리 결승전에서도 '기적의 행보'를 이어오던 하이트 스파키즈를 4대1로 제압할 때 1승을 보탰다.
결승전에서 송병구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하이트가 선봉으로 신상문을 내세우며 기적의 돌풍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뜻대로 풀렸다. 신상문이 1세트에 출전, 삼성전자 차명환을 꺾으면서 연승 행진을 계속했고 기세가 하이트에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렇지만 송병구가 2세트에서 박찬수를 잡아내며 분위기를 내주지 않았고 삼성전자는 내리 세 세트를 따내면서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삼성전자의 광안리 결승전 2연패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2005년과 2006년 SK텔레콤이 광안리 결승전 연속 승리를 따내면서 프로리그의 최강자로 군림했고 그 바통을 삼성전자가 이어가면서 단체전의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송병구가 자리했고 삼성전자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임을 재확인했다.
◆진정한 프로의 자세
팬들은 송병구를 평가할 때 변명이 많다고 한다. 김택용과의 결승전에서 패한 뒤 마지막 세트 경기에서 "드라군의 사정 거리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은 것을 경기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한 말이 화근이 됐다. 이후 송병구가 패한 경기에 대해 분석하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누리꾼들은 "또 변명한다, 송변명이라고 불러야 겠다" 또는 "프로게이머가 징징거린다"고 힐난한다.
그렇지만 송병구는 '변명의 달인'이 아니라 '솔직함의 달인'이다.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가 있으면 솔직하게 표현한다. 피하고 싶다고. 또 프로토스가 플레이하기 어려운 맵이 나오면 수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송병구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든 프로토스 플레이어가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이야기한다.
왜 송병구가 앞장을 설까. 프로토스의 대표 선수이자, 팀의 최고참이고, e스포츠계를 이끌어 나가는 고참 선수이기 때문이다. 2008년 프로토스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육룡이라 표현했다. 송병구, 김택용, 허영무, 김구현, 도재욱, 윤용태를 묶어 여섯 명의 용이라 불렀다. 이 가운데 송병구는 최고참이다. 2005년 스타리그를 통해 데뷔한 송병구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이제 송병구보다 나이가 많은 현역 선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장에서 가장 많은 스태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인정받는 선수이다 보니 후배들을 대표해서 송병구가 '총대'를 매는 경우가 많다. 프로토스 후배들이 부탁할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나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송병구는 후배들을 위해, e스포츠를 위해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얼마 전 "악플(악성 댓글)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는 인터뷰다. 부산 해운대에서 치러진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 8강전에서 승리한 뒤 송병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악성 댓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들이 모든 질문을 마친 뒤 송병구는 "더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자신에 대한 악성 댓글에는 익숙해 있지만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악성 댓글은 자제해 달라고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언급했던 송병구이기에 솔직하게 심정을 밝혔다. 그 글로 인해 송병구의 안티 팬들이 더 생길 수도 있고 좋아했던 팬들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송병구는 정말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법적 대응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송병구를 주위에서 지켜본 후배나 동료들은 "화끈할 때보다 짤 때가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서야할 상황에서 송병구는 절대로 짜지 않다. 나설 때 나서는 진정한 프로가 바로 송병구다.
◇공룡 코스프레를 선보였던 송병구. 앞으로도 꾸준한 선수로 남길 바라마지 않는다.
◆공룡처럼 느리지만 큰 걸음으로
송병구의 별명은 '공룡'이기도 하고 '총사령관'이기도 하다. 공룡이라는 별명은 코스프레 복장을 입고 사진 촬영에 임하면서 붙었고 총사령관은 전장을 넓게 보는 시선이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공룡이라는 별명을 선호한다. 송병구는 둘 다 좋다며 피해 간다. 이럴 때에는 '쪼잔하고 짜다'.
2005년 4월 EVER 스타리그 16강에서 홍진호와 첫 경기를 치를 때만 해도 송병구는 자라나는 새싹이었다. 그렇지만 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송병구보다 앞서 갔던 선배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얼굴도, 소속도 잘 알 수 없는 후배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송병구는 6년의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꾸준히 앞으로 전진했다. 스타리그에서 계속 물을 먹으면 MSL로 무대를 옮겨 성과를 냈고 프로리그에서는 한결같이 삼성전자의 기둥 자리를 지켰다. 식탐이 많아 살이 찐다 싶으면 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면서 의지를 다졌고 손이 느리다고 지적을 받으면 죽어라 연습해서 APM을 늘렸다. 남들 같으면 은퇴를 걱정하고 다른 돈벌이를 해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휘둘릴 때 공룡처럼 느리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결과 송병구는 여전히 삼성전자의 에이스이고 프로토스의 맏형이다. e스포츠계에서도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에 마친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에서 4강까지 오르면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임을 몸소 증명했다.
공룡처럼 큰 걸음을 내딛는 송병구의 모습을 영원히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기자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thenam@dailyesport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