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업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 왼쪽부터 삼성전자 김가을 감독, 온게임넷 임나혜 PD, STX 서지수 선수, 온게임넷 정소림 캐스터, MBC게임 히어로 임수라 코치[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e스포츠 업계 누비는 여성들과의 만남한국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 고시 등 그 어렵다는 고시 합격자들 가운데 절반 가량이 여성이고 육군 사관학교의 1등 졸업자도 여성이 차지할 만큰 한국은 '우먼 파워'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각 분야에서 맹활약하며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사회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e스포츠 업계는 그렇지 않다. 일단 프로게이머의 99%가 남성이고 프로게임단 감독 가운데 삼성전자 김가을 감독만이 여성이다. 해설자와 캐스터를 포함해 여성 중계진은 거의 없다. 게임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여성 PD는 몇 명 있지만 리그를 연출하는 PD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추세와는 달리 e스포츠 업계는 점점 여성들을 위한 문호가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2주년을 맞아 특별한 여성들을 모셨다. 남성의 점유율이 99%에 달하는 e스포츠계에서 여성으로 당당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온게임넷 중계진의 홍일점 정소림 캐스터, 던전앤파이터 리그 연출자 임나혜 PD, 삼성전자 칸의 김가을 감독, 스페셜포스 팀인 MBC게임 히어로 플러스의 임수라 코치, STX 소울 프로게이머 서지수를 한 자리에 모았다. 사회는 데일리e스포츠의 홍일점 기자 이소라가 맡았다. e스포츠계에서 여성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주> 이소라=다사다난했던 e스포츠계의 1년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데일리e스포츠는 창간 2주년을 맞아 e스포츠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애환과 에피소드를 들어보려 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정소림=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스케줄로 인해 저녁이 아니라 낮에 모이게 되어 죄송하네요. 스페셜포스 하이파이브리그 녹화가 있거든요. 이소라=그런 말씀 마세요. 바쁘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세요. 정소림 캐스터는 혹시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나요.정소림=다음 생에 태어나면 정말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매일 일어날 때마다 생각하죠. e스포츠 종사자든, 아니든 한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남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이소라=예를 들어 주실까요. 생활 속에서 느끼신 점이나 e스포츠계에서 종사하실 때 겪은 사례가 있으면 와닿을 것 같아요.
◇온게임넷 정소림 캐스터정소림=중계할 때마다 남자였으면 달랐을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목소리를 올리다 보면 힘이 달려요. 특히 결승전 같은 무대에서는 소리를 질러서 박진감이 필요한데 저는 죽을 힘을 다해도 남성들 특유의 그 톤이 나오지 않아요. 캐스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목소리가 터지지 않아서 일부 팬들로부터 '흥분하지 않는 캐스터'라는 평을 들었죠. 남성들의 술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사회 상활을 하면서 여성은 커피숍에 모여서 이야기하지만 남성은 술을 한 잔 하면서 친분을 쌓잖아요. 여성들은 우선 술을 마시는 자리에 잘 끼워주지 않아요. 그리고 모임을 갖다 보면 12시면 들어가라고 챙겨주듯 말하죠. 몇 번 그러다 보면 술 자리에 부르지도 않습니다. 술로 연결이 되어서 인맥이 두터워지는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여성이 술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임나혜=저는 오히려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에요. 던전앤파이터 리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나 스태프들과 가끔 술자리를 갖는데 제 스케줄에 맞추거든요. 밤 늦게 또는 새벽 일찍 마치는 편입니다(웃음). 저는 이렇게 살다가 결혼하면 어떻게 스케줄을 바꿔야 할 지가 고민이에요. e스포츠 리그를 연출하는 여성 PD는 저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피디로서는 남성들의 세계에 일찍 발을 들여 놓은 것이죠. 그렇지만 온게임넷에서 결혼한 여자 피디는 한 명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요. 향후를 걱정하다 보니까 여성이 유지하기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이소라=결혼한 여자 기자도 e스포츠 업계에 없습니다. 저도 슬슬 나이가 차고 있는데요. 결혼하신 김가을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죠.김가을=솔직히 말해서 여자라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프로게이머일 때에는 남성들에게 지기 싫었고 감독이 되었을 때에도 여성 감독으로 비춰지는 것보다 능력있는 감독, 선수 출신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었죠. 결혼을 고민할 때에도 제 생활의 연장선이라 생각했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과연 아이를 갖고 나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래서인지 출산이나 복지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정소림=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거든요. 김가을 감독님이 출산과 관련한 복지 정책에 신경을 쓰실 나이라면 저는 교육 정책에 온 신경이 쏠려 있어요. 남성들과 학창시절까지 공부로 경쟁하다가 직장을 찾기 위해서도 경쟁을 하죠.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면 여성들은 온전히 일에 집중만 할 수는 없는 상황에 처해요. 김 감독님 말씀처럼 출산과 육아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 뒤에는 아이의 교육이나 복지 같은 것에도 신경 써야 하죠. 여성들은 결혼 이후 완전히 달라져요.이소라=서른이 되고 나니까 결혼 생각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상상을 해봤죠. 만약에 임신을 하고 개월 수가 차서 배가 부른 상태로 현장에 취재를 오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려봤어요. 상상이 잘 안되더라고요. 선례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임수라=코치로 일하고 있는 제 애로 사항은 주말이 없다는 점이에요. 스페셜포스 프로리그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데 토요일 경기를 치르고 나면 진이 빠지거든요. 일요일에 쉰다고 해도 쉬는 것 같지도 안고요. 선수일 때는 제 몫만 하면 됐는데 코치직을 맡고 있다 보니 새벽 5시까지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다 챙겨 봐야 해요. 코치가 저 한 명이다 보니까 책임이 크죠. 아직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삼성전자 김가을 감독김가을=저는 프로리그 경기가 열리기 전날에는 선수들과 함께 합숙을 해요. 경기를 보고 있다가 시간이 늦으면 선수들이 알아서 숙소에 이불을 깔아 주죠. 결혼하기 전에도 그랬어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선수들이 성별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임수라=그런 점은 저도 비슷해요.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선수들을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냥 스페셜포스 선수로만 보죠.서지수=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서러웠던 점은 체력 부분과 감정 컨트롤 부분이에요. 체력적으로 남성 선수들에 비해 떨어져요 그러다 보니 장시간 연습을 하지 못해요. 그러면 실력 차이가 나지요. 실력 차이가 나면 많이 지잖아요. 승부욕은 있는데 자꾸 지니까 감정을 다스리기가 어려워져요. 자꾸 지다 보면 우울해지고 프로게이머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요. 이런 감정들을 혼자 다스려야 하니까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이소라=기자 생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감정적인 부분에서 남성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일로 같은 내용으로 지적을 받으면 남자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속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울고 있는 저를 봐요. 일에서도 남성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감정 조율이 어려운 부분은 참 속이 상하더라고요. 임나혜=유일한 여자라는 자리 때문에 승부 근성이 세지는 것 같아요. 고집도 세지고요.정소림=승부 근성을 갖다 보니까 정말 힘들어요. 저도 이 분야에서 10년 가량 일을 하다 보니까 목표가 바뀌었어요. 경쟁 상대로 남성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삼은 것이지요. 남성과 싸운다고 생각하면 버겁게 느껴지지만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 지거든요.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나도 성장한다는 것을 느낀다는 뜻이에요.*(2)편에 계속◆관련기사 [창간2주년기획] "e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2) [창간2주년기획] "e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