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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그라피] e스포츠를 알리다…임요환(1)

e스포츠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초석을 닦은 선수로 임요환을 말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임요환은 e스포츠 업계와 명맥을 같이하면서 인기 정상의 콘텐츠로 발돋움시킨 홍보 대사나 다름 없습니다.

네이트에 '게이머그라피'를 연재하면서 임요환에 대해 쓰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였기에 성급히 손을 대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2001년 혜성같이 등장한 임요환은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이 뛰어났기에 각종 매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다시피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프로게이머하면 임요환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e스포츠를 만든 스타 플레이어로 전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임요환의 프로게이머 인생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했던 인기
임요환의 인기는 한 풀 꺾였습니다. 2006년 공군 에이스에 입대한 이후 SK텔레콤 T1으로 복귀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스타크래프트2:자유의날개(이하 스타2)로 종목을 전환했습니다. GSL에서 4강에 오르면서 77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기록하면서 임요환의 파워를 실감하게 만들었지만 이후 하락세를 경험했고 최근에는 손목과 어깨 등 관절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임요환은 친정팀인 SK텔레콤으로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선수 자격이 아닌 코치 자격으로 돌아왔죠. 선수 시절의 실력을 코치로서는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시즌 막판에 복귀했기 때문이지요-임요환이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임요환의 전성기 시절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연예인 못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는데요. 이제는 수명이 다한 곳이지만 다음이라는 포털 사이트에서 임요환은 카페 가입자수 1위를 수 년 동안 유지했습니다. 한창 때 50만 명을 넘기기도 했는데요. 동방신기가 나오기 전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50만 명의 카페 회원 숫자는 우리나라 인구의 1/100에 해당합니다. 100명 중 한 명이 임요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임요환의 카페 회원이었던 것이지요.

임요환의 인기는 홍진호, 이윤열, 박정석 등의 라이벌까지도 동반 성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죠. 임요환의 경기를 보기 위해 e스포츠 경기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임요환이 이기면 당연한 일이고 졌을 때에는 상대편 선수들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임요환 자신이 스타 플레이어이기도 했지만 경쟁자들까지도 스타 플레이어로 만드는 능력을 가진 임요환입니다.

◆시작은 프로토스로
고등학교 시절 임요환은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스타크래프트를 접했다고 합니다. 묵묵히 스타크래프트를 즐겼지만 승부욕이 강했던 임요환은 배우기 쉬운 종족인 프로토스를 선택했죠. 게임을 일찍 배울 수는 있었지만 이기기는 어려웠던 프로토스를 하던 임요환이 가장 좋아했던 유닛은 셔틀과 리버였습니다. 당시 '슈팅 리버'라는 별명까지 있었던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의 1.03 시절 임요환은 리버로 쏠쏠한 재미를 봤습니다.

그렇지만 1.04로 패치되면서 리버의 능력치가 떨어지자 임요환은 테란으로 종족을 전환했습니다. 만약 리버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프로토스의 황제' 임요환을 기억 속에 넣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임요환의 첫 감독 김양중
음지에서 '폐인'으로 취급받던 임요환을 양지로 끌어낸 인물은 위메이드 폭스에서 감독으로 활동 했던 김양중입니다. 1999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 근처에 살던 김 감독은 PC방에서 우연히 임요환을 만난 뒤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당시 시나브로라는 기획사의 사장으로 있던 김 감독은 임요환의 눈빛에서 승부욕을 읽었고 함께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김 감독을 만나면서 양지로 나온 임요환은 'PC방 폐인'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부스스한 머리, 꾹 눌러쓴 모자, 창백한 피부, 슬러퍼를 벗을 채비를 갖췄다고 하네요.

◆2001년 빛을 보다
게이머라는 특이한 직업에다 프로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임요환이나 e스포츠 모두 고난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연습 환경은 꿈에나 그릴 수 있었지요. PC방 한 켠에서 눈이 충혈될 때까지 연습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상금이라도 따면 고기를 한 번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온갖 대회를 찾아 다닐 때였죠.

임요환은 1999년 12월 공중파에서 열린 최초의 대회인 SBS 멀티게임 챔피언십 예선을 통과하며 황제의 신화를 만들어 갑니다. 전승으로 결승에 오른 임요환은 처음으로 큰 상금이 걸린 대회를 제패했죠.

이후 임요환은 게임큐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테란의 선봉장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정민과 최인규 등 미남 테란들과 종족 최강전에 나서 특이한 경기를 선보이면서 인터넷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드롭십을 활용한 신출귀몰한 플레이는 세간의 화제가 됐죠. 여기에 저그를 농락하는 머린의 환상적인 움직임은 삽시간에 임요환을 최고의 테란의 반열에 올려 놓는 요소가 됩니다.

비슷한 시기 온게임넷이 스타리그를 개최했지만 임요환에게는 요원한 길이었습니다. 2000년 프리챌 스타리그에서 이재항에게 패하면서 스타리그 진출에 실패한 임요환은 2001년 한빛소프트 스타리그가 되어서야 본선에 당당히 진출했습니다. 온라인 대회에서 이미 최강으로 군림했던 임요환에게는 어쩌면 1년 이상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죠.


◆테란의 황제
각종 대회에서 테란은 약한 종족으로 인식됐습니다. 저그에게는 병력 수에서 달리고 프로토스에게는 질에서 밀리던 시절 임요환은 테란의 암흑기에 개벽을 일으킬 핵심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되던 리그에서 드롭십을 절묘하게 사용하던 임요환의 플레이를 본 네티즌들은 임요환이라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임요환은 첫 스타리그부터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한빛소프트 스타리그에서 8강까지 전승으로 통과한 임요환은 4강에서 박용욱을 2대1로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장진남과의 결승전에서는 신들린 듯한 드롭십 활용을 통해 3대0으로 제압하고 테란 사상 처음으로 스타리그를 제패했습니다. 임요환에게는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이 붙었고 암울했던 테란에게 한 줄기 빛을 내려준 인물로 부각됐습니다.

◆스포트 라이트
임요환은 이때 처음으로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포츠 신문은 물론, 일간지, 각종 방송 등에서 '꽃미남'으로 인정받았고 카페 회원수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IT와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죠.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처럼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으며 부담이 컸을 수도 있지만 임요환은 프로게이머라는 본분에 충실했습니다. 다음 대회인 코카콜라 스타리그 결승전에서는 불세출의 라이벌 홍진호와 결승전에서 만나 명승부를 연출하며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죠. 스타리그 2회 연속 우승 기록은 2009년 8월 화승 이제동이 깰 때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만큼 대단한 기록이었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SK텔레콤과 함께하는 e스포츠 세상(www.sktele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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