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2000년대 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인기를 끈 이후부터 프로게이머는 청소년들이 장래희망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직업이 됐다.
TV에 나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세계 곳곳을 다니는 화려한 직업.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하면서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수도 있으니 이보다 탐나는 직업이 무엇이 있으랴.
나이스게임TV의 하광석 해설은 최근 게임 커뮤니티에 프로게이머를 희망하는 자녀에 대해 걱정하는 부모님과 상담을 나눈 일화를 소개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청년 시절부터 10여 년 간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부모 혹은 예비부모가 될 만한 나이가 되면서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e스포츠 업계에 직접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은 "내 자녀, 혹은 조카가 프로게이머가 되길 희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업계 경력 최소 5년 이상의 감독, 코치, 해설, 캐스터, 기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봤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없이 오로지 프로게이머의 명과 암에 대해서만 집중하기 위해 업계 이외의 사람들은 설문 대상에서 제외했다. 총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이중 절반인 15명은 프로게이머 출신이다.

설문 결과 찬성은 21명, 반대는 9명이었다. 찬성 21명 중 자녀의 재능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조건부 찬성'은 절반에 가까운 10명이었다.
◆찬성의 이유 "자녀 스스로 원하는 것 우선…기회는 줄 것"
찬성 측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이유는 "자녀가 원하는 것에 대해 기회를 주겠다"는 답변이었다. 입시를 위한 공부나 무조건적인 사회적 성공을 쫓는 것보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주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입시 교육'에 치였던 7~80년대생 부모 혹은 예비부모들답게 "내 아이만큼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시키겠다"는 인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밖에 예전에 비해 e스포츠 시장이 성장했고, 프로게이머의 지위나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근에는 은퇴 후에 BJ로 활동 영역이 넓어진 것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건부 찬성 "재능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조건부 찬성을 얘기한 응답자들은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재능'을 꼽았다.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주겠지만 재능이나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경우엔 반대하겠다는 것인데, 응답자들이 프로게이머 생활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재능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응답자는 "재능이 있다면 프로게이머를 시키겠지만, 재능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확실히 인지시켜줄 것"이라며 "재능이 없는데 예체능을 하는 것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고 답했다.
◆반대의 이유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반대 측의 답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프로게이머가 얼마나 어려운 직업인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개인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한 채 연습에 매달리느라 건강이 악화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
예전에 비해선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처우가 좋지 않고, 은퇴 후의 진로가 불안하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 외에 학업과 병행이 힘들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해설가는 "프로게이머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프로게이머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과 일반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을 따져보면 후자가 훨씬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종목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답변도 존재했다. 한 관계자는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게이머라도 비인기 종목을 택하면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기가 힘들다. 인기 있는 종목을 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소림 캐스터 "무조건 반대는 부작용…체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설문 대상자가 얼마 되지 않지만 프로게이머의 세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인 만큼, 이 솔직한 답변들이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과 또 그 부모들이 의사를 결정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그간 "프로게이머가 꿈"이라면서 프로게이머를 만만하게 본 청소년들이 있다면 자신의 실력과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향후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모는 자녀의 진로를 강제로 정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이자, 지난 15년간 프로게이머들의 미소와 눈물을 곁에서 지켜본 정소림 캐스터의 이야기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죽도록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아이로서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릴 때부터 꿈을 갖는다는 게 절대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주 짧은 기간이라도 프로게이머의 삶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면 반발감에 더 하게 되잖아요."
"만약 제 아이가 프로게이머가 되길 원한다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해보게 한 뒤 본인이 판단하게 할 것 같아요.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느꼈다면 스스로 그만두겠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을 봐오면서 타고난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엄청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어느 수준까진 도달하지만 재능을 넘어서진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인생에 있어 1년이나 2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더라고요. 안 가본 길은 살아가는 내내 미련이 많이 남아요.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봅니다."
이시우 기자(siwoo@dailyespo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