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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토크] 래퍼의 씁쓸한 인생

e스포츠계에서 '래퍼'라는 수식어를 단 사람은 지금까지 두 명 정도입니다.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관중과 시청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온게임넷의 전용준 캐스터와 조지명식이 열릴 때마다 재치있는 언변과 위트로 팬들의 배꼽을 빼는 위메이드 폭스의 프로토스 안기효 정도로 압축됩니다. 전용준 캐스터는 거의 매일 프로리그나 스타리그를 통해 볼 수 있지만 안기효는 요즘 들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네요.

21일 서울 중구 정동 한국e스포츠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프로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새로운 래퍼가 한 명 더 탄생했습니다. 미디어데이에 나온 프로게이머 가운데 한 명인데요. A는 간결한 표현을 속사포와 같은 속도로 연발하면서 래퍼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임하는 각오가 어떻냐는 질문에 A는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e스포츠의 성지에서 많은 팬들과 함께 서게 돼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감독님 이하 코칭스태프와 힘을 합쳐 프로리그 무대에서 영혼까지 다해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셔도 깔끔한 말 솜씨 아닙니까. 의미심장한 단어과 문장들이 주옥같이 담겨 있습니다. 잘 지어진 노랫말처럼요. A가 래퍼로 인정받은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1분 여 동안 마이크를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호흡을 들이마시지 않고 장광설을 압축했기 때문입니다. A의 말을 듣고 있던 기자들 가운데는 "저러다가 숨 못 쉬어서 호흡 장애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이런 유머가 있었잖아요. "파바로티가 죽었다. 이유는? 노래를 한참 하고 있는데 쉼표가 없어서"라는 것처럼요.

A가 한바탕 랩을 한 뒤 식사를 위해 다른 자리로 옮기자 B가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배우고 싶다. 마치 대본을 써놓은 것처럼 깔끔한 언변은 본받고 싶다"고 말이죠.
그러자 A가 '자학 개그'를 터트렸습니다. "난 B의 경기력을 본받고 싶다. 가끔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넌 게임하는 시간보다 인터뷰 기획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함께 식사하던 관계자들은 A의 씁쓸한 반응을 보며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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