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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웅진 이재호 "모든 것은 운명이다"

[피플] 웅진 이재호 "모든 것은 운명이다"
MBC게임 히어로 소속으로 활동하던 이재호가 웅진 스타즈로 이적할 때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다. MBC게임 히어로가 포스트 시즌 진출의 꿈을 접었고, 선수를 팔아서 장사를 하려 했으며 웅진이 정말 세질 것이라는 추측이 대세였다. 이재호가 불쌍하다는 의견도 대다수였다. 2005년 데뷔 이후 함께 했던 MBC게임 동료들과 헤어지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는 팬들의 예상이었다.

이재호가 웅진으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인터뷰한 매체가 데일리e스포츠였다. 2011년 3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재호는 덤덤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MBC게임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웅진이 그만큼 포스트 시즌 진출을 간절히 원했고 나는 그에 맞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무뚝뚝함을 느꼈던 기자는 7개월이 지난 10월, 이재호를 다시 만났다. 짧아 보이는 7개월 동안 이재호의 신상은 물론, e스포츠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기에 두 번째 인터뷰는 의미가 전과 달랐다. 이재호를 영입한 웅진은 포스트 시즌에서 선전했고 이재호를 트레이드한 MBC게임 히어로는 팀 해체가 거의 확실해졌다. 이 상황을 이재호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게임할 운명?
이재호가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한 것부터 운명이었다. 사촌형 집에 놀러갔다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낀 이재호는 집에 돌아와 친형과 쟁탈전을 벌였다. PC가 1대 밖에 없었기 때문에 10분이라도 더 하려고 형과 티격태격 다퉜다. 승자는 언제나 형이었다. 게임 개발자가 꿈이었던 형은 부모님으로부터 사용권을 인정받았기에 이재호는 PC방으로 내몰렸다.


"형이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해요. 해볼 수 있는 게임은 다 한 번씩 할 정도로 게임 마니아거든요. 부모님도 형이 진로를 게임 개발자로 잡는 것을 막지 못했고 컴퓨터 과학고에 진학했어요. 형이 그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으니까 제게는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할 시간이 없었죠."

스타크래프트에 집중한 이재호는 낭중지추와 같은 실력을 발휘했다. PC방 1등, 동네 1등, 학교 1등을 거쳐 어느새 배틀넷에서도 이름을 날릴 정도의 인지도를 얻었다.

"부모님께서 제게는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외진 곳에서 다녔는데 중학교 들어가자 마자 전학을 시키셨어요. 부산의 명문 중학교로 옮겼는데 그 때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이재호와 티격태격하던 친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게임 개발사에 취직했고 타르타로스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다. 이재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어 MBC게임 히어로에 입단했고 웅진 스타즈로 이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톱 3에 드는 테란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쩌다 보니 형과 저 모두 게임을 직업으로 삼게 됐네요. 형은 게임을 개발하고 저는 다른 사람이 개발한 게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직업을 가졌어요. 게임할 운명이었던 걸까요?"

◆MBC게임 소식 들을 때면 마음 아파
MBC게임에 입단한 이후 이재호는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MBC게임의 전신인 POS에서 염보성, 김택용 등 비슷한 시기에 입단한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재호는 2006년 MBC게임이 POS를 인수, 창단한 뒤 '수퍼테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MBC게임의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에서도 염보성과 김택용을 제치고 가장 먼저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섹시, 댄디, 러블리'라는 컨셉트로 프로게이머를 소개하는 코너였어요. 유니폼이 아니라 세미 정장을 입고 촬영했는데 뽀얗게 나왔죠.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TV를 보는데 다들 구토를 할 정도로 예쁘게 나왔더라고요. 제가 봐도 오글거렸죠."

개인리그나 프로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지만 팬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굳힌 이재호는 이후 MBC게임의 테란 투톱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큰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MBC게임이 세 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09-10 시즌에는 이재호가 위너스리그에서 두 경기 연속 올킬을 달성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면서 팀을 위너스리그 결승전까지 올려 놓기도 했다.


"저 혼자 한 일은 아니죠.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갔던 기록이에요. 창단부터 함께한 선수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선수들의 연습까지 도와줬기에 이룰 수 있었죠.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죠. 요즘에도 가끔 연락하는데 다들 좋은 소식이 날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게임도 손에 안 잡힌다고 하고..."

5년 이상 함께 한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재호는 웅진으로 이적한 뒤 자기만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지 말을 줄였다.

◆PS 청부사 인증
웅진 스타즈로 이적한 이후 첫 인터뷰에서 이재호는 웅진이 자기를 원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08-09 시즌 이후 2년 동안 포스트 시즌에 가지 못했던 이유를 테란 라인의 부재로 꼽은 웅진은 이재호의 영입을 통해 상승 동력을 얻길 원했다.

이재호는 5, 6라운드를 통해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두 라운드를 뛰면서 이재호가 거둔 성적은 14승8패. MBC게임에 있을 때 거둔 18승16패보다 4승 정도 모자라지만 기간이 짧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이재호의 활약 덕에 웅진은 턱걸이가 아니라 4위로 포스트 시즌에 올랐다.

"웅진이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면서 1차적인 제 몫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더라고요. 결승까지 팀을 올려 놓으면서 우승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죠."

삼성전자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이재호는 김기현에게 일격을 당했다. 그러나 2, 3차전에서 조기석과 김기현을 잡아내면서 웅진은 첫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한 고비를 넘겼다.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KT 롤스터였다. 저그만 세 번 만난 이재호는 고강민, 임정현, 김성대를 연파하면서 웅진에게 힘을 실었지만 아쉽게도 팀은 패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까지 였던 것 같아요. 저만 잘하면 된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전력을 다같이 끌어 올려야 했던 거죠. 그러기에는 기간이 짧았어요. 11-12 시즌부터는 웅진 소속으로 한 시즌을 맞이하게 되니까 제대로 팀을 끌어 올려야죠."

◆이재균 감독의 신임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이재균 감독이 끼어 들었다.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인터뷰를 잘하고 있나 '염탐(?)'하러 왔겠지만 이재호의 인터뷰에는 '양념'을 치러 왔단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이재호이기에 자랑을 덧붙여주겠다는 것이 이 감독이 개입한 이유였다.

이재호가 팀에 들어온 이후 웅진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내용은 여러 기사에도 나왔지만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은 이재균 감독이다. 그동안 웅진 선수들과 면담할 때에는 감독의 입장에서 공유할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이 감독은 이재호를 만난 이후 '선수들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놀랄 때가 많다.

"이재호를 보며 애늙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가장 많이, 자주 느껴요. 감독인 저도 이재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깜짝 놀라요. e스포츠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좋고 선수로서 가져야 하는 목표나 가치관도 확실하죠. 군에 다녀온 프로게이머들이 갖고 있는 마인드를 20대 초반인 이재호가 보여주니까 믿음이 가죠."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살자
이재호는 모든 것이 운명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프로게이머가 됐고 MBC게임 히어로 코칭 스태프의 눈에 들어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웅진으로 이적한 뒤 포스트 시즌 청부사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 됐든 내 운명이려니'라며 받아들인다.

이러한 마인드의 바탕에는 현실을 인정하겠다는 의지와 주어진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다 보면 나를 위한 미래는 그려지고 있다는 긍정의 힘이 깔려 있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다 보면 승수가 쌓이고 팀의 성적이 높아지고, 저를 믿고 응원해주는 팬들도 생기더라고요. 이적했을 때에도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을 가진 적이 없고 웅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 먹었죠. 의미 있는 하루들이 모여 과거가 되고 누가 봐도 괜찮은 과거를 산 사람에게는 뜻하는 미래가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운명이겠지만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개척하느냐는 그 날을 사는 사람의 몫이죠."

노익장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재호보다 연장자인 기자도 숙연해진다. 목표를 일찌감치 이루려고 지름길이나 샛길을 찾지 말고 한 걸음씩 옮겨 나가다 보니 길이 생기더라라는 한 문필가의 글이 떠오른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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