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어떨까요? 2000년 정도부터 본격화된 e스포츠는 학원 스포츠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직 이뤄진 바 없고 만들어가기 위해 한국e스포츠협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이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제대로된 프로게이머 양성 과정이 전무하기 때문에 프로게임단들은 인재를 스스로 발굴하고 육성하고 있습니다.
◆유소년 시스템
1세대 프로게이머들인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박정석 등의 기세가 꺾이던 2004년 e스포츠계의 화두는 신예 육성이었습니다. 4대천왕이라 불리던 선수들이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이윤열은 예외인 것 같네요-있던 시점에 차세대 스타 플레이어를 만들어야 했던 시기였죠.
각 프로게임단들은 어린 선수들을 주목했습니다.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2~3년 동안 팀 시스템에 익숙해진다면 새로운 스타로 부상할 수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자는 프로젝트들을 팀별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팀은 POS(MBC게임에 인수됐다가 2011년 해체)와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팬택 EX로 이름을 바꿨고 2006년 위메이드에 인수됐으나 2011년 해체)였습니다.
POS가 중고등학생 가운데 스타크래프트에 자질이 있는 선수들을 끌어 모아 유소년군을 만들었다면 팬택은 2살 가량 더 어린 선수들을 뽑아서 육성했습니다. POS가 이 당시 선발해서 키워낸 선수들이 SK텔레콤 김택용, 8게임단 염보성, 웅진 이재호였다면 팬택앤큐리텔은 KT 이영호와 박성균, 8게임단 전태양 등이었습니다.
![[게이머그라피] 낙동강 오리알 될 뻔한 최종병기…이영호(1)](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207101420380063129_3.jpg&nmt=27)
이영호는 중학생 시절인 2006년 팬택앤큐리텔의 연습생으로 선발됐습니다. 이윤열, 안기효, 심소명 등이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4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각종 팀 단위리그에서 승승장구했으며 이윤열이 개인리그에서도 수 차례 우승을 차지하던 때였죠.
이영호는 어깨 너머로 이윤열의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서서히 성장했습니다. 당시 이영호보다 더욱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박성균이었죠. 평택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방학 때에만, 대회가 있을 때만 숙소에서 합숙했던 박성균은 다른 팀의 에이스들을 잡아내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성균보다 어렸던 이영호는 아직 '잠룡'으로 존재했습니다.
◆팬택의 몰락과 KT 입단
이영호의 소속팀인 팬택 EX-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에서 이름을 바꿨습니다-는 2006년도에 흉흉한 소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기업의 사정이 좋지 않아 대규모 구조 조정을 통해 워크아웃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경제지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프로게임단을 해체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실제로 팬택은 2006년 12월 워크아웃에 돌입했습니다. 프로게임단을 당장 해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수 기업을 찾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었죠. 프로게이머로 맹활약하던 주전 선수들은 새로운 인수 기업이 나타나면 계속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연습생 신분이었던 선수들은 불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연습생이었던 이영호는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제도상 중학생이었던 이영호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는데요. 이영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안정적으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수 있는 팀을 찾았고 KT 롤스터(당시 KTF 매직엔스)와 접촉했고 이적에 합의했습니다.
이영호의 아버지가 다른 팀을 만나 이적에 합의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한 팀의 연습생으로 선발된 선수는 그 팀으로 드래프트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입니다. 팬택이 발굴해서 육성했기에 당연히 팬택의 우산 안에서 프로게이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팬택 EX 팀의 논리였지만 이영호의 아버지가 KT와 접촉했고 그 쪽으로 이적 동의를 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습니다.
팬택 EX가 문제 제기를 수차례 했고 이영호의 아버지는 "팬택이 워크아웃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이영호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없지 않느냐"고 맞섰습니다. 협회는 '연습생들과 계약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식 계약 이전의 이적은 가능하다'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결국 이영호는 KT로 부터 추천 선수 자격으로 드래프트를 통과했습니다.
만약 협회가 이적 불가 판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앞서 언급한 김성민처럼 메이저리그에도 가지 못하고 한국 야구에서도 불안한 위치에 서는 선수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예상해 봅니다. 그랬다면 '낙동강 오리알'이 될 뻔했죠.
KT의 유니폼을 입지 못하더라도 팬택에서는 계속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기에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처럼 활약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이영호의 KT 이적은 향후 큰 변화를 가져오는 첫 발이었습니다.
◆될성부른? 되어있는!
KT의 유니폼을 입은 이영호는 처음 출전한 예선부터 성과를 냈습니다. 드래프트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7년 3월에 열린 듀얼 토너먼트 예선에서 이영호는 손찬웅, 이창훈, 이건준 등 각 팀의 주전 선수들을 완파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4월에 열린 듀얼토너먼트에서도 삼성전자의 박성훈, 한빛(현 웅진) 윤용태, MBC게임 김택용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잡아내면서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될성부른 떡잎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미 완성형이었던 거죠.
이영호는 최연소 스타리그 본선 진출자, 프로게이머 등록 이후 최단 기간 개인리그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이영호는 승승장구하면서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 존재하는 최연소라는 기록은 모두 경신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후배인 전태양에게 내주긴 했지만 이영호가 싹 갈아치운 것은 사실입니다.
메이저 개인리그 본선 데뷔 무대였던 다음 스타리그 2007에서 이영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16강에서 이재호, 마재윤, 최연성과 한 조에 속했던 이영호는 마재윤에게 1패를 당했지만 이재호와 최연성을 꺾으면서 이슈 메이커로 등장했습니다. 최연성은 MSL 3회 우승, 스타리그 2회 우승 등을 차지한 빅스타였고 이재호 또한 데뷔 이후 꾸준히 개인리그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MBC게임의 에이스 중의 하나로 입지를 다졌던 상태였죠.
2승1패로 8강에 올라간 이영호의 상대는 김택용이었습니다. 김택용은 2007년 3월3일 곰TV MSL 결승전에서 마재윤을 3대0으로 완파하면서 e스포츠계를 뒤집었습니다. 이영호와 김택용의 다음 스타리그 2007 8강전이 그해 6월에 열렸기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는데요. 이영호가 가볍게 2대0으로 승리했죠. 이영호의 4강전 상대는 김준영이었습니다. 이영호는 1세트를 내준 뒤 2, 3세트를 승리하면서 결승 진출까지 한 세트를 남겨뒀지만 김준영의 하이브 운영에 휘둘리면서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3~4위전에서 이영호의 상대는 송병구였죠. 스코어상으로 보면 0대3으로 완패를 당했지만 이영호는 송병구를 두 차례나 패배의 위기까지 몰아 넣으면서 압박했죠. 비록 3위까지 주어지는 시드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영호가 단순히 나이만 어린 선수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임을 증명한 대회였습니다.
[데일리e스포츠 남윤성 기자 thenam@dailyesports.com]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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